ⓒ연합뉴스강경화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장관이 8월1일 양자회담에 앞서 자리로 향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7월30일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관련 문서 두 건을 공개했다. 이 문서들이 청구권협정 적용범위에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위자료(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권이 포함되어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일본 정부는 제대로 설명도 못하는 수출규제를 할 것이 아니라, 어떤 국제법인지 특정도 못하는 ‘국제법 위반’을 주장할 일이 아니라, 진즉에 청구권협정에 대한 자신의 해석과 그 근거를 차분히 설명했어야 한다.

공개된 문서 두 건이 ‘비장의 카드’는 아니었다. 해당 문서는 국내 동북아역사재단 홈페이지(nahf.or.kr) 등을 통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문서다. 한국 법원에서 진행한 소송에서도 이미 초기 단계에 증거로 제출되었다. 당연히 한국 법원이 판단을 내릴 때 검토한 문서다. 2018년 대법원 판결에서는 구체적으로 각 문서의 기재 내용을 하나하나 논박하기도 했다. 일본 외무성은 이 같은 배경 설명 없이 그저 “한국 주장이 모순되었다는 근거”라며 두 문서를 흔들고 있을 뿐이다.

지금 벌어지는 한국과 일본 사이 갈등의 근원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의 ‘인권 문제’인 동시에 1965년에 맺은, 청구권협정이라는 양국 간 ‘약속’에 대한 문제이다. 〈시사IN〉 제620호 ‘일본의 판결과 법률, 한국에서 승인 불가’ 기사에서 전자를 다루었다면, 이번에는 후자를 다루고자 한다. 아베 총리는 수출규제를 설명하며 ‘한국이 약속을 어겼다’고 강변하고, 일본 외무성은 협정 체결 과정에서 작성된 원자료까지 제시하는 국면에서 청구권협정에 대한 양국의 해석이 어떻게 다른지 차분히 검토해야 한다.

2018년 대법원 판결 이후 청구권협정에 대한 보도가 상당 기간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기본적 개념조차 혼동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확인된다. ‘포함’ ‘소멸’ ‘해결’ 등의 개념이 각각 정확하게 정립되어야만 양국 청구권협정 해석 차이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고, 그 차이 속에서 대안 모색도 가능해진다. 즉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불법행위(인권침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이하 ‘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포함’된 것인지, 포함되었다면 ‘소멸’된 것인지, 소멸되지 않았다면 ‘해결되었다’는 뜻이 무엇인지가 양국 간 해석을 가른다.

한국 대법원은 2018년,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청구권협정으로 소멸한 권리가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에 한정되는지, 아니면 개인들이 가지는 청구권까지인지에 대한 논의는 해당 권리가 청구권협정에 포함된 이후 그 효과에 관한 것이다. 한국 대법원 판단에 따를 때,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도 않았고, 따라서 한국 정부의 외교적 보호권이든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이든 모두 유효하다. 불법행위를 전제로 한 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 자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2005년 8월 한일 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공개돼 외교통상부 직원들이 문서를 정리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일본 외무성이 최근 공개한 문서 중 하나는, 1961년 5월10일 제5차 한일회담 예비회담에서 한국 측 인사가 “다른 국민을 강제적으로 동원함으로써 입힌 피징용자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대한 보상”을 요구한 발언이 기재된 회의록이다. 한국 측이 위와 같은 요구를 한 사실은 있다. 그러나 한국 측 요구에 대한 양국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협정 해석에서 중요한 것은 협상 과정에 수없이 등장하는 일방의 주장이 아니라, 양국의 합의가 도출된 내용이다. 대법원은 오히려 위 문서를 근거로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을 청구권협정에 포함하려는 논의가 있었는데도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을 확인했다.

‘포함’의 효과, 개인 청구권 ‘소멸’ 아니야

일부 보수 언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위와 같은 ‘불포함’ 해석은 한국 대법원의 예외적 해석일까? 그렇지 않다. 1965년 3월20일 대한민국 정부가 발간한 〈한일회담백서〉에는, “한국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조인 당사국이 아니어서 제14조 규정에 의한 승전국이 향유하는 ‘손해 및 고통’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이러한 한·일 간 청구권 문제에는 배상청구를 포함시킬 수 없다”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청구권협정문이나 부속서 어디에도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언급하는 내용은 없다. 청구권협정의 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했다. 이런 상황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었다고 해석할 수는 없는 것이다.

2005년 노무현 정부 국무총리실 산하에 설치되어 청구권협정 관련 문서 일체를 검토한 민관공동위원회도, 협상 당시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의 법적 배상을 인정하지 않음에 따라 “고통받은 역사적 피해 사실”에 근거해 정치적 차원에서 보상을 요구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배상청구권 문제가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았기에, 노무 제공 등에 대한 대가로 일본국 및 일본 기업 등으로부터 지급받을 수 있었던 임금, 그 밖의 수당 등 개인의 재산권 등만이 청구권협정에 따른 무상자금 산정에 반영되었던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아베 정부의 해석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포함’의 효과는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 또는 개인의 소권 소멸이지, 개인들의 청구권 소멸은 아니라고 본다.
 

ⓒ합동통신1965년 12월 한일 협정에 나선 이동원 외무장관(왼쪽 두 번째)과 시나 일본 외무장관(왼쪽 세 번째).

1991년 8월27일 일본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한 야나이 슌지 당시 외무성 조약국장은 “한일 청구권협정은 한·일 양국이 국가로서 가진 외교 보호권을 서로 포기한 것으로, 이른바 개인의 청구권 자체를 국내법적 의미에서 소멸시킨 것은 아니다”라고 발언했다. 고노 다로 현 외무장관도 2018년 11월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 개인의 대일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고 발언했다. 일본 나고야 고등재판소 가나자와 지부는 2010년 3월8일 한국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군수기업 중 하나인 주식회사 후지코시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판결에서 “청구권협정 제2조 제3항에서 청구권에 대해 어떤 주장도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청구권 자체를 실체법적으로 소멸시키는 취지는 아니”라고 판시했다. 즉, 일본의 행정부나 사법부 모두 일관되게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도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었으나 외교적 보호권 이외의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된 것은 아니라고 해석해온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청구권협정 해석을 여기까지만 절단해, 일본도 개인 청구권을 인정했기에 마치 한국과 일본의 해석이 동일한 것처럼 이해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해다. 일본은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지는 않았지만, 개인 청구권 문제가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보고 있다. 여기서 ‘해결’되었다는 의미는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지만, 피해자가 그 청구권을 소송을 통해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로 존재하는 채무를 법률용어로는 자연채무(채무자가 변제하지 않은 경우에도 채권자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없는 채무)라고 한다. 이런 채무의 변제는 오로지 자발적인 이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일본 니시마쓰건설의 자발적 배상 사례  

일본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을 통해 소멸되지는 않았다고 하면서도 모두 ‘해결’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일본 기업이 한국 판결에 따라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이 약속을 어겼다는 일본 정부의 비판은 잘못되었다. 한국이 약속을 어긴 것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이 오랜 시간 약속을 다르게 해석해왔던 것이다. 그 불일치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침묵 속에서는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목소리를 내고, 법원의 문을 두드리고, 배상청구권을 인정하는 사법부의 판결까지 확정된 상황에서, 피해자를 배제한 비겁한 평화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

해석의 불일치를 해소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제3국을 포함하는 중재위원회 또는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해 ‘사법적 판단’을 받는 방식이다. 양국의 해석 중 어떤 해석이 더 타당한지에 대해 외부의 판단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식이 적절한지 의문이다. 생존 피해자들이 고령인 상황에서 장기간이 소요되는 절차가 피해자들을 위한 방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양국 중 일방의 해석이 ‘잘못된 해석’으로 판단될 경우 이에 따른 정치적·사회적 혼란 역시 상당할 것이다. 양국 사회가 대면하고 숙고해야 할 문제를 외부에 넘긴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다른 방식은, 해석의 차이를 인권의 가치로 메우는 방안이다. 해석의 차이는 있지만, 양국 모두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이 공동의 기반 위에 인권을 올리는 것이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2007년 중국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역시 소송으로 청구할 수 있는 권리는 소멸되었다는 논리로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도 판결문 가장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의견을 밝혔다. “피해자들이 입은 정신적·육체적 고통이 극히 컸고, 일본 기업은 중국인 노동자들을 강제노동에 종사시켜 상응하는 이익을 얻는 등 제반 사정을 비추어 보아 피해자들의 피해 구제를 위한 노력을 기대한다.” 일본 최고재판소의 ‘기대’에 따라 니시마쓰건설은 중국 피해자들에게 자발적으로 배상했다. 중대한 인권침해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소송의 권리가 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최고재판소 2007년 판결의 ‘기대’와 연결되는 것은, 한국 대법원 2018년 판결 중 김재형·김선수 대법관의 보충 의견이다.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을 지나치게 가볍게 보고 그 실상을 조사, 확인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 청구권협정을 체결한 것일 수도 있다. 청구권협정에서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에 관해 명확하게 정하지 않은 책임은 협정을 체결한 당사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고 이를 피해자들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 협정의 이견 해석을 이유로 피해자들의 권리 회복이 더는 지연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1965년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국의 민주화, 식민지 시기 피해자들의 권리 행사와 함께, 일본 정부 역시 식민지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 의사를 담은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간 나오토 담화, 김대중-오부치 선언 등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양국이 공유하는 인권의식의 진전은 1965년과 비교할 수 없다. 1965년 청구권협정 체결 과정에서 간과했던,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을 이제 양국 정부와 사회가 온전히 대면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아베 내각의 완고한 역사 수정주의 경향과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경제 보복의 내용을 볼 때 쉽지 않은 문제다. 그럼에도 보편적 인권의 가치와 청구권협정 해석의 공통분모에서 출발한다면, 한국의 민주화 이후 한·일 관계에서 ‘상수’였던 과거사 갈등 문제는 분명 진전을 볼 수 있다. 한국의 대법원 판결로 양국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정해야 한다. 한국 대법원 판결을 사실상 무효화하라는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은 결코 옳은 방법이 아니다.

기자명 임재성·김세은 변호사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대리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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