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안전 좀먹는 ‘새벽이 없는 삶’
  • 김민아 (노무사)
  • 호수 620
  • 승인 2019.08.08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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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촘한 업무 스케줄 중 단 한 개라도 삐끗하면 대형 사고다. 기한에 맞춰 무언가를 보내야 하고 받아내야 하는 일이 법무법인에서 일하는 나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닐 듯하다. 대리 중인 임금체불 사건이 있어서 체불임금을 내놓으라는 최고장을 써서 내용증명을 보내러 우체국에 갔다. 집배원 파업 여부가 결정되던 날이었다. 우체국에서는 원래 다음 날 도착 예정이지만 혹시 파업이 시작되면 하루 더 걸릴 수 있다고 공지했다. ‘하루 늦게 들어가면 혹시 소멸시효 문제가 생기지 않으려나.’ 주춤해서 머릿속으로 계산해본다. 걱정하는 듯 보였는지, 담당 직원은 다음 날 들어갈 확률이 훨씬 높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하루 전날에야 등기를 보내는 습관은 하루 만에 배송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윤현지 그림
야간노동은 2급 발암물질 
이처럼 ‘하루 배송’에 익숙했기 때문에 나는 얼마나 많은 분들을 바쁘게, 다치게, 죽게 만들었을까. 하루에 우편물 1000여 개를 배달하고 연간 2745시간 일한다는 집배원들은 과중한 업무로 인해 올해 상반기에만 9명이 과로사했다. 집배원들의 투쟁은 세상의 속도를 일하는 사람에게 맞춰야 한다고 깨닫게 하는 투쟁이다.
 
바쁘다. 너무 바쁘다. 식재료를 직접 골라서 사올 시간도, 장을 봐온 재료로 음식을 만들 시간도, 그 음식을 여유롭게 먹을 시간도 없이 다들 참 바쁘게 살아간다. 인터넷으로 장을 보거나 음식을 배송시킨다. 요즘은 밤에 잠들기 전 주문하면 이튿날 아침에 받아볼 수 있는 ‘새벽 배송’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새벽 배송은 바로 ‘새벽 없는 삶’이다. 야간노동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표한 2급 발암물질이다. 근로기준법에서는 밤 10시부터 새벽 6시 사이의 노동에 대해 본래 시급보다 50% 이상 가산한 임금을 지급하라고 정해놓았다.
 
야간에 일을 많이 해서 임금을 많이 받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야간노동이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에 되도록 그 시간에 일을 시키지 말라는 일종의 페널티다. 그런데 내가 밤에 잘 자고 일어나 건강한 아침 식사를 먹기 위해 누군가는 새벽 내내 발암물질이나 마찬가지인 야간노동을 해야 한다니. 이것은 근본적인 안전과 건강이 아니다. 복잡한 관계 속에 있지만 결국 누군가의 불건강과 불안전한 상태는 나의 건강과 안전에도 반드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피자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30분 배달제’를 시행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사회단체들의 문제 제기와 시민들의 지지로 30분 배달제가 폐지되었다. 배달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생각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종종 배달 경쟁이 등장해왔다. 패스트푸드점의 ‘20분 배달제’ 때문에 배달하던 청년 노동자가 택시와 충돌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최근에는 “생수 하나만 사도 30분 내 무료 배달”이라면서 편의점 ‘30분 배송’까지 등장했다. 일하는 사람의 건강과 안전은 스스로의 힘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당장은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빌리는 것이 편리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결국 지금 바쁜 내 시간도 다른 누군가에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나도 이렇게 바쁜 것 아니겠는가.
 
택배 기사들이 오는 8월16일을 ‘택배 없는 날’로 지정하자고 제안했다. 택배 기사가 하루 휴가를 내려면 수수료 이외에 건당 500~700원의 비용을 토해내야 한다. 하루 평균 배송 물량이 250개 정도라고 하니 하루 휴식의 비용이 너무 커서 여름휴가를 쓸 수 없다고 했다. 앞으로 ‘택배 없는 날’ ‘하루 더 늦어도 되는 날’ ‘야간 배송 없는 날’ 이런 날이 많아지기를. 배송 시간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배송하는 상품의 원료가 얼마나 정직한지, 배송하는 상품이 만들어지기까지 노동자에게 얼마나 윤리적이었는지가 중요한 세상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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