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대를 움직인다.’ 축구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 보수파 인사들이 한국 정부의 위안부 정책 등 과거사 문제를 비판할 때 자주 쓰는 프레임이다. 아베 총리도 ‘골대 이동론’을 여러 번 언급했다. 일본 우익의 ‘골대’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뿌리가 닿아 있다. 한일 청구권협정에 나오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조항을 근거로 삼는다. 

일본의 철벽 수비를 허문 건 노무현 정부의 결단이었다. 2005년 1월 정부는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 관련 문서를 처음 공개했다. 이전 정부는 ‘국익’ ‘일본과의 관계’ 등을 이유로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군 ‘위안부’나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가능한지 알 수 없었다. 이들은 2002년 법원에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냈고 2004년 2월 승소했다. 노무현 정부는 “국민의 알권리 충족과 행정의 투명성 증대 차원에서 관련국과 협의를 거쳐 재판(항소심) 결과와 관계없이 문서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와 이용훈 변호사(전 대법원장) 등이 참여한 한일회담 문서공개 민관공동위원회가 꾸려졌다. “피해자 개인들이 강제동원은 일제의 불법적인 한반도 지배 과정에서 발생한 정신적·물질적 총체적 피해라는 법적 논거로 일본에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가능하다” 등이 위원회의 결론이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위원회에 참여한 문재인 대통령도 이 법적인 문제를 정확히 알고 있다.

일본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고 밝힌 정부는 정작 법적 책임을 따지지 않았다. 이 모순을 메운 이들은 또다시 피해자들이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다시 소송에 나섰고 2012년과 2018년 한국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냈다. 법적으로 따지면 골대는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일본의 양식 있는 법조인들도 개인의 배상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본다.

우익의 역사 수정주의자들에게 기댄 아베 총리의 폭주는 골대를 옮기는 차원이 아니라 새 골대를 세워버린 꼴이다. 과거사 문제를 경제 보복으로 대응한 새 골대이다. 한국 정부 대응이 강경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만 정부의 언어와 시민의 언어는 같을 수도 있지만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시사IN〉이 일본 현지에서 만난 석학 우치다 다쓰루 교수는 “미디어는 양국 시민의 친근한 분위기를 절대 보도하지 않는다. ‘으르렁’대는 모습을 더 선호한다”라고 웃으며 말했다(제619호). 한 귀로 흘릴 말은 아니다. 〈시사IN〉도 대결의 언어만 확대 과장하는 건 아닌지 되돌아본다. 지금은 어쩌면 평화의 언어가 필요한 때인지도 모른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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