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하는 경제 덕에 독주하는 아베
  • 김잔디 (오사카 대학 법학과 교수)
  • 호수 620
  • 승인 2019.08.0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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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1일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연립여당이 이겼다. 경제 호황과 정권의 안정감이 승리의 일등 공신이다. 신생 정당의 원내 진출과 여성 당선자 증가는 이번 선거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100점 만점에 고작 10점이었다. 도쿄에 거주하는 회사원 이치다 다카시 씨(가명·49)는 아베 신조 정권에 매우 박한 평가를 내렸다. 이치다 씨는 경기부양책인 ‘아베노믹스’가 오히려 모두를 예민하게 만들었다고 느낀다. 만성적으로 인력이 부족한데 업무량은 나날이 많아진다. 월급 실수령액은 오히려 줄었다. 캔 커피 하나 사는 것도 망설이게 되고, 휴대용 물병을 가지고 다니는 동료도 늘었다.
하지만 이치다 씨는 7월21일 치러진 제25회 참의원 선거에서 선거구와 비례 모두 집권당인 자민당을 선택했다. “야당은 집권 세력이 되기에 불안정해 보인다. 노후 불안을 해소해줄 대안 정당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공격’에만 집중하지 대안이 없다고 할까. 반면 아베 총리는 그래도 일본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Reuter7월21일 아베 일본 총리(왼쪽)가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가 확정된 자민당 후보 이름 옆에 종이장미를 붙이고 있다.
도쿄에서 의약품 도매업에 종사하는 나루카와 요시카즈 씨(가명·52) 역시 경제문제로 자민당을 선택했다. “관료들의 실언이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로 일·한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것에 대한 불안은 있지만 아무래도 투표할 때는 역시 가족의 미래를 먼저 고려하게 된다.” 나루카와 씨는 지난 몇 년간 이전과는 달리 거래처 주문이 증가하고, 고등학교 3학년인 장녀가 대학 졸업 후 구직활동을 할 때도 지금처럼 경기가 좋으려면 경험 많은 안정적인 정권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선거 결과를 가른 건 역시 경제문제였다. 2012년 12월부터 전후 사상 최장기로 이어지고 있는 경기회복세, 완전고용 상태에 가까운 노동시장이 아베 정권을 ‘살렸다’.

집권 자민당과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이번 선거에서 각각 57석(선거구 38·비례 19), 14석(선거구 7·비례 7)을 획득해 124석 중 71석으로 과반의 지지를 받았다. 극우 정당인 일본유신회(선거구 10·비례 5)까지 합치면 81석이다. 하지만 참의원 전체 의석(245석)의 3분의 2인 개헌 발의선(164석) 확보에는 실패했다. 이에 따라 아베 총리가 이번 참의원 선거의 최대 쟁점 중 하나로 삼았던 헌법 제9조(전쟁의 포기, 전력 및 교전권의 부인) 개정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 역시 아베 정권을 도왔다. 이번 선거 투표율은 48.8%로 1995년(44.5%) 다음으로 가장 낮은 투표율이었다. 47개 도도부현(都道府県:한국으로 따지면 광역자치단체) 중 21개 현에서 투표율 최저를 경신했다. 요코하마에 사는 이치다 노리코 씨(가명·62)는 아예 투표장에 가지 않았다. “야당은 ‘약자를 도와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격차 발생을 막을 방안은 없는 것 같다. 어차피 자민당이 승리할 것이기 때문에 투표를 하지 않았다.”

이런 조건에도 불구하고 아베 신조 총리는 헌법에 자위대 근거 조항을 추가하는 9조 개정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참의원 선거 다음 날인 7월22일 아베 총리는 NHK 개표 속보 방송에 출연해 “적어도 제대로 개헌 논의를 해달라는 국민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한다. 개헌에 필요한 ‘3분의 2 의석’은 논의를 통해 형성하도록 하겠다. 다른 당 및 무소속 의원들과 논의하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믿는 구석 있는 아베, 한국에 계속 강공

ⓒAP Photo루게릭병 환자인 후나고 야스히코 씨(왼쪽)는 신생 정치단체 ‘레이와신센구미’의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
수출규제 강화 등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무역 갈등 역시 장기화할 조짐이다. 아베 총리는 선거 직후 자민당 당사에서 연 기자회견 때 ‘국익’을 강조하며 “한국이 국가 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라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한국에 대한 강경 태세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아베 총리의 ‘강공’에는 믿는 구석이 있다. 이번 선거는 선거권 연령이 20세에서 18세로 낮아진 후 시행된 세 번째 선거다. 젊은 세대의 투표로 여당 의석수가 늘어난 점이 눈에 띈다. 아베 총리는 “자민당은 레이와 시대(2019년 5월1일부터 적용된 일본의 새 연호)를 이끌어갈 10 ~30대의 젊은 세대로부터 강한 지지를 얻었다”라고 자평했다. 아베 총리의 임기는 2021년 9월까지다. 올해 11월만 넘겨도 일본 헌정사에서는 최장수 총리다.

아베 총리의 ‘독주’에도 불구하고 참의원들의 색깔이 다양해졌다는 것은, 이번 선거의 최대 수확이다. 특히 정치단체 ‘레이와신센구미(令和新選組)’의 의회 진출은 이번 참의원 선거 최대 이변이었다. 레이와신센구미는 결성 3개월 만에 비례대표 2명을 의회에 진출시키며 원내 정당이 되었다. 주요 방송이 한 번도 제대로 다루지 않았음에도 이뤄낸 성과다. 당선된 후나고 야스히코(61)와 기무라 에이코(54)는 각각 루게릭병과 뇌성마비를 앓는 중증 장애인이다. 대형 휠체어를 사용하는 두 사람의 당선을 계기로 일본 의회에서도 장애인을 위한 시설 보수 및 간병인 동행 규정 등이 마련될 예정이다.

레이와신센구미는 <역도산>(2004), <마이웨이>(2011) 등 한국 영화에도 출연한 적 있는 야마모토 다로 전 참의원이 이끄는 정당이다. 야마모토 대표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배우에서 정치인으로 진로를 바꾼 뒤 ‘반(反)아베’의 선봉에 서왔다. 그는 이번에 당선된 중증 장애인 외에도 싱글맘, 전 편의점 운영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비례대표 후보로 내세웠다. 최저임금 인상, 소비세 폐지 등의 생활 밀착형 공약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었다.
여성 당선자 수도 주목해야 한다. 일본 참의원은 여성의 정계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2018년 5월23일 ‘정치 분야에서 남녀공동참획(참여)의 추진에 관한 법률(평성30년 법률 제28호)’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강제성은 없지만 가능하면 남녀 후보자 수를 동수로 하라고 권유하는 내용이다. 이번 선거는 관련법이 시행된 뒤 치러진 첫 전국 규모 선거였다.

여성 당선자는 모두 28명(선거구 18명·비례 10명)이었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여성 의원을 배출했던 2016년 참의원 선거 때와 동일한 규모다. 그러나 선거 입후보자 370명 기준으로 보면 여성 후보가 104명(28.1%)으로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고 핵심 피해 지역 중 하나인 미야기현 복구를 내걸고 당선된 입헌민주당 소속 이시가키 노리코 후보(45)는 현역 거물급 의원인 아이치 지로 전 재무성 차관을 꺾고 의회에 입성하며 눈길을 끌었다. 역대 최다선인 8선을 기록한 의원도 여성이다. 32세에 처음 참의원 비례대표로 당선됐던 자민당 소속 산토 아키코 의원(77)이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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