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정적 유토피아’를 찾아가는 길
  •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 호수 619
  • 승인 2019.08.0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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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세력은 기본소득, 사회적 경제 등 다양한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아직 어떤 노선이나 이념이 비전으로 자리 잡지는 못했지만, 구체적 실천 과정을 통해 역사적 시민권을 획득하기 바란다.

 

복지국가를 주제로 강의할 때마다 이야기해왔다. 2010년 무상급식 논란을 계기로 태풍처럼 복지 의제가 등장하더니 이듬해 보편복지 담론이 부상하고 2012년 대선에는 모든 정치권이 복지국가를 주창하게 이르렀다고. 급식을 소재로 촉발된 논의가 겨우 2년 만에 복지국가론까지 급상승했으며, 그 덕택에 이렇게 복지국가도 시민 강좌에 오르게 되었으니, 참으로 역동적인 대한민국이라고.

근래 새로운 상황을 종종 접한다. 수강생이 묻는다. “복지국가도 좋지만 그렇다고 우리 사회 문제가 해결될까요?” “복지국가는 모든 게 호조건이었던 20세기 서구 나라에서나 가능한 모델 아닌가요?” “이제는 점점 일자리도 없어지고 빠른 고령화로 노인만 느는 세상인데 본질적인 해법이 필요하지 않나요?” 아직 복지국가를 제대로 체험하지 못했음에도 어느새 시민이 ‘복지국가 너머’까지 이야기한다. 그만큼 우리의 오늘이 ‘헬조선’에 가깝고 미래는 더 어두워 보이기 때문이다.

정의당 당 대표 선거 논쟁이 의미하는 것

최근 정의당이 새로 당 대표를 선출했다. 내년 총선을 책임지는 지도부로서 대중성 있는 심상정 의원이 뽑혔다. 언론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선거운동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은 ‘민주적 사회주의’였다. 이는 민주노총 출신 양경규 후보가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전환하자며 내세운 노선이다. 양 후보는 현재 우리가 겪는 문제의 뿌리가 자본주의이기에 현행 체제를 넘어서는 상상이 필요하다며 ‘진보적 다원주의’를 제시한 심상정 후보와 선거 기간 내내 노선 논쟁을 벌였다.

사실 양 후보가 제시한 민주적 사회주의 정책들은 정의당에서 그다지 새로운 건 아니었다. ‘제2의 토지개혁, 자산 재분배’ 등 용어는 선명했으나 실현 방안은 보유세 강화, 사회주택 확대, 무상교육 등 정의당 강령에 담긴 ‘정의로운 복지국가론’의 흐름 안에 있었다. 심상정 후보가 사민주의 정책을 두고 굳이 사회주의라고 부를 필요가 있느냐며 비판한 근거이다.

양 후보는 그럼에도 이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 당장은 추진하는 정책이 사민주의 틀을 넘지 않더라도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방향은 자본주의 극복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양경규 후보가 이념만 내세우는 걸까, 심상정 후보가 기존의 틀 안에 머물고 있는 걸까? 두 사람의 취지를 존중한다면 양 후보는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모순을 강조하고, 심 후보는 지금·여기에 충실하자는 제안으로 이해된다.

복지국가를 바라면서도 복지국가를 넘어서야 한다는 질문, 그리고 당장 일자리를 원하면서도 자본주의 체제를 바꾸어야 한다는 정의당 논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금 당장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방안을 제시하진 못하지만 그럼에도 현재 자본주의 체제는 경제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정당성을 잃었다는 시대 진단으로 읽힌다.

해방 이후 이념을 둘러싼 갈등에서 깊은 상처를 지닌 우리나라에서 ‘민주적 사회주의’ 용어가 적합한지는 토론이 필요하지만, 명확한 노선을 세우려는 시도는 존중할 만하다. 여기서 관건은 이념이나 노선이 지녀야 할 역사적 시민권이다. 시대정신을 담으면서도 실질적으로 성과를 낼 때 비로소 생명력을 지닐 수 있다.

 

ⓒ연합뉴스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오른쪽 네번째)이 1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족정책으로서의 기본소득제 거버넌스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19.7.18

 

 

 

지금 진보 세력은 동구권 사회주의 실험의 실패, 복지국가가 처한 도전을 맞아 다양한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에 서 있다. 예를 들면, 신자유주의 민영화에 반대하며 등장한 ‘공공성’, 기존 복지 시스템의 한계를 넘어서자는 ‘기본소득’, 노동자 스스로 내부 격차를 축소하며 계급적 정체성을 형성하자는 ‘사회연대’, 나아가 제3의 분야로 떠오른 ‘사회적 경제’와 ‘공유경제’ 등등. 아직 어떤 이념이나 노선이 미래 사회를 대표하는 비전으로 자리 잡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구체적 실천 과정을 통해 어느 대안이든 역사적 시민권을 획득하길 바란다. 이름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리고 인류는 늘 새로운 대안 사회, ‘잠정적 유토피아’를 찾아 걸어왔고 또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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