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종이 아닌 스타 설리
  • 랜디 서 (대중음악 평론가)
  • 호수 619
  • 승인 2019.07.3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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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의 새 예능 프로그램 〈악플의 밤〉에 설리가 MC로 합류했다. 인터넷 좀 하는 사람 중에 설리가 ‘악플 많이 받는 스타’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설리는 뭘 그리 잘못했길래 악플의 중심이 되었나? 설리는 2015년에 걸그룹 에프엑스(f⒳)를 탈퇴했다. 그 과정이 매끈하지 않았다. 탈퇴 몇 개월 전부터 스케줄 불참 등 활동 중단의 징조를 보여온 그였다. 때마침 파파라치성 기사로 연애 사실이 밝혀졌고, 탈퇴 결정에 팬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서 처음의 질문을 상기해본다. 그래서 설리의 잘못은 에프엑스를 탈퇴한 것인가?

그렇다고 끝맺기에는 설리의 이름 옆에 뜨는 연관 검색어는 그와 관련이 없어 보였다. 책임을 다하지 않은 그를 비판할 수 있겠지만, 인터넷에 넘치는 악플은 정작 성희롱이 주류였다. 그는 ‘순수한 걸그룹 막내’에서 ‘성적으로 타락한 여자’로 낙인찍혔다.

ⓒ시사IN 양한모

설리는 이때부터 인스타그램 활동을 적극적으로 했다. ‘타락한 소녀’ 낙인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즐겁게 연애하는 모습을 올렸다. 어쩔 땐 성적인 함의가 담긴 사진도 서슴지 않았다. 내용을 두고는 지금도 논란이 있지만, 이 당시의 SNS 활동은 그때까지 설리의 커리어 사상 가장 자기 의지에 가까운 행위였다. 아이돌 시절에는 악플이나 악성 기사에 어떤 반격도 하지 못하던 그였다. 예상대로 ‘관종(관심 종자:관심을 받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는 사람)’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런 악플이 많아질수록, 역설적으로 설리 자신의 목소리는 아이돌 때보다 선명해졌다.

갈등의 정점은 2016년 ‘노브라’ 이슈였다. 설리는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은 일상복 차림의 사진을 여러 차례 SNS에 올렸다. 이를 고깝게 보는 연예 기사들에 수많은 악플이 올라왔다. 그러자 브래지어의 불편함을 아는 여성들이 그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신체 부위로 성애화당하지 않을 권리. 건강과 편리를 위해서라면 노브라를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 권리. 그런 선택을 사회적으로 정죄받지 않을 권리. ‘한국적 감성’ ‘시기상조’라는 말로 자꾸만 막히던 그 이슈를 설리의 관종적 행위가 다시금 공론장에 끌고 나온 것이다.

그리고 올해, 설리는 〈악플의 밤〉에서 ‘액세서리로서의 브래지어’를 말하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댓글은 이제 설리의 그런 발언을 응원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공동 MC 김숙이 논란이 되면 노브라 사진 게재를 안 할 법도 한데 계속한 이유가 있냐고 묻자, 그는 “사람들이 편견을 없애는 계기가 되길 바랐고, 동시에 이게 ‘별거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주고도 싶었다”라고 말했다.

아이돌 시절 그는 예쁘기만 한 이미지였다. 철저히 대상화된 존재가 자기표현을 하기 시작했을 때 대중은 낯설어했고, 다른 소녀들에게 본보기라도 보이듯 강하게 비난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설리라는 인물은 대중의 인식 속에 대상에서 주체가 되어가고 있다. 자연히 운신의 폭은 훨씬 넓어졌다. 여기까지 오는 길은 요란했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의 ‘관종력’이 마침 세상이 움직이는 방향과 합치해서, 그가 보여주는 당당한 개인의 삶이 우리에게 훨씬 큰 울림을 준다. 사람들이 큰 관심을 갖는 유명인을 일컫는 말, 스타. 설리야말로 관종이 아닌 스타라 불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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