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사람의 눈으로 도저히 볼 수 없는 세계를 펼쳐 보일 때다. 영월에서 열리는 동강국제사진제(7월5일~9월29일)에서도 이런 사진을 보았다. 독일 예술대학에 처음으로 사진학과를 창설한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베어학파) 출신 작가들의 사진이 전시된 국제주제전에 걸린 클라우디아 페렌켐퍼의 사진에 나는 압도당했다. 소형 곤충 사진인데, 눈으로는 관측 불가능한 영역이 거대하게 확대되어 포착되었다. 이런 사진을 ‘포토 매크로그래피’라 부르는데 요즘 유행하는 예술적인 과학 사진의 가장 흔한 형태 중 하나다. 쉽게 현미경 사진이라 생각하면 된다. 요즘은 수백만 배를 확대해 원자도 관측이 가능하다.

사실 사진의 발명 목표가 과학적 수단이었다면 사람들은 의아해할까? 1839년 8월19일 프랑스 한림원에서 열린 ‘과학과 미술 아카데미’에서 파리의 천문대장 겸 물리학자인 프랑수아 아라고는 ‘다게레오 타입’의 사진술을 발표했다. 그는 프랑스 정부에 이 특허를 사들여 만방에 공포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이날이 ‘사진의 날’이 되었다.

우주배경복사의 불균일성을 발견한 사진

ⓒ동강국제사진제 제공인간의 눈으로는 관측 불가능한 영역을 거대하게 확대해 포착한
클라우디아페렌켐퍼의 곤충 사진.


인류는 수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세상을 바꾼 사진의 목록에는 과학 사진이 다수를 차지한다. 191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해 중력이 공간을 휘게 한다고 주장했다. 아인슈타인은 수성의 근일점에 매우 미세한 차이가 있고 이것이 바로 중력이 빛을 휘어지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직은 가설이었다. 영국 왕립천문학회 소속 천문학자 아서 스탠리 에딩턴이 검증에 나섰다. 그는 1919년 대형 카메라와 탐사대를 이끌고 아프리카의 오지 섬 프린시페로 배를 타고 가 한 달간 촬영 준비를 한 끝에 6분간 일식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을 통해 별빛이 태양에 의해 휜다는 것을 포착했다. ‘과학 사진이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증명한 쾌거였다. 이 사진으로 아인슈타인의 주장은 가설에서 이론이 되었다.

그 후로도 인류에 큰 영향을 끼친 과학 사진은 많았다. 그중에서도 우주배경복사의 불균일성을 발견한 사진이 압권이었다. 우주 생성은 늘 과학자들의 연구 대상이었다. ‘빅뱅 이론’은 우주가 대폭발로 생겼다고 본다.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먼저 러시아 출신의 미국 물리학자 조지 가모는 대폭발 이후 광자의 형태로 방출된 복사(우주배경복사)의 일부가 우주에 남아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1964년 미국 벨연구소의 아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은 4080㎒ 대역에서 들려오는 초단파 잡음이 우주에서 온다는 것을 알면서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했다. 그런데 우리 우주에 항성과 행성이 있기에 우주배경복사는 균일하지 않아야 한다. 과학자들의 다음 목표는 우주배경복사의 미세한 온도 차이 확인이었다. 이를 위해 1989년 미국 물리학자 조지 스무트가 주도한 ‘코비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미국 항공우주국(나사)이 쏘아 올린 우주망원경 코비가 사진을 전송했고 그 사진에서 10만 분의 1 정도 온도 차를 발견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조지 스무트는 기자회견에서 “만일 여러분에게 신앙이 있다면, 이것은 신의 얼굴을 본 것과 같다”라고 이야기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이 사진은 우리가 보는 가시광선이 아니라 ‘태초의 빛’의 흔적인 마이크로파를 찍은 것이었다. 이런 과학 사진을 비가시광선 사진이라 부른다.

과학 사진은 생경하다. 인간이 전에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름답다. 이 또한 전에 느껴보지 못한 아름다움이다. 이런 미학은 재빠르게 기존 예술의 틈으로 파고들어갈 것이다. 사진이 회화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기자명 이상엽 (사진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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