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평등을 지향하는 밴드라고 해도 ‘주도권을 가진 멤버’는 있기 마련이다. 이른바 밴드의 구심으로 작동하는 인물인 셈이다. 즉, 멤버들 중 누군가가 자신의 음악적인 욕망에 충실한 음악을 현실화하는 와중에 다른 누군가는 철저히 자기 욕심을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래야 밴드라는 생명체가 굴러갈 수 있어서다.

피제이 모턴이 정확히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그는 밴드 활동만 해도 남부럽지 않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밴드의 멤버이기 때문이다. 그가 속한 밴드는 바로, 아무리 팝을 안 들었어도 이름 정도는 알고 있을 확률이 높은, 마룬파이브(Maroon 5)다(‘머룬파이브’가 정확한 표기이지만 검색의 편의를 위해 마룬파이브로 썼다).

ⓒAP Photo피제이 모턴(아래)은 마룬파이브의 키보디스트이다.


그렇다. 피제이 모턴은 마룬파이브의 키보디스트이다. 수많은 국가의 차트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투어 한번 했다 하면 일반인은 감히 꿈꿀 수도 없을 자본을 쓸어 담는 밴드의 일원인 것이다. 글쎄. 만약 나였다면 한껏 만족했을 듯싶다. “이 정도면 더 바랄 게 없어” 하고 게으름 피웠을 게 확실하다. 밴드 활동을 쉴 때는 밀린 게임만 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피제이 모턴은 달랐다. 꾸준히 자기 욕망을 실천했다. 기실 그는 마룬파이브의 정식 멤버가 아니었다. 2010년 투어 멤버로 먼저 합류했고, 2012년에야 정규 멤버로 이름을 올렸다. 흥미로운 건, 2012년 이후 그의 창작력이 도리어 대폭발했다는 사실이다. 각각 2013년과 2017년 메이저 솔로 데뷔작 〈뉴올리언스(New Orleans)〉와 2집 〈검보(Gumbo)〉를 발표했다는 게 그 증거다.

장담할 수 있다. 마룬파이브 일원으로서의 피제이 모턴과 독립적인 뮤지션으로서의 피제이 모턴은 아예 결이 다른 예술가다. 전자일 때 그는 지극히 팝의 지향에 충실한 면모를 들려준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아는 팩트다. 그렇다면 후자일 때는? 그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뉴올리언스에 가서 가스펠과 솔(soul)의 흔적이 짙게 묻어나는 음악을 추구한다.

모두를 놀라게 하는 ‘리듬 창조력’

피제이 모턴의 부모는 모두 목사였다고 한다. 교회에서 자라 가스펠을 배웠고 뉴올리언스에서 성장한 것은 그에게 재즈와 솔의 축복을 내려줬다. 그는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에 엄청난 자부심을 지닌 뮤지션이다. 1집에서는 고향을, 2집에서는 고향의 대표 음식을 음반 타이틀로 내건 게 이를 증명한다. 참고로, 올해 2월 뉴올리언스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처음으로 검보 수프를 먹어보았다. 정말 맛있어서 혀로 설거지를 해버렸다.

그의 음악적 이상향은 스티비 원더로 보인다. 1집에서는 그를 초대해 ‘온리원(Only One)’이라는 곡을 함께 불렀고, 그래미상 후보에도 올랐다. 2집 첫 곡 ‘퍼스트비갠(First Began)’은 이보다 더하다. 누군가에게 스티비 원더의 미발표곡이라고 해도 덥석 믿을 수준이다. 그렇다고 그를 단순한 카피캣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과거의 유산에 경의를 표할 줄 알면서도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내는 음악가라고 봐야 옳다. 과연, ‘스티킹 투 마이 건스(Sticking to My Guns)’ 같은 곡에서 보여준 리듬 창조력은 듣는 이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다. 우리 시대의 젊은 스티비 원더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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