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지켜낸 발리가 달리 보인다
  •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 호수 617
  • 승인 2019.07.1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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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는 1만8000여 개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섬이 많다 보니, 어떤 곳은 인도네시아의 영토라는 것을 모르고 지내다가, 한참 뒤에야 ‘아, 거기도 인도네시아 땅이었어?’ 하는 경우도 있다. 그중 한 곳이 발리다.

세계 여행자들이 인도네시아의 다른 섬보다 유독 발리를 좋아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독특한 전통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신자가 90%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다. 헌법 전문에도 ‘유일신에 대한 신앙’이 명문화되어 있다. 그런 상황에서 발리 사람들은 인구보다 신의 숫자가 많다고 하는 힌두교를 꿋꿋이 믿으며 살아간다. 포장이 힌두교일 뿐, 내면에는 샤머니즘과 주술신앙도 생생히 살아 있다. 힌두교와 불교의 색채가 뒤섞인 건축양식, 화산에서 흘러내린 물을 이용하기 위한 치수(治水) 조직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구성하는 방식까지, 발리 문화는 관광지화라는 거센 물결 속에서도 고유한 특성을 잃지 않고 있다.

네덜란드 세력에 맞서 싸우며 역사를 바꾼 발리인들

ⓒEPA발리의 청년들이 힌두교 신년을 맞아 기념 행사를 하는 모습.

15세기 들어 이슬람은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위세를 떨치기 시작한다. 일찍부터 이곳의 무역을 장악했던 아랍인들의 영향에 힘입어, 이슬람으로 개종한 집단들이 자바, 수마트라 같은 큰 섬의 정권을 장악해나간다. 인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기존 지배계층들은 피난처를 모색해야 했다. 한때 지금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영토를 다 합친 영역을 지배하던 마자파히트 왕국은 내전과 이슬람 세력과의 갈등으로 인해 국력의 쇠퇴를 겪다가 16세기 초에 멸망하고 만다. 이때 망해버린 왕국의 잔존 세력들이 대거 건너간 곳이 바로 발리였다. 왕족, 귀족, 학자, 예술가들이 몰려들어 발리의 문화를 급격히 업그레이드했다.

이슬람 세력에 이어 유럽에서 건너온 네덜란드 세력이 이 지역의 패권을 차지했다. 이들은 애초 발리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돈이 되는 향신료가 생산되는 섬도 아니었고, 큰 배가 드나들기에도 어려운 지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세기 들어 다른 유럽 세력들이 이 지역에 진출하면서 전략적 요충으로서 중요성이 커져갔고, 오스트레일리아로 향하는 무역선의 기항지로 주목받으며 네덜란드 해군의 본격적인 침공이 시작되었다. 1908년 네덜란드 세력은 발리의 지배자였던 쿨룽쿵 왕가를 전멸시키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발리인들의 모습은 이후 역사를 바꿔놓는다. 전쟁에서 이길 가망이 없게 되자, 왕족과 귀족들이 자결하기로 결심하고 단검을 뽑아든 채 광장을 향해 나아갔고, 이를 지켜보던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세해 4000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기가 질렸던 것일까. 네덜란드인들은 발리 지역에서 ‘윤리정책’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다. 발리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발리인들의 교육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발리의 독특한 문화와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감탄한 네덜란드인들은 발리를 국제적인 관광 상품이자 자랑거리로 내세우기 시작한다. 1920년대에 이미 발리는 유럽인들이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여행지가 되었다. 인도네시아가 독립을 이루고, 발리가 인도네시아공화국의 일원이 된 이후에도 국제적 관광 명소로서 발리의 위상은 한결같았다. 지금은 한 해에 외국인 500만명이 몰려드는, 인도네시아 관광산업의 한 축을 이루는 지역으로 자리매김했다.

피난살이로 이룬 문화를 죽음으로 지켜낸 변방의 사람들. 아름다운 해변과 세련된 클럽을 넘어,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에 시선을 던지면, 발리 여행은 더 새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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