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태어난 배경에는 이미지화에 대한 욕망이 있다. 그 욕망은 사진이 태어나던 19세기 중반 유럽의 분위기와 관련된다. 당시 유럽은 산업화로 신흥 부르주아들과 중산계급이 등장했다. 그들은 개인의 이미지화, 즉 초상화를 원했다.

한 개인의 이미지화는 오래전부터 욕망의 대상이었다. 이미지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특별한 부와 권력을 갖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었다.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왕들은 다양한 방식이나 이미지로 남아 무덤 속에 들어 있었다. 로마 시대 황제들 역시 초상이나 조각 작품이 많이 남아 있고, 금화에 이미지가 새겨져 있다.

조선 시대 왕이나 고관들은 공식적인 초상화가 제작되었다. 이미지화한 고관의 초상화는 가문의 영광이어서 두고두고 사당에 보존되었다가 적절한 시기가 되면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강흥구 제공사진관 입구 벽에 걸린 사진. 사진관은 폐업했지만 사진은 남아 있었다.


이런 욕망의 배후에는 불멸을 향한 욕구와 더불어 현실의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사진 초창기부터 유럽 사진관들은 그런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장소였다. 예를 들면 유명한 프랑스 사진가 나다르의 사진관에는 의상·무대장치와 같은 다양한 배경이 준비되어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신분 차림의 옷을 골라 입고 배경으로 처리된 그리스 신전의 기둥에 기대 사진을 찍었다. 도달할 수 없는 신분이나 지위 및 가보지 못한 장소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켰다. 그리고 이는 아마도 사진이 회화와 조각에서 이어받은 가장 중요하고도 명백한 특성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욕망의 과장과 상품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집집마다 있는 낡은 앨범을 뒤져보면 오래된 사진 속에서 그 욕망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 배경에 야자수가 그려진 바닷가나 유럽의 풍경이 쉽게 눈에 띈다. 이미지화의 욕망이 탁월하게 제도화된 경우가 결혼식과 돌 사진을 중심으로 한 아이들 사진일 것이다. 결혼식이라는 행사는 남성보다 여성이 중심이다. 그 핵심은 순백의 웨딩드레스와 꽃 장식이다. 일생에 한 번이라는 이유로 여성은 서양의 공주나 귀족들이 입는 드레스 차림으로, 남성은 턱시도를 입고 사진을 찍는다. 돌을 맞은 아이 사진도 마찬가지다.
날개를 단 천사로 분장하거나 왕관을 쓰고 곤룡포를 입고 찍은 사진이 한때 대세였다.

한 오래된 사진관 입구 벽에 걸린 사진도 그러했다. 사진관은 이미 오래 전에 폐업했지만 사진은 남아 있었다. 값싼 키치 스타일의 어두운 액자 속에 붉은색 곤룡포를 입은 남자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코끼리 조각상 옆에 앉아 있다. 물론 이 사진을 찍은 부모는 아이가 왕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진관 혹은 욕망을 이미지화하는 사업은 그것을 과장해서 상품화한다.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욕망은 생산되고 제도화되며 결국 먼지를 뒤집어쓴 사진이 되어 벽에 걸려 있다.

기자명 강홍구 (사진가·고은사진미술관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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