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황건성 한양대학교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내가 두 살 무렵부터 나를 진료해서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주치의였다. 목소리가 굵고 풍채가 좋은, 따뜻한 사람이었다. 명절이 되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로 내 안부를 묻는 엽서를 보내주었다. 그는 30대 중반 의과대학 교수 경력 초기에 나를 만났는데, 내 신체는 그에게 중요하고 흥미로운 사례였다. 수많은 정형외과 레지던트들이 병실에 찾아와 내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다리를 만지고 사진을 찍었다.

10여 차례 수술을 받으며 내 상태는 차츰 안정되었다. 1년에 한두 번은 정기 검사를 위해 서울 한양대학교 병원을 방문했다. 진료실 밖에서 순서를 기다리면, 간호사가 오가는 사이 열린 문으로 황 교수의 두꺼운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쓰면서도 친밀한 말투였다. “어머니, 애들은 자랄 때 원래 그래. 괜찮아요. 걱정 안 해도 돼.” 나는 추가 수술이 필요하다는 선고가 떨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그의 진료실로 들어가곤 했다. “원영이 지난번 수술한 게 자리를 잘 잡았어요. 어려운 시기는 다 넘겼어. 집에서 운동 좀 하고.” 그렇게 진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오면 갑자기 배가 고파져서, “엄마 나 돈가스 사줘!”를 외쳤다.

ⓒ한성원


휘어진 종아리뼈를 자르고, 각도를 틀어 재조합하고, 금속 핀을 지지대로 연결하는 황건성 교수의 공학적 해법이 내 골절 빈도를 줄였다. 다리를 앞으로 뻗고 앉아 발가락 끝을 몸 쪽으로 당기면 무릎과 발가락 끝이 직선으로 연결되었다. 손으로 주변 사물을 잡고 약간씩 보행하는 일도 가능했다. 그렇게 열세 살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위를 돌아보고 나는 작은 충격에 빠졌다. 나보다 5~10㎝ 정도 더 컸던 동네 친구들이, 순식간에 20㎝도 넘게 커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여전히 팔씨름에서는 나를 이기지 못하는 그 아이들이, 어마어마하게 길고 강력한 다리근육을 드러낸 채 한여름 우리 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리저리 알아보던 나는 뼈를 늘려 신장을 키우고 몸에 균형을 잡아준다는 시술(사지연장술)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황건성 교수를 만나러 다시 서울에 가던 날, 나는 이에 대해 물어보기로 결심했다. 여전히 두근거리던 한양대병원 본관 건물의 진료대기실을 지나 황 교수를 만났다. 그는 내가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눈치를 보냈고, 어머니가 시술에 대해 물었다. 추가 수술이 필요하다는 선고를 들을 때보다 더 긴장된 마음으로 나는 그의 말을 기다렸다. 고개를 약간 기웃하면서, 그가 나를 바라보고 말했다.

“그러지 마. 응?”

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다시 한번 그가 말했다.

“그러지 마.”

병원 밖을 나왔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다. 나는 해결 불가능한 문제가 더 있다는 점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가시적인 장애와 그렇지 않은 장애의 경험은 꽤 다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장애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때로 타인에게 설명해야 하는 부담을 진다. “(당신이 보기와 다르게) 제가 신장장애가 있어서 3일 연속 출장은 어렵습니다.” 상대는 의심한다. “겉보기에 멀쩡하구먼. 핑계 아냐?” 반면 장애를 선명하게 외부로 드러내는 사람은, 그 장애가 표현하는 상징이 자신의 전부가 아님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를 늘 안고 있다. “(당신이 보는 그대로 내가 휠체어를 타지만) 3일간의 출장을 제가 가고 싶습니다.” 상대는 의심한다. “그게 되겠어요?”

외부로 드러난 장애의 강력한 상징 효과를 돌파하여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표현하고 인정받는 일. 가시적인 장애를 지닌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가장 어려운 과제다. 3일간의 출장은 문제도 아니다. “(당신이 보는 그대로 내가 휠체어를 타지만) 내가 섹스도 하고 아이도 기릅니다.” 상대는 쉽게 의심할지도 모른다. “파트너가 변태이거나, 당신이 엄청 부자인가요?”

사이보그적 신체는 점점 대중적일 테지만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적 인프라의 개선은 기능적 제약이라는 면에서 장애를 점차 해소한다. 저상버스와 각종 의사소통 보조기기, 계단을 올라가는 전동 휠체어, 신경 작용만으로 온몸을 움직이게 하는 로봇 외골격을 우리는 이미 현실과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아마도 적지 않은 장애인들은 공학자들에게 더 묻고 싶은 질문이 있을 테다. “저… 이 로봇 외골격이 너무 안 섹시한데요.” 이런 질문은 당장 뼈가 부러지고 학교도 못 가는 장애인을 위해 노력하는 공학자에게는 다소 철없는 욕심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지 마세요. 네? 우선은 몸을 기능적으로 최적화하도록 해요. 그리고… 용기를 내세요.”

 

ⓒMari Katayama 홈페이지 갈무리일본의 예술가 마리 가타야마는 장애가 있는 자신의 몸을 반영하여 사진을 찍었다.
위는 두 개의 손가락과 의족을 재배치한 작업 모습.


기계와 결합하는 이유는 대체로 특정 기능을 회복하거나 강화하기 위함이었다. 사이버펑크를 비롯한 현대 문화의 특정한 조류는 기계와 결합한 인간의 모습을 그저 후크 선장 같은 악당이 아니라 독특하고 예측 불허한 미적 세계로 이끌었다. 각종 첨단 보조기기의 발달은 〈공각기동대〉의 이미지(말하자면, 스칼릿 조핸슨)를 현실화하는 중이다. 양쪽 종아리 아래가 없는 모델 에이미 멀린스는 사람의 다리와 가장 유사한 의족을 쓰는 대신, 우아한 곡선의 스틸 의족을 착용한다. 그녀의 목적은 장애를 숨기는 것이 아니며 ‘효과적인 보행’처럼 특정한 기능의 회복만이 목표도 아니다. 멀린스는 기계에 접속한 자기 신체를 에로틱한 아름다움의 요소로 표현한다(영화 〈킹스맨〉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악당을 떠올려보라). 일본의 예술가 마리 가타야마는 한쪽 손의 손가락은 두 개로, 두 다리는 구불구불 휘어진 채로 태어났다. 그녀는 사춘기 나이가 되었을 때 양쪽 다리 기능을 재활하는 대신, 아예 두 다리를 절단하고 의족을 착용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의족 위에 그림을 그리고, 두 개의 손가락과 자신의 의족들을 재배치한 사진 작업을 시도한다.

‘변태적’으로 보이겠지만, 아예 특정한 장애나 보장구에 성적으로 집착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성과학자 리처드 브루노는 이들을 장애인이 되고 싶은 사람(wannabe), 장애인을 추종하는 사람(devotee), 장애인인 척하는 사람(pretender)으로 구별한다. 이 사람들은 소리가 잘 들림에도 보청기를 착용하고, 다리가 없는 사람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신체 자체가 디자인의 문제가 되자 ‘장애’가 이 디자인에 영감을 불어넣는 모양새다. 그래서 나는 사지를 연장하기보다 다리를 잘라내고, 섹시한 의족을 착용하고, 휠체어를 탄 사람을 보면 흥분하는 디보티(devotee) 커뮤니티를 찾아가면 될까? 그것으로 충분한가?

사이보그적 신체를 예술작품이나 성애적(eros) 이미지로 추종하는 이들이 아직 보편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는 소수의 독특한 성향에 가까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와 접속된 인간 이미지가 ‘불편하다(uncanny)’고 느끼는 기준은 높아지는 중이다. 안경은 철저히 의료기기로 취급되다 1970년대 패션의 일부가 되었고, 지금은 안경 쓴 얼굴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을 아무도 ‘변태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아마도 인간 신체와 기계가 접속한 모습을 미적으로 다루는 문제 역시 점점 더 대중적인 감성이 될 것이다. 이는 장애인들이 자신의 장애를 숨기거나 그 의미를 애써 축소하는 전략을 취하지 않고서도 더 자유롭게 자기를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경향이 만족스럽지는 않다. 이를테면 영화 〈알리타:배틀엔젤〉의 주인공인 여성형 로봇 알리타는 왜 굳이 전투 중에 팔다리가 잘려나가며, 그 모습은 왜 필요 이상으로 상세하게, 자주 등장하는가?(원작 만화 〈총몽〉에서도 팔다리가 잘려나간 여성 로봇의 이미지를 사방에서 본다) 여기서 우리는 사이버펑크적 시각이 장애를 단순하게 ‘성애화’하는 하나의 형식을 본다.

손상-비손상의 균형, 그 자체의 아름다움

적어도 지난 수십 년간 장애인들은 장애를 가진 몸이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고 그 중심에는 장애가 한 사람의 인간에게 따라붙은 ‘부수물’이 아니라, 그에게 완전히 통합된 경험이자 존재의 일부임을 보이려는 노력이 있었다. 장애를 가진 몸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것은 ‘절개’가 가능한 침입자도 아니지만, 종교적이거나 성적 의미가 듬뿍 첨가된 액세서리도 아니다. 장애인의 몸은 손상된 그 신체 부위 자체 때문이 아니라, 혹은 장애로 인해 그가 처한 제약과 구속의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그의 손상되지 않은 신체가 중력을 감당하느라 생성한 근육, 짧은 다리나 의족, 휠체어와 오랜 시간 결합해서 새롭게 어우러진 손상-비손상의 균형과 속도, 우아함 때문에 아름다울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황건성 교수는 2008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나는 그가 사망하기 1년 전 치과 치료의 조언을 구하러 10여 년 만에 그의 진료실을 찾았다. 그가 나를 보자 말했다. “원영이는 이제 완전히 휠체어 바운드가 됐구나.” 아쉬움의 표현이었는지, 그렇게도 잘 지내게 되었다는 의미인지 몰랐지만 나는 말했다. “덕분에 몸이 안정되어서, 너무 잘 지내고 있어요 박사님.” 사지연장술을 더 이상 묻지 않았으며, 섹시한 휠체어를 구하지 못해 안달하지도 않았다.

기자명 김원영 (변호사·〈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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