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12층에 이상한 방이 있다
  • 장일호 기자
  • 호수 617
  • 승인 2019.07.1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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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16·17 사번 아나운서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처지다. 회사는 계약이 만료됐다고 주장하고, 당사자들은 부당해고라고 한다. 언론 장악의 ‘주범’이 빠져나간 자리에 약한 고리만 남았다.
방문증을 발급해주던 직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12층에는 아나운서국이 없는데요.”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MBC 아나운서국은 9층에 있기 때문이다. 그 직원조차 몰랐던 사실이 있다. 지난 5월27일 MBC 본사에 ‘임시’ 아나운서국 한 곳이 더 생겼다. 콘텐츠사업국이 있는 12층 탕비실로 향하는 문을 열면 또 다른 문이 나온다. 콘텐츠사업국 회의실로 쓰던 공간 중 하나다. 문 옆으로 뒤집힌 팻말이 눈에 띄었다. 들춰보니 ‘아나운서국’이라고 적힌 글자가 보였다. “속상해서 뒤집어놨어요.” ‘17사번’ 이선영 아나운서가 멋쩍게 웃었다.

오전 9시를 전후해 책상 8개로 꽉 찬 좁은 공간이 분주해졌다. 2016년 입사한 엄주원·안주희·정다희·정슬기 아나운서와 2017년 입사한 김민호·박지민·이선영 아나운서 7명이 금세 자리를 채웠다. 5월27일 약 1년 만의 출근을 앞두고 회사 측 변호인은 이들에게 “월급은 줄 테니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했다. 출근하겠다는 의사를 전하자 ‘회사가 정하는 바에 따라’ 부여하겠다던 업무는 한 달째 아무 소식이 없다. 사원증 대신 발급된 건 출입증이었다. 누구도 이들의 출퇴근을 관리하지 않는다. 휴가도 마찬가지다. 인사부에 문의하자 ‘자유롭게 하라’는 대답을 들었다.

단순히 장소만 기존 아나운서국과 격리된 게 아니다. 내부 통신망에 접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내 이메일에 접속하거나 게시판 공지사항도 확인할 수 없다. 책상과 의자, 컴퓨터만 있는 공간에 신문과 사무용품 등을 요청한 지 열흘 만에 온 건 부탁하지도 않았던 인스턴트커피였다.

ⓒ시사IN 이명익2016년과 2017년 입사한 아나운서들에게는 사원증 대신 출입증이 발급됐다.

이들의 ‘신분’에 대한 견해차는 극과 극이다. 회사는 계약 만료된 계약직 아나운서라고, 당사자들은 부당해고 된 아나운서라고 주장한다. 지난 5월13일 법원은 일단 부당해고 쪽에 손을 들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민사합의21부는 이선영씨를 비롯해 16·17 사번 아나운서 8명이 MBC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 지위보전 가처분 신청’을 인용 결정했다.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류하경 변호사(법무법인 휴먼)는 “비슷한 사건 가처분 판결문을 봐도 보통 ‘본안 소송에서 다툼의 여지가 있다’라고 남긴다. 이렇게까지 명확하게 부당해고를 설시하는 경우는 드물다”라고 말했다.

원하지 않았던 싸움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른바 MBC가 ‘정상화’되면서 시작됐다. 2016년과 2017년 당시 이들은 ‘전문계약직’으로 입사했다. 지상파가 상시·계속적 업무를 수행하는 아나운서를 계약직 형태로 뽑는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이례적이다. 공영방송을 정권의 입맛에 맞게 길들이려는 지난한 시도 끝에 경영진이 찾은 ‘묘수’였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9년간 방송이 가진 영향력을 정권에 유리한 쪽으로 끊임없이 통제하려 애썼다. 이른바 언론 장악이다. 이는 노조 탄압 등 부당노동행위로 이어졌다. 공채 대신 ‘길들이기 쉬운’ 경력을 골라 뽑는 식이었다.

정치적 신념이나 출신 지역을 살펴 뽑은 경력 사원마저 노조에 가담하자 회사 측이 마지막으로 빼든 칼이 계약직 선발이었다. 해고가 까다로운 정규직과 달리 계약 만료를 이유로 간단히 해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MBC는 당시 아나운서 공개 채용 공고를 내며 ‘평가에 따라 계약 연장 가능’ ‘향후 MBC 내부 기준에 따라 고용 형태 변경 가능’ 따위 문구를 기재하며 여지를 두었다. 평가 절차와 경쟁률 역시 역대 선발 과정과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건 한 가지뿐이었다. 노조에 가입하거나 동조하면 해고될 가능성이 99%라는 점이었다.

특히 ‘파업의 얼굴’ 구실을 했던 아나운서국은 당시 경영진에 단단히 미운털이 박힌 터였다. 쫓겨난 비율이 다른 부서에 비해 압도적이었다. 아나운서국 전체 인원의 38%인 11명이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자의로든, 타의로든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회사는 2016년은 물론 정권이 바뀔 것이 확실시됐던 2017년에도 그 빈자리를 계약직 아나운서로 차곡차곡 채워나갔다. ‘바늘구멍’을 뚫어야 하는 절박한 취업준비생 신분을 볼모 삼았다. 노조는 물론 아나운서협회에도 가입할 수 없고, 출연 거부를 할 수 없으며,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불안정한 지위의 16· 17 사번 아나운서들이 탄생한 배경이다.

특별채용 때 11명 중 1명만 정규직 선발


계약서상 16사번 아나운서들은 1년 계약 연장을 마친 2018년 4월3일, 17사번 아나운서들은 5월22일로 계약이 만료될 예정이었다. 계약 만료 직전인 3월18일 이른바 ‘특별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16·17 사번 아나운서에게는 시험 닷새 전 역량평가 실시가 고지됐다. ‘울며 겨자 먹기’였다. 고작 1~2년 전에 치렀던 전형 과정을 다시 반복했다. 약 두 달의 전형 끝에 5월11일 계약직 아나운서 11명 중 단 한 명만이 정규직으로 선발됐다. 계약 만료된 나머지 아나운서들은 그해 6월28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내고 9월10일 인용 결정을 받았다.

ⓒ시사IN 이명익MBC 12층 임시 아나운서국으로 출근하는 아나운서들. 왼쪽 앞부터 시계 방향으로 박지민, 김민호, 정다희, 안주희, 이선영, 정슬기 아나운서.

핵심은 ‘계약 갱신 기대권’이었다. 비교적 최근 판례가 나오기 시작한 계약 갱신 기대권(대법원 2014두45765 판결, 2015두44493 판결)은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 회사가 계약 갱신을 거절하면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본다. 지노위는 16·17 사번 아나운서들이 ‘신입’ 아나운서로 불리며 상시·지속적 업무를 수행했다는 점, 정규직 아나운서와 유사한 사내 교육 과정을 거친 후 실제 방송 업무에 투입되었다는 점, 급여 및 복리후생 등을 정규직 아나운서와 동일하게 적용한 점, 특별채용 기준이나 합격 예상 인원 등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이들의 계약 갱신 기대권을 인정했다.

MBC는 지노위 판정에 불복해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지만 지난 1월19일 중노위도 지노위의 판정을 그대로 인용하며 재심을 기각했다. MBC는 중노위 판정도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근로자 지위보전 가처분 신청’은 행정소송에서 최종 결론이 나올 때까지 법원이 임시로 근로자 지위를 유지하도록 결정한 것이었다.

그렇게 돌아온 곳이 12층에 임시로 마련된 아나운서국이다. 이들은 이곳을 자조적으로 골방, 격리소, 징벌방 따위로 불렀다. “부당한 일을 당했던 사람들은 그동안 다 어떻게 버텼는지 감히 헤아려볼 수 있게 됐어요. 근데 그 사람들에게는 노조가 있었더라고요. 우리는 서로밖에 없어요(이선영 아나운서).”  

‘내 힘으로 돌아왔다’는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컴퓨터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면서 보내기에 하루 8시간은 길기만 했다. 도무지 가지 않는 시간이 견디기 어려워 팔씨름 내기도 해봤다. 창문 너머 수색역 기찻길을 바라보던 동료는 때로 ‘죽음’을 이야기했고, 이어폰을 귀에서 빼지 않은 동료는 최소한의 대답 외에 입을 떼지 않고 귀가를 서둘렀다.

마지막 제작거부가 시작됐던 2017년 5월, 계약직 아나운서 중 일부는 조심스럽게 노조 가입을 문의하기도 했다. 논의해보겠다던 선배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너희는 받지 않기로 했다”였다. 제작거부로 인한 공백을 대신 메우면서도 속이 부대끼던 어느 날에는 선배에게 미안함을 담아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일단 방송은 최선을 다해서 잘해야 해”라는 선배의 다정한 말을 붙잡고 버텼다. 당시 제작거부에 나섰던 노조 소속 아나운서 27인은 기자회견을 통해 대체 투입된 계약직 아나운서에 대한 비판을 반박하며 ‘후배들’을 감쌌다. “재계약에 모든 걸 수밖에 없는 단기 계약직 아나운서 후배들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이유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방송을 잘하자니 죄책감이 들고 못하자니 실력 없다는 소리를 들을까 전전긍긍하며 보냈다. ‘해사 행위’라는 엄포를 듣고도 최승호 당시 MBC 해직 PD가 제작한 영화 <공범자들> 단체 관람에 나서기도 했다. 그해 12월 해직자 출신 최승호 ‘선배’는 대표이사가 되었다.

지난 9년간 전 경영진이 새로 뽑은 사람은 230여 명에 달한다. ‘정상화’ 과정에서 그들 모두가 쫓겨나지는 않았다. 다만 새로운 경영진도 16·17 사번 아나운서만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을 뿐이다. 파업에 참여할 수 없었지만, ‘정상화’ 이후 그런 사정은 고려되지 않았다. 한때 계약직 후배를 감싸던 선배들도 입을 닫았다. 전부는 아니었지만 일부로부터 면전에서 “16·17 없이 다시 시작하고 싶다”라는 말을 듣곤 했다. 선배들은 그들 자신이 지난 9년간 지겹게 들었던 말을 16·17 사번 아나운서에게 돌려줬다. 왜 이 회사에 목숨 거냐고, 대학 다 나왔고 똑똑한데 밖에 나가서 일자리 찾을 수 있지 않냐고. 가처분 신청을 준비하며 법원에 제출할 탄원서를 받기 위해 사내를 종횡무진했지만 작성해준 사람은 5명에 불과했다.

9년 동안의 언론 장악이 남긴 상처


한 MBC 노조 조합원은 이처럼 깊은 갈등의 골을 ‘공포’로 정의했다. 정권이 바뀌고 경영진이 바뀌면 회사가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9년간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구체제’는 회사를 망가뜨리고, 노조를 유지할 수 없게 할 방법으로 계약직을 뽑았다. 사람 뽑는 걸로 장난 친 거다. 당사자들은 안타깝지만, 이들을 받아들이면 경영권을 쥔 사람이 또다시 회사를 흔들겠다고 마음먹으면 어떻게 될까. 앞으로 모든 직종을 이런 식으로 뽑을 거다.”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MBC본부 오동운 위원장도 조심스러워했다. “계약 만료 아나운서들에게 별도 사무실을 준 건 조합에서도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조합이 개입할 수는 없다고 봤다. 법적 판단을 통해 다툴 여지가 있는 만큼 1심 판결이 날 때까지 지켜본 후 입장을 정하려 한다.” MBC 사측 관계자 역시 “1심 판결 결과를 따를 거고, 그때 가서 봐야지 회사가 먼저 나서기 어렵다”라며 사법부에 결정을 미뤘다.

ⓒ시사IN 신선영MBC에서 해직되었던 최승호 PD가 2017년 12월8일 MBC 사장으로 취임했다.

MBC 노사 모두 언제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1심 판결’에 주목하는 건 나름 근거가 있다. MBC 노사는 2019년 2월, 7년 만에 단체협약(단협)을 맺으면서 제40조를 수정했다. 기존 단협 제40조는 노동위원회 또는 법원 판단이 있는 경우 확정판결이 나지 않았더라도 우선적으로 해고와 징계를 무효화할 수 있었지만, 새 단협에서는 ‘노동위원회’가 삭제됐다. 이에 대해 오 위원장은 “시간적 측면에서 노동자에게 불리할 수 있지만, 후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러 실익이나 구속력 측면에서 1심을 기준으로 둬도 조합원을 충분히 지킬 수 있다”라고 말했다.

MBC본부의 상급단체인 언론노조도 MBC 아나운서 해고 소송과 관련해 말을 아꼈다.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은 “MBC본부 입장을 따르는 게 중앙의 입장이고, 현재로서는 어떤 말씀을 드리기 곤란하다”라고 말했다.

아나운서 소송을 대리하는 류하경 변호사는 기존 소송과 별개로 7월16일 시행되는 일명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따라 16·17 사번 아나운서 사례를 노동부에 진정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서도 MBC 노사는 “현재로서는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선영 아나운서는 한 선배가 들려줬던 이야기를 꺼냈다. “옛날 MBC가 빳빳한 A4 용지였다가 지난 9년간 구겨졌다면, 지금은 아무리 펴려고 애써도 구겨진 흔적이 남은 거라고 하더라고요. 저희가 그 주름의 일부예요.” 그 주름은 MBC가 지나온 9년이 남긴 상처다. ‘주범’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가장 약한 고리인 계약직만 언론 장악이 남긴 후폭풍을 감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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