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57분 버스에 시동이 걸렸다. 전광판에 ‘146 상계 7단지-강남역’ 글자가 선명해졌다. 이 시간 146번 버스 종점인 서울 노원구 상계동 7단지 영업소에는 매일 같은 사람들이 모인다. “저 밑에서 타면 벌써 사람들이 꽉 차. 앉아서 가려고 여기까지 20분을 걸어온다고.” 박영숙씨(63)는 첫차를 타기 위해 새벽 2시30분에 일어난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 공기가 박씨에게는 익숙했다. 146번 첫차를 타고 다닌 지도 벌써 7년째다. 반대편 종점인 신논현 구교보타워사거리가 그의 행선지다. “매일 끝에서 끝까지 다녀요. 가도 가도 끝이 없다니까.” 행선지가 선릉, 종합운동장, 역삼인 이들이 박씨와 함께 차에 올랐다. 모두 청소·경비직 노동자들이다. 새벽 4시5분, 교통카드를 대자 ‘삑’ 하는 소리와 함께 조조할인 요금인 960원이 빠져나갔다.

ⓒ시사IN 이명익지난 6월26일 서울 상계동에서 강남역까지 운행하는 146번 버스. 첫차부터 만석으로 운행되고 있다.

가방을 앞좌석에 걸어두고 맨 먼저 기사 얼굴을 살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잖아. 기사님들마다 도착 시간이 10분 정도씩 차이가 나요. 오늘은 젊은 기사님이라 좀 빨리 달릴 것 같네.” 박씨는 강남에 위치한 한국자산관리공사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다. 월요일은 다른 날보다 마음이 조급하다. 주말 동안 쌓인 쓰레기로 해야 할 일이 두 배는 많기 때문이다. 반찬거리와 세탁한 유니폼을 챙겨 가느라 가방도 평소보다 무거웠다. “새벽에는 1분1초가 급한 거야. 빨리 가서 직원들 나오기 전에 일을 끝내야 하는데. 일이 많은 날에는 정신없이 방방 뛰어요, 정말.”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새벽에 강남 쪽으로 출근하는 이들에게 146번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지만, 새벽 4시5분도 이들에겐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146, 160, 240, 504번 버스 증차

정류장을 지나자 익숙한 얼굴들이 금세 버스를 채웠다. “언니 어서 와” “감기는 좀 나았어?” 안부 인사가 오갔다.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 넘게 출근길을 함께해온 이들이다. 이름은 몰라도 어디서 타고 내리는지 안다. 버스가 묵동사거리 먹골역을 지나자 동이 텄다. 앞문과 뒷문으로 승객들이 마구 밀려 들어왔다. “아이고” 하는 곡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이리 짐 줘요.” 박영숙씨는 이들이 건네는 가방을 받아 품에 안았다. 앉아 가는 사람들 발목마다 가방이 쌓였다. 뒷좌석으로 밀려간 승객들은 가방에서 깔판을 꺼내 깔고 앉았다. “늦게 타는 사람들 보면 앉아 있는 게 미안하지. 다들 개미 같은 아줌마들이야. 이런 아주머니들 없으면 건물이 금방 쓰레기장이 되거든.” 승객들은 좌석과 좌석 사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거나 출입문 앞까지 발을 간신히 디디고 있었다. 또 다른 승객인 제도순씨가 붙잡은 손잡이 하나는 세 명이 맞잡고 있었다. 제씨는 선릉역 인근 빌딩에서 20년째 일하고 있다. “서서 가도 편하게만 갈 수 있으면 좋겠어. 매일 아침이 전쟁이야.”

ⓒ시사IN 이명익146번 버스에서 내린 박영숙씨가 근무지 정문이 아닌 주차장 문을 통해 출근하고 있다.

강남의 빌딩가에서 일하는 청소·경비직 노동자를 실어 나르는 146번 버스는 또 다른 ‘노회찬의 6411번 버스’다. 고 노회찬 의원은 2012년 진보정의당 출범 당시 당 대표 수락 연설을 하며 6411번 버스를 언급했다.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연설은 지난해 7월23일 노 의원 사망 직후 다시 주목받았다. “그 누구도 새벽 4시와 새벽 4시5분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가 출발점부터 거의 만석이 되어 강남의 여러 정류장에 50~60대 아주머니들을 다 내려준 후 종점으로 향하는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분들이 아침에 출근하는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딸과 같은 수많은 직장인들이 그 빌딩을 드나들지만, 그 빌딩이 새벽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에 의해 청소되고 정비되고 있는 줄 의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노 의원의 말마따나 ‘투명인간’을 태운 6411번 버스와 같은 노선이 서울 지역에만 모두 179개가 있다. 새벽 4시30분 이전에 입석 승객이 발생하는 버스다. 최근 서울시가 혼잡 노선 빅데이터를 분석해 추려낸 결과다. 이 중 10군데 이상의 정류소를 지나는 동안 승객이 40명 이상인 노선은 28개였다. 서울시는 청소·경비직 채용정보, 새벽 일자리 쉼터 경유 여부, 새벽 시간대 50·60대 이상의 유동인구 증감 통계를 추가로 고려해 지난 6월10일부터 4개 노선(146번:상계~강남, 240번:중랑~신사, 504번:광명~남대문, 160번:도봉~온수)을 우선 증차했다. 서울시의 이번 정책은 노회찬 의원이 남긴 ‘유산’이나 마찬가지다. 증차가 이뤄졌지만 버스 혼잡도는 여전했다.

ⓒ시사IN 신선영160번 버스

영동대교 북단을 지나면서 승객들이 하차하기 시작했다. 우리은행 청담지점, 한국무역센터, 포스코 빌딩 등 고층 빌딩 밀집 지역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다녀와요.” 제도순씨를 향해 박씨가 인사했다. 새벽 5시10분, 146번 버스 문이 열리자마자 빠른 걸음을 재촉하던 이들은 인근 빌딩으로 이내 흩어졌다. 일터는 다르지만 직원들이 출근하는 아침 8시~8시30분 전까지 사무실을 청소하려면 빠듯한 시간이다. 버스는 다시 한산해졌다. 박영숙씨는 앞으로도 30분을 더 가야 한다. 신논현 구교보타워사거리에 다다르자 시계는 새벽 5시40분을 가리켰다. 출근하는 데만 3시간이 걸린 셈이다.

박씨가 새벽 첫차를 탄 지는 20년이 넘었다. 그간 을지로입구의 삼성빌딩, 시청 근처의 JP모건 은행에서 청소 일을 했다. 외환위기 때 운영하던 제분소가 문을 닫고 생계를 위해 뛰어든 일자리였는데 이렇게 오래 할 줄은 몰랐다. “가까운 데서 일하면 아는 사람 만날까 봐서. 창피하잖아요. 20년을 일해도 집안사람들은 이런 일 하는 거 몰라.” 급여를 좀 더 많이 준다는 얘기를 듣고 7년 전 강남으로 일터를 옮겼다. ‘공기업이니까 낫지 않겠나’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청소 노동은 어디서든 고되었다. 청소를 마친 오전 8시30분, 그제야 동료 9명과 집에서 가져온 반찬을 펴놓고 아침 식사를 했다. “땀에 절어서 사람이 녹초가 돼요. 한 30분 누워 자다가 다시 일하러 올라가지. 안 그럼 못 버텨.”

12년 일했지만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

전쟁 같은 출근길이 조금 정리된 새벽 4시50분, 또 다른 새벽 노동자가 열두 번째 배차된 160번 버스에 올랐다. 서울 도봉구에서 출발하는 160번 버스는 청소·경비직 노동자들을 종로와 광화문으로 실어 나르는 버스다. 첫 넉 대까지는 146번 버스처럼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하지만 이후로는 ‘여유’ 혹은 ‘보통’ 수준을 유지한다. 서서 가는 이들은 손잡이를 잡은 팔에 머리를 기대고 꾸벅꾸벅 졸았다. 아직 새벽 어스름이 가시지 않은 시각이었다. 최정자씨(60)는 맨 뒷좌석에서 가방을 끌어안고 조용히 눈을 붙였다. 가족들이 먹고 나갈 아침밥을 미리 준비하느라 전날 자정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하루에 4시간 정도 자는 것 같아요. 매일 잠이 부족해요.”

ⓒ시사IN 신선영서울 도봉역에서 160번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최정자씨는 성북구에 있는 한 대학에서 청소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최정자씨는 성북구에 있는 한 대학의 청소 노동자다. 벌써 12년째 출근길이다. 얼마 전 종강해서 출근 시간에 여유가 조금 생겼다. “어, 언니 이제 오나 봐요. 오늘 멋쟁이네.” 새벽 5시30분, 최정자씨 동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계약서에 쓰인 근무시간은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였지만 대부분 1시간 전부터 출근한다. 문 닫은 상가를 지나는 사람은 이들뿐이었다. “언니, 나 갈게요. 수고해요.” 담소를 나누던 이들은 캠퍼스에 들어오자 각 건물로 뿔뿔이 흩어졌다.

최정자씨는 본관 건물 3층을 혼자 담당한다. 강의실 10개를 학생들이 오기 전인 오전 8시10분까지 청소한다. 출근하자마자 화장실 옆에 있는 배전실 문을 열었다. 그의 회색 유니폼과 신발이 파이프에 걸려 있었다. “옆 건물에 대기실이 있는데 평소에는 너무 바빠서 갈 시간이 없거든요. 여기서 대충 갈아입어요.” 학기 중에는 학생들이 오기 전에 청소를 마쳐야 한다는 압박감이 크다. 최정자씨는 세정제, 걸레, 수세미 등이 달린 쓰레기통을 끌고 나왔다. 301호 강의실 바닥을 닦고 나자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나이 쉰이 다 되어 이곳에서 청소 일을 시작했다. “그 나이대에 할 수 있는 게 식당 아니면 청소밖에 없더라고요. 식당 일을 한번 해보자고 해서 갔는데 2시간만 하고 그만뒀어요. 사람들 대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최정자씨가 쑥스럽다는 듯 웃어 보였다. 이 학교에서 일을 하는 청소 노동자는 50명, 모두 용역업체 소속이다. 2년마다 용역업체가 바뀌는 탓에 12년을 일하고도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10년 전에 비하면 올랐죠. 그렇지만 물가도 같이 상승하니까요. 일하는 거에 비해서 돈을 조금 준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오전 10시30분이 되어서야 싸가지고 온 달걀과 과일을 가방에서 꺼냈다. 6시간 만에 먹는 첫 끼니였다. 휴게실에 모인 동료들과 가져온 반찬을 나눠먹고 잠시 눈을 붙였다. 오후 수업이 시작되기 전 다시 빈 강의실을 돌아다니며 지우개 가루를 쓸어 담았다. “그래도 학생들이 다 자식 같아요. 따뜻한 음료 주면서 고생한다고 할 때 그렇게 고맙더라고요.” 오후 4시 최정자씨는 다시 160번 버스에 올랐다. “가족들 돌아오기 전에 또 저녁 준비해야죠. 우리는 다 주부들이니까.” 집은 제2의 일터였다.

최씨도 노회찬 의원이 말한 6411번 버스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6411번 버스나 내가 타고 다니는 160번 버스나 마찬가지죠. 우리 같은 사람들 편하게 살 수 있게 좀 더 살아 계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까워요.” 곧 노회찬 의원 1주기가 돌아온다. 노 의원은 “정치가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여온 수많은 투명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믿었다(2012년 당 대표 수락 연설 중). 하지만 ‘노회찬의 6411번 버스’에 삶을 싣고 달리는 이들에게 아직 정치는 멀기만 했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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