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한 진실 알려주는 세련된 거짓말
  •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 호수 615
  • 승인 2019.07.04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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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시골 마을 인비올라타에서 가장 많이 들려오는 소리. “라짜로!”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2층에 옮겨놓을 사람이 필요하면, 라짜로! 돌아다니는 닭을 잡아 닭장에 넣을 사람이 필요해도, 라짜로!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궂은일이 아닌 일 역시 도맡는다. 그래도 늘 웃음을 잃지 않는 걸 보면, 제목처럼 정말 행복한 라짜로(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가 맞지 싶다.

이 마을 주민 전부를 소작농으로 부리는 후작 부인 알폰시나(니콜레타 브라스키)가 아들 탄크레디(루카 키코바니)와 함께 인비올라타에 온다. 폐병으로 짐작되는 아들의 요양을 위해서란다. 하지만 지루한 시골 생활에 적응할 생각이 그에겐 없다. 잔꾀를 낸다. 납치된 척 산속에 숨어 엄마의 돈을 받아낸 뒤 도시로 뜨겠다는 계획. 혼자서는 안 된다. 이럴 땐 누굴 부른다고? “라짜로!”

어쩌다 보니 납치 자작극의 공범이 되어버린 우리의 라짜로. 실종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하던 날, 급히 산에 오른다. 탄크레디에게 가는 길이다. 그런데… 그 길의 끝에서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난다. 라짜로가 미스터리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사이, 마을에서는 주민 모두의 운명을 뒤바꿀 비밀이 폭로되고, 이때부터 영화는 관객이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내달린다.

이탈리아 영화 <행복한 라짜로>를 보고 제일 먼저 떠올린 건 영화 <기생충>이었다. 장르도, 이야기도, 표현 방식도 전혀 다른 두 편을 이어붙인 고리는 제72회 칸 영화제. 봉준호 감독에게 황금종려상을 안긴 시상식. 심사위원장이 수상자를 발표하는 순간, 무대 한쪽에서 얼른 눈물을 훔쳐내던 심사위원이 잠시 화제가 된 적 있다. 그가 바로 이 영화의 감독 알리체 로르바케르이다. <행복한 라짜로>로 지난해 칸 영화제 각본상을 받고 올해 심사위원으로 불려온 서른아홉 살 젊은 감독. 그는 왜 눈물까지 훔쳤을까?

<기생충>의 공간과 <행복한 라짜로>의 시간

아직 말하지 않은 영화의 나머지 절반에 답이 있다. <기생충>과 전혀 다른 영화이지만, 결국엔 <기생충>과 전혀 다르지 않은 영화로 기억하게 만드는 후반전. <기생충>이 ‘공간’을 활용해 우리 시대의 본질을 꿰뚫는다면, <행복한 라짜로>가 움켜쥔 무기는 ‘시간’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누구에게도 공평한 삶의 결과를 만들어주는 법이 없는 그것, 시간. 그것으로 이야기를 비트는 감독의 솜씨가 매우 비범하다. 슬프고 서글프며 또한 성스러운 이 영화에 나는 완전히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피카소가 그랬다. “예술은 우리가 진실을 깨닫게 하는 거짓말”이라고. <행복한 라짜로>는 ‘우리의 황폐한 진실을 깨닫게 하는 아주 세련된 거짓말’이다. <기생충>이 수상자로 불릴 때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이 남몰래 훔쳐낸 눈물. 그건 어쩌면, ‘진실을 발설하는 거짓말쟁이’끼리의 연대감 같은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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