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동영상이 있었다. 어느 기독교 찬양 팀의 공연 중, 댄서가 상체를 깊이 숙인 채 어깻죽지부터 손끝까지 격렬하게 흔들면서 독수리가 날아오르는 듯한 동작을 구사하는 모습이었다. 그것이 다현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트와이스로 데뷔한 것에 놀라워하고 반가워했다. 그에게는 그런 흥 많고 엉뚱한 모습이 기대됐다. 실망은 없었다. ‘치어 업(Cheer Up)’에서 한복을 입고 강렬한 억양으로 “빠질 것만 같어”를 반복하고는 부채를 펼쳐 들거나, ‘왓 이즈 러브(What Is Love)’에서 거뭇한 수염을 그려넣고 레옹을 연기하는 모습 같은 것이었다. 정작 목소리는 사뭇 그윽하다는 점도 유쾌한 대조를 이뤘다. 그는 이 ‘출구 없는’ 미녀 그룹에서 공식적으로 망가질 수 있고 또한 그런 점이 귀여운 멤버로 자리 잡았다.
그런 그가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은 2017년 ‘라이키(Likey)’의 뮤직비디오였다. 다현은 “오늘따라 기분이 꿀꿀해”라며 인상을 찌푸리고 익살스럽게 콧등을 손으로 쥔다. 채영의 랩이 교차한다. 그러곤 열차를 탄 듯 속도감 있던 노래를 거의 멈춰 세우다시피 하는 건 다현의 “우, 잠깐만 잠깐만”이라고 속삭이는 목소리다. 급작스레 변했던 비트는 (가사 속에서) 기다리던 연락을 받은 반가움에 환호하며 한 팔을 치켜드는 다현과 함께 다시 속도를 낸다. 다현이 노래 전체의 호흡을 뒤집어놓는 순간이자, 트와이스의 세계 자체가 바뀌기 시작한 한 장면이었다.
트와이스의 음악은 언젠가부터 변했다. 기세 좋고 화려하며 촘촘한 점은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그중 한 가지는, 노래 속에 녹아들어 있던 래핑이 마치 생경한 구절로 동떨어져 기능하는 곡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종종 채영과 짝을 이뤄 다현이 활약하는 이런 대목들은 흥겹게 흐르던 노래에 액자를 씌우며 바깥으로 빠져나온다. 노래를 듣는 이들과 대화를 나누듯이 랩을 하고는 다시 노래 속으로 되돌아간다. 어찌 보면 몰입을 방해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노래의 흐름과 내용에 빠져 있던 이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순간이기도 하다. 거기서 다현은 특유의 익살스러운 캐릭터를 활용해 노래와 그 노래를 듣는 이들 사이의 연결점으로 기능한다.
트와이스에게 ‘예쁨’은 가공할 강점이지만 그에 가려 인물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는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다현의 독특함은 팀에 활기와 생동감을 부여해왔다. 다현과 채영이 2절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최근 곡 ‘팬시(Fancy)’와 ‘브레이크스루(Breakthrough)’ 등은 새로운 관측을 제공한다. 마침 이 곡들을 통해 트와이스는 어느 때보다도 자신감 있게 앞을 향해 치고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작부터 전성기였던 이 걸그룹의 ‘제2막’을 여는 키 플레이어는 다현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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