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민 뇌리에 박힌 ‘반체제 서점’ 사건
  • 홍콩·리즈더 (<단전매> 편집장)
  • 호수 615
  • 승인 2019.07.0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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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홍콩 온라인 매체 <단전매> 편집장의 글을 싣는다. 개정될 법률은 홍콩 내 반체제 인사들에게 국가 전복 선동죄 등을 적용할 공산이 크다.
2015년 8월 창간된 홍콩 온라인 매체 <단전매(Initium Media)>는 빠르고, 짧고, 얕은 온라인 뉴스 시장을 역행하는 전략으로 눈길을 끄는 매체다. 깊이 있는 기사를 다양한 방식으로 선보이고 있다. 중국 언론에서는 볼 수 없는 뉴스를 ‘전 세계 중국인’에게 제공한다. ‘송환법’이 어떤 내용이기에 홍콩 시민 200만명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연일 반대 시위를 한 걸까. 리즈더 <단전매> 편집장이 한국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보내온 글을 번역해 싣는다. 법안 명칭 등 현지 용어를 가급적 그대로 살렸다.
ⓒ연합뉴스2014년 9월28일 행정장관 선거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는 홍콩 시민들이 시위를 벌였다.


6월12일 홍콩 입법회는 종일 시위대와 경찰에 겹겹이 포위된 상태였다. 사실상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마스크와 보안경을 쓴 시위대에 맞서 일반 경찰뿐 아니라 사복 경찰에게도 총이 지급됐다. 시위대는 바리케이드를 몇 번이나 무너뜨렸다. 경찰들은 물대포를 쏘았다. 물에는 최루액이 섞여 있었다. 버짐 피듯 아스팔트 위가 허옇게 변했다. 무기라곤 하나도 갖지 않은 중년 여성이 경찰 앞으로 다가와 “무력 사용을 자제하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경찰의 답은 간단했다. 몇 초간 경찰이 그의 얼굴에 후추 스프레이를 뿌려댔다. 곧이어 최루탄 발사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하키볼 크기의 최루탄이 군중 속에 떨어지며 도로에서 불길이 일었다. 경찰들은 때로 직접 시위대를 겨냥해 최루탄을 발사하기도 했다.

거리는 온통 우산, 우산들이었다. 경찰에 맞선 시위대의 바리케이드는 수많은 우산이었다. 멀쩡한 우산이 드물었다. 망가지고 부러진 우산이 어수선하게 널려 있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2014년 ‘우산혁명’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2014년 9월28일 홍콩 경찰은 시위 진압 명목으로 단시간에 최루탄 82발을 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더 많은 군중을 시위 대열에 합류시켰음은 물론이다. 2019년 6월12일, 아직은 이름이 없지만 역사에 꼭 기록될 이번 시위에 경찰이 보인 폭력성은 2014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날 하루 사이에 사용한 최루탄은 150발이 넘었다. 산탄총의 일종인 빈백건(bean bag gun·콩주머니 총) 스무 발과, 고무 총탄도 포함되었다. 공식 집계된 부상자만 70여 명이고 그중 두 명은 중상을 입었다. 두 명 중 한 명은 공영 언론사 홍콩방송(RTHK)의 운전기사로 응급 치료 과정에서 심정지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번에 홍콩 경찰이 사용한 무력의 강도는 1967년 홍콩 좌파 무장조직의 ‘67폭동’ 진압 이래 가장 셌다.

홍콩은 세계적인 금융 중심 도시이며 홍콩 정부는 현대적이고 효율적으로 도시를 관리해왔다. 그 역사에 비춰봤을 때 이번처럼 비무장 시민에 대한 고강도 폭력 진압은 전례 없는 일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지난해 2월18일 타이완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송환법 명분이 된 ‘타이완 살인사건’

당시 20대 홍콩인 커플은 대학을 자퇴하고 2월8일부터 타이완을 여행 중이었다. 남성은 임신 중인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캐리어에 넣어 유기한 후 도주했다. 도주 과정에서 숨진 여자친구의 예금을 훔치기도 했다.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남성은 홍콩에서 체포되었고 자백도 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홍콩에서 그를 살인죄로 처벌할 방법이 없었다. 홍콩은 홍콩 내에서 죄를 저지른 내·외국인에게만 형법이 적용되는 속지주의를 택하고 있어 예금 횡령 혐의만 적용할 수 있었다. 타이완과 홍콩 사이 ‘범죄인 인도 조약’이 없는 것도 문제였다. 결국 남성은 살인을 저지르고도 징역 29개월에 그쳐, 사실상 무죄판결을 받았다.
ⓒ시사IN 이명익코즈웨이베이의 ‘퉁러완 서점’ 입구. 6월19일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현재 홍콩 정부는 미국·캐나다·영국·프랑스 등 20개 국가와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고 있다. 이 조약은 1997년 4월 제정된 ‘도주범 조례(逃犯條例·범죄인 인도 법안)’에 따라 체결되었다. 영국 식민지 시절 만들어진 이 법은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나 ‘중화인민공화국 영토 내의 기타 정부’에 속한 사법 관할 구역을 일부러 배제했다. 공공연하게 알려진 중국의 열악한 사법체계와 인권 실태를 감안해, 홍콩 정부가 중국을 범죄자 인도 범위에서 제외한 셈이다. 타이완도 ‘정치적으로’ 중국의 일부로 규정돼 있어 홍콩이 타이완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지 않았고, 그 결과 이번 살인사건 같은 난제를 마주하게 됐다.

홍콩 정부는 ‘타이완 살인사건 피해자를 위해 정의를 쟁취하자’는 명목으로 지난 3월29일 도주범 조례 수정안을 제출했고, 4월3일 입법회에서 1차 심사가 통과됐다. 6월12~13일 2차 심사를 마무리하고 6월 말 수정입법이 완성될 예정이었다. 3월 말, 수정안 내용이 발표된 직후부터 큰 논란이 일었다. 정부는 법 개정 과정에서 홍콩 시민을 대상으로 별다른 동의 과정이나 의견 수렴 절차를 마련하지 않았다. 만약 수정안이 통과될 경우, 홍콩 시민이 중국 내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중국으로 이송돼 재판을 받게 될 터였다(‘재판’이라는 게 있다면 말이다).

도주범 조례 수정안을 분석해보면 법이 통과될 경우 네 가지 유형의 사람들에게 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중국 대륙 내에서 범죄를 저지른 홍콩인, 둘째, 중국 대륙 내에서 범죄를 저지른 후 홍콩으로 도망간 중국인, 셋째, 홍콩 내에서 중국의 국가 안전에 관한 범죄행위를 저지른 홍콩인, 넷째, 해외에서 중국 법률을 위반하며 지금 홍콩에 체류 중인 중국인이나 외국인이다.

첫 번째 경우를 보자. 홍콩과 중국은 맞붙어 있고, 이미 수많은 홍콩 시민이 중국 내에서 사업이나 근무를 한다. 문제는 자본주의에 대한 중국의 모호하고 이중적인 관료 체계다. 대륙에서 일하는 많은 홍콩인들이 ‘중국의 풍속’에 따라 합법과 불법 사이 애매한 지대에 들어가 있다. 죄를 뒤집어쓰기 쉬운 구조다. 개정 도주범 조례를 가장 두려워하는 이들이 바로 중국 내 홍콩 사업자와 화이트칼라 계층이다.

두 번째는 중국에서 홍콩으로 도망 온 중국의 부패 관료나 상인이다. 중국 공안부 차관을 거쳐 현재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을 지내고 있는 천즈민(陳智敏)은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대륙에서 홍콩으로 도망간 중범죄자가 300여 명에 달한다. 우리가 날조하는 게 아니라 다 이름 있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베이징 당국은 도주범 조례 수정안이 통과되면 이들을 잡아들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홍콩 정부 역시 수정안은 ‘사법 빈틈(약점)’을 보완하는 것이며, “홍콩이 도주범의 천국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취지라고 강조하곤 했다.

홍콩 시민들이 정부 말을 믿지 않는 이유

홍콩 시민을 비롯해 개정안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개정안이 사실상 세 번째와 네 번째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어떤 홍콩 시민이 ‘중국 일당독재 반대’를 공개적으로 언급했다고 해보자. 개정안에 따르면 그는 중국으로 이송돼 심판받을 가능성이 높다. 또 인터넷을 통해 중국과 연관된 이슈를 다루던 타이완이나 외국 NGO 활동가나 기자가 홍콩을 거치는 도중 체포될 가능성도 있다. 중국 정부가 이들의 대화 내용을 “국가 안전에 위해성을 초래한다”라고 주장하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시사IN 이명익6월18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홍콩 시민들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다.

홍콩 정부는 “7년 이상 중범죄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만 이송된다” “출판과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한 범죄자 이송은 불가능하다”라고 해명했지만 이 말을 믿는 홍콩 시민은 거의 없다. 홍콩 시민들은 2015년 10월 코즈웨이베이의 ‘퉁러완(銅鑼灣) 서점 사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개인사 관련 출판을 계획했던 이 서점 직원들이 하나둘 실종됐다. 중국은 본토만이 아니라 홍콩에서도 납치를 강행하는 ‘무법’을 저질렀다. 당시 중국이 이들을 얽어낸 죄명은 출판과 표현의 자유와 무관한 ‘불법경영죄’였다. 중국은 본토 내에서 반체제 인사들에게 ‘국가정권 전복 선동죄’나 ‘탈세’ 등의 죄명을 일상적으로 씌웠다. 개정 도주범 조례는 이 영역을 홍콩으로까지 확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게 200만명 가까운 홍콩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이유다. 퉁러완 서점 점장이었던 람윙키(林榮基)는 개정안이 논란이 되던 지난 4월 말 타이완으로 이주했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중국으로 잡혀갈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이 같은 우려는 홍콩 안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해외 국가들 역시 도주범 조례 수정안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은 6월11일 성명을 통해 “도주범 조례 수정안이 통과되면 미국 국회는 홍콩이 ‘일국양제’에 따라 고도의 자치권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재평가할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미국은 1992년 체결된 ‘홍콩정책법’(혹은 ‘홍콩관계법’)에 따라 무역, 사업, 여행과 기술이전 등 중국보다 홍콩에 더 많은 완화 및 특혜 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은 도주범 조례 수정안이 통과될 경우 이 같은 특혜를 없애고 법률적으로 중국과 동등하게 대처할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그렇게 될 경우, 홍콩은 지난 100년간의 경제무역 중심 지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고, 홍콩의 최고 경쟁자인 싱가포르가 최대 수혜자가 될 수 있다.

6월12일 홍콩 시민들의 항쟁 직후 입법회는 도주범 조례 수정안 2차 심사 절차를 잠정 중단한다고 선포했다. 6월13~14일 홍콩 정치권은 개정안 심사 재개를 위한 입법회 일정을 공개하지도, 법안 철회도 선포하지 못하는 곤란한 침묵 속에 빠져 있었다. 먼저 두 손을 든 건 친중 성향인 건제파(建制派) 의원들이다. 이들은 “도주범 조례 수정안 강행 추진이 초래한 사회적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라고 베이징 당국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6월15일 친중 성향인 홍콩 <성도일보(星島日報)>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6월14일 심야 베이징 당국이 홍콩 사태 악화를 감지하고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에서 홍콩을 담당하는 한정(韓正) 상임위원을 광둥성 선전에 급파,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과 사태 수습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튿날인 6월15일 오후 3시 람 장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도주범 조례 수정안 추진을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철회’가 아닌 ‘연기’였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한정 상임위원이 왜 참견하느냐”라고 질문하자 람 장관은 “비공개 만남에 대해서는 무엇이든 노코멘트 하겠다”라고 답했다. 행정장관의 일정에 대해 언론매체에 일일이 확인해주기 어렵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이러한 람 장관의 태도에 대해 홍콩 시민은 6월16일 200만명이 시위에 참여하는 것으로 대답했다. 시위대는 ‘잠정 중단’이 아닌 ‘완전 철회’를 요구했다. 기세에 눌린 베이징 당국과 홍콩 정부는 도주범 조례 수정안을 당분간 도마 위에 올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으며 그 과정에서 벌어진 경찰의 과잉 무력 진압은 상흔으로 남았다. 특히 홍콩 내 자유민주주의에서 이미 살아가고 있는 청년 세대의 가슴속에는 ‘충돌의 씨앗’이 깊이 뿌리 내렸다. 사태는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

번역·양첸하오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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