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북알프스 지역의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 답사 제안을 받았다.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다테야마 고원지대가 개마고원과 닮았다는 얘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9월 평양 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은 “개마고원을 트레킹하고 싶다”라고 밝혔는데, 그처럼 등산을 자주 하는 사람들에게 개마고원은 로망이다. 하지만 개마고원이 아웃도어 성지가 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것이 있다. 혹독한 자연조건이다. 고원 지역은 교통망을 구축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난개발을 하면 풍광을 망친다. 개마고원과 닮은 고원지대를 일본은 어떤 식으로 개발했는지 궁금했다.

일본의 다테야마는 후지산, 하쿠산과 함께 일본의 3대 영산(靈山)으로 꼽힌다. 에도 시대부터 사람이 닿기 위한 방법이 두루 개발되어 다채로운 풍경만큼 가는 방식도 다양하다. 2400~2500m 고원지대에서 할 수 있는 활동도 많아서 등산·캠핑·산악스키 등 다양한 아웃도어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다테야마가 속한 일본 북알프스 지역은 일본에서 산세가 가장 험한 곳으로 3000m 이상의 고봉이 즐비하다. 도야마현과 나가노현의 경계에 있는 다테야마 고원을 넘어가는 다양한 코스를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이하 알펜루트)’라고 부른다. 각 구간에서 이용하는 교통수단은 이렇다. 다테야마역~비조다이라 전망대(산악 트램), 비조다이라 전망대~무로도역 (고원버스), 무로도역~다이칸보 전망대 (터널 트롤리버스), 다이칸보 전망대~ 구로베다이라(케이블카), 구로베다이라~ 구로베 댐(산악 트램), 구로베 댐~ 오기사와 전망대(터널 전기버스).

ⓒ시사IN 고재열다테야마의 주봉 오야마(3003m) 정상에서 등산객들이 일본 북알프스 전경을 즐기고 있다.

알펜루트의 교통수단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든 이유는 지형에 적합한 이동수단을 활용해 각 고도의 최고 조망 지점에 접근하게 하기 위해서다. 산은 골짜기에서, 중턱에서, 능선에서, 정상에서 보는 풍경이 다르고 고도마다 식생이 다르다. 이를 둘러볼 수 있는 시간도 다르다. 알펜루트처럼 만들어놓으면 산을 다양하게 그리고 자신의 상황에 맞게 즐길 수 있다.

히말라야·알프스에 밀리지 않는 절경

알펜루트는 해발 475m 다테야마역에서 시작한다. 다테야마역은 웅장한 일본 북알프스의 관문이다. 알펜루트를 시작하기 전에 낙차가 350m로 일본에서 가장 긴 폭포인 쇼묘다키 폭포를 보고 올 수 있다. 폭포 인근까지 셔틀버스를 타고 가서 다키미다이 전망대에 걸어 올라가 폭포를 조망하면 된다. 본격적인 알펜루트 종주는 다테야마역에서 산악 트램(일본에서는 케이블카라고 부른다)을 타고 비조다이라 전망대로 향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해발 977m 비조다이라 전망대는 삼나무 원시림이 있는 곳이다. 이 원시림은 일본의 100대 숲에도 속하는 곳으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수령 1000년이 넘는 삼나무와 너도밤나무를 두루 만날 수 있다. 일본은 큰 삼나무에 예명을 지어주곤 하는데 ‘육아 삼나무’ ‘미녀 삼나무’ 등이 이곳에 있다.

비조다이라 전망대에서 세 번째 포인트인 무로도역까지는 고원버스를 타고 50분 동안 이동한다. 해발 1800m 정도까지는 언덕 같은 경사로를 오르고 그 이후는 완만한 고원지대를 가로지른다. 개마고원도 이곳과 비슷하리라 보인다. 평균 고도가 1200m인 개마고원은 평탄한 구릉이 융기한 준평원이어서 고도는 높은 편이지만 산세가 상대적으로 험하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5월 말인데도 고도 1800m 정도부터 잔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날씨는 반소매 셔츠를 입고 다녀도 될 만큼 쨍한데 눈이 쌓여 있었다. 고원이라 시야가 좋았다. 버스 안에서 360° 전 방향으로 북알프스의 설산들을 조망할 수 있었다. 풍광이 히말라야나 코카서스(캅카스) 혹은 알프스에 밀리지 않았다.

무로도역으로 가는 길의 3분의 2쯤 되는, 해발 1930m 지점에 미다가하라 습지가 있다. 2012년에 람사르 협약에 등록된 습지로 이곳을 중심으로 들꽃이 아름답게 피는 산책로가 있다. 미다가하라에는 호텔도 있어서 숙박이 가능하다. 서쪽 방향으로 고원이 넓게 펼쳐 있어 석양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비조다이라 전망대나 미다가하라 습지에서 아쉬운 것은 1~2시간의 산책로가 전부라는 점이다. 제주올레와 같은 긴 트레킹 코스를 만들려면 체계적인 표지 체계가 필요하다. 총 트레일 코스가 6만5000㎞에 이르고 단위면적당 트레일 코스 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스위스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비아 알피나’ ‘유라 크레스트 트레일’ ‘알파인 패스 트레일’ 등 스위스 3대 트레일은 보통 종주하는 데 보름에서 한 달 정도 걸린다. 이곳은 표지판이 잘 되어 있어 가이드 없이도 걸을 수 있다. 스위스 트레일 표지판에는 위치 및 고도, 목적지, 소요 시간, 난이도, 갈림길과 방향 등 트레킹하는 동안 필요한 정보들이 표시되어 있다.

ⓒRoger Shepherd한반도에서 네 번째로 높은 차일봉(2506m)에서 내려다본 개마고원의 여름 풍경.

김지인 스위스관광청 한국지사장은 “스위스는 트레킹 표지판에 대한 설명만으로 책 한 권이 나올 정도로 표지판 체계를 과학적으로 구성했다. 트레커가 자신의 위치와 남은 거리와 시간 그리고 길의 난이도를 알 수 있게 해두었다”라고 말했다.

5월에 즐기는 ‘눈의 대계곡’ 장관

북한 백두산과 개마고원 일대에서 이런 트레킹 코스를 개발하는 사람이 있다. 뉴질랜드 출신의 로저 셰퍼드 씨(54)다. 그는 백두대간의 북측 코스를 걸은 사람으로도 유명한데, 북한 당국의 협조를 받아 백두산에서 압록폭포 코스로 내려오는 백두고원(동쪽의 무산고원과 묶어서 백무고원으로 부르기도 한다) 트레킹 여행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그는 “백두산에서 개마고원을 지나 태백산맥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트레킹 코스를 만들면 세계적인 트레킹 코스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무로도역에 거의 도착할 무렵 알펜루트의 상징인 ‘눈의 대계곡’을 만나게 된다. 버스 높이를 훨씬 뛰어넘는 거대한 눈 벽이다. 알펜루트는 매년 4월15일 개장하는데 개장할 때 이곳의 눈높이는 15m 안팎에 달한다. 우리 일행이 무로도역을 방문한 5월 말에도 눈 벽이 10m 이상이었다.

눈 벽을 지나면 일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역인 무로도역이 나온다. 무로도역에는 호텔다테야마를 비롯해 고원 산장 5개가 있다. 이 중 다테야마무로도 산장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산장으로 에도 시대에 만들어진 시설이다. 미쿠리가이케, 라이초소는 각각 일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온천과 두 번째로 높은 온천을 보유한 산장으로 유명하다. 두 온천 옆의 계곡에서는 유황 연기가 계속 솟아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일반인의 출입을 허락했지만 지금은 유황 농도가 강해져서 독성 때문에 일반인의 접근을 차단한다. 고대 일본인들은 이 유황 계곡을 보면서 지옥을 상상했다. 그래서 이 지옥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다테야마는 극락정토를 상징하게 되었다.

다테야마 고원과 마찬가지로 화산지대인 백두고원에도 온천지대가 있다. 이미 백두산의 중국 쪽에는 100곳 이상의 수원지에서 수온이 일정한 온천수가 매일 6000t씩 나온다. 칼슘, 나트륨 등 광물질을 두루 포함한 온천수라 중국인들은 이를 적극 개발해 온천관광을 유도하고 있다. 북한 백두고원에도 온천을 중심으로 고원에 숙박 시설을 지으면 다테야마 고원의 숙소처럼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테야마 산행은 미쿠리가이케 산장 밑의 미쿠리가이케 화구호에서 시작한다. 한라산 백록담처럼 화구호인 미쿠리가이케에 비친 다테야마를 보는 것이 산행의 시작이다. 하지만 5월 말인데도 화구호가 얼어 있어 수면에 비친 다테야마는 볼 수 없었다. 다테야마 산행은 어렵지 않다. 정상과의 고도 차이는 채 600m가 되지 않아 일반인도 얼마든지 오를 수 있다.

ⓒ평양 사진공동취재단지난해 9월20일 문재인 대통령이 백두산 천지에서 생수병에 물을 담고 있다.

다테야마로 오르는 길에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식물은 누운잣나무와 들쭉이었다. 들쭉은 ‘백두산 들쭉술’을 만드는 바로 그 들쭉이다. 누운잣나무 숲과 들쭉 열매는 일본인들이 신성시하는 새, 뇌조의 둥지와 먹이다. ‘산의 심부름꾼’으로 불리는 뇌조는 설산을 닮았다. 흰색과 검은색 깃털 부위가 섞여 얼룩무늬처럼 보이는데, 만년설 사이로 솟은 바위가 드문드문 보이는 다테야마의 설산 같았다. 마침 짝짓기 철이어서 쌍으로 다니는 뇌조를 볼 수 있었다.

이처럼 다테야마가 정상 정복만이 아니라 과정을 즐길 수 있게 해둔 데 비해 백두산의 시설은 오직 천지를 오르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백두산 등정은 철저하게 ‘관광객’을 위한 상품으로 설계되어 있다. 일출부터 일몰까지만 관람이 가능하고 정해진 루트 이외에는 이동할 수 없다. 폭설이나 폭우 상황에서는 입산이 통제된다. 고산 등정을 할 때 비상용품인 라이터와 같은 화기는 일절 소지할 수 없다. 백두산 지역 내에 따로 산장 같은 숙소도 없다. 아웃도어 레포츠 활동은 엄두도 낼 수 없는 곳이다.

다테야마는 본인의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등산을 할 수 있는 곳이다. 해발 3015m인 오난지야마가 다테야마의 최고봉이지만 3003m의 오야마를 주산으로 본다. 오야마산 정상에는 신사가 있어서 여름철에는 제관이 등산객을 축복해준다. 일본인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으며 천천히 풍경을 감상하고 내려온다. 좀 더 등산을 즐기고 싶은 사람은 오야마를 시작으로 능선을 타고 오난지야마를 지나 후지노오리다테(2999m), 마사고다케(2861m), 벳산(2880m) 등을 오르고 쓰루기고젠 산장에서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한다.

ⓒ시사IN 고재열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의 무로도역 근처에 낸 ‘눈벽길’.

다테야마를 오르고 내리는 동안 산악스키 등 다양한 아웃도어 레포츠를 즐기는 일본인들을 볼 수 있었다. 북한 당국도 이런 아웃도어 레포츠 개발에 관심이 많다.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의 소비력이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조선국제려행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아웃도어 레포츠 여행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려는 북한 관광 당국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개마고원 지역에서 개발할 만한 레포츠로는 트레일 러닝 (산악마라톤)이 꼽힌다. 유지성 런엑스런 대표는 “개마고원 지역은 고도가 높은데도 구릉지여서 달려도 무리가 없는 편이고 안전해서 세계적인 대회도 유치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라산보다 높은 산이 백두산 말고도 북한에 50곳 이상 더 있지만 노년기 지형이라 2000m가 넘는 산들이 뾰족하지 않고 대부분 언덕 모양이다.

다테야마까지 올랐다면 이제 반대편 나가노현 쪽으로 내려갈 차례다. 올라올 때 고원버스에서 내렸던 무로도역에서 터널 안을 달리는 트롤리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가면 반대편 다이칸보 전망대에 도착한다. 네 번째 포인트인 다이칸보 전망대는 해발 2316m에 있다. 트롤리버스 정류장의 옥상에 설치된 이 전망대에서는 구로베 댐 건설로 생긴 구로베 호수와 북알프스 봉우리를 볼 수 있다. 대체로 고산은 식생이 활발하지 않아 황량한데 물이 있으면 풍경이 다채롭다. 개마고원에도 장진호, 낭림호, 부전호 등 일제강점기에 댐을 건설해서 생긴 인공호수 때문에 비슷한 풍경일 것으로 보인다.

다이칸보 전망대에서 다섯 번째 포인트인 구로베다이라까지 내려가는 길은 케이블카(일본에서는 로프웨이라고 부른다)로 7분 정도 걸린다. 이 케이블카는 중간 지주가 없어 지주와 지주 사이의 거리가 일본 최장이다.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술력을 높인 일본인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캠핑카 500대로 개마고원 캠핑 가능”

해발 1828m 구로베다이라에는 고산식물 관찰원이 조성되어 있다. 여기에서 산악 트램(케이블카)으로 5분간 이동하면 여섯 번째 포인트인 구로베 댐이 나온다. 등산로가 있어서 트램을 타지 않고 걸어서 내려올 수도 있다. 스위스는 이런 경우 산악자전거 전용로나 짚라인 등 여러 가지 레포츠를 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만들어 둔다. 알펜루트에는 그 정도로 적극적인 시설을 하지는 않았다. 해발 1455m에 위치한 구로베 댐은 높이가 186m에 달한다. 댐 건설로 구로베 호수가 만들어졌다. 호수에서는 여름철에 유람선도 운행하며 호수 옆길로 15분 정도 가면 있는 산장에서 숙박할 수 있다.

ⓒ시사IN 고재열구로베 댐에서 본 다테야마 설산 풍경.

구로베 댐 위를 걸어서 반대편으로 가는 데 10분 내외가 소요된다. 여기서 터널 전기버스로 16분 동안 이동하면 나가노현 쪽 다테야마에 입구라 할 수 있는 일곱 번째 포인트, 오기사와 터미널이 나온다. 이 터미널에서 히나타야마 고원이나 오마치 온천마을 혹은 나가노 시내까지 노선버스로 이동할 수 있다. 반대편 다테야마역 주변 숙소를 비롯해 알펜루트 양쪽 입구 숙소에는 중요한 서비스가 하나 있다. 바로 여행자의 짐을 반대편으로 옮겨주는 서비스다. 덕분에 여행자는 가벼운 행장으로 알펜루트를 종주할 수 있다.

알펜루트를 종주하고 미래의 개마고원을 상상해보려 했는데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로저 셰퍼드 씨 외에는 가본 사람이 없어서 최근 사진을 구하기도 힘들었다. 개마고원의 범위는 넓게 보면 약 4만㎢로 남한 면적의 40%에 해당하고 좁게 봐도 1만4300㎢로 경기도와 서울시를 합친 면적보다 크다. 이 땅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이곳의 활용도 우리의 상상력 범위 밖에 있다.

지난 3월15일 ‘북한 여행 활성화’를 위한 집담회가 열렸다. 이날 질문 중 하나는 ‘개마고원에서 캠핑카(모빌홈) 500대로 캠핑이 가능한가’였다. 1998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500마리 소떼를 이끌고 방북해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했던 것처럼 캠핑카 500대가 개마고원에서 캠핑을 할 수 있겠느냐를 두고 난상 토론이 벌어졌다.

이날 집담회에는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지속가능분과 위원으로 북한 여행 활성화 연구 보고서를 작성 중인 김태만 한국해양대 교수를 비롯해 현대아산에서 금강산 관광을 총괄했던 심상진 경기대 교수, 그리고 남북 합작 프로그램을 다수 제작했던 오기현 경주문화재단 대표(전 SBS PD) 등이 참석했다. 대북 사업 베테랑인 이들의 결론은 만장일치로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돈이 되는 큰 사업을 원하고 남한은 북한의 대자연을 즐기면서 난개발을 막기를 원하니 이런 대규모 캠핑 행사가 적합하다는 결론이었다. 북한 지역을 여행할 때 숙박과 식당 등 관광 인프라가 부족한 문제를 캠핑카 활용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개마고원 캠핑 행사가 이뤄진다면 그 캠핑카 중 한 대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타고 있지 않을까?

기자명 도야마현·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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