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 복직 투쟁이라니, 쌍용차 해고 10년은 명함도 못 내밀겠어요.” “400억원 손해배상 청구라니, 우리 1650만 엔(약 1억8000만원)은 너무 작게 느껴지네요.” 한국 해고 노동자와 일본 해고 노동자의 대화를 들으며 새삼 기업과 법 제도의 잔인함을 느꼈다. 두 나라 모두 헌법에 노동권이 보장되어 있다. 하지만 그 법 테두리 안에서 어떤 국민은 41년을 해고자로 보내고, 어떤 국민은 회사뿐 아니라 국가로부터도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했다.

지난 5월, 일본 쟁의연락회의에서 시민단체 ‘손잡고’와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를 초청해 일본에 다녀왔다. 한국의 손배 가압류 현실을 듣고 싶다는 요청에 어리둥절했다. 노란봉투 캠페인이 한창이던 2014년 〈시사IN〉이 취재한 일본 노동법 학자가 일본에도 손배 가압류 제도는 있지만 실제 청구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고 말했던 게 기억났다. 그가 말한 손배소의 대표 사례는 1975년 벌어진 철도 파업이었다(〈시사IN〉 제368호 ‘손배 가압류에 궁금한 세 가지’ 기사 참조).

촛불 혁명 후 노동자의 삶은 달라졌는가

그런데 쟁의연락회의가 보내온 자료에는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 가처분으로 고통받고 있는 7개 사업장 사례가 간략히 첨부되어 있었다. 쌍용차 진압이 있었던 2009년에도, 노란봉투 캠페인이 벌어지던 2014년에도 손배 청구 소송이 있었다. 최고 금액의 A사는 2억 엔(약 21억8000만원), 가장 적은 금액인 G사는 1340만 엔(약 1억46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가 걸려 있었다. 해고 싸움의 경우 짧게는 17년(A사), 길게는 43년(G사)까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간이었다.
 

ⓒ윤현지 그림

5월 방문을 앞두고 일본의 활동가에게 〈시사IN〉 기사와, 일본 손배 사례를 알려주고 일본 언론에 난 기사 등 자료를 요청했다. 그 활동가 역시 쟁의연락회의 사례를 알지 못했다. 전혀 몰랐던 내용이라며 찾아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일본 언론에 난 관련 기사 등 자료를 찾지 못했다. 심각한 수준의 노동권 침해와 해고, 싸우는 노동자들이 있는데 일본에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쯤 되니 슬슬 걱정이 들었다. 한국의 손배 가압류, 노란봉투 캠페인과 시민단체 ‘손잡고’ 등 자발적 시민활동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까. 그나마 한국에서는 시민들의 소중한 연대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법과 현실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을 보고 혹여 실망하지는 않을까.

일정 마지막 날, 동행한 김득중 쌍용차지부장이 41년간 투쟁 중인 노동자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10년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대체 41년을 어떻게 싸워오고 계신 건가요?” 일본의 해고 노동자는 이렇게 답했다. “정년을 이미 넘겼습니다. 복직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해고가 부당하기 때문에 부당함을 인정받으려는 것뿐입니다.” 그의 답변 앞에서 김득중 지부장은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부당함을 인정받는 것. 이건 노동자의 권리를 넘어 인간으로서의 존중을 말하는 것일 테다. 쟁의연락회의 쪽은 노란봉투 캠페인과 시민 참여, 이에 발맞추는 〈시사IN〉 같은 언론의 움직임 등을 두고 한국의 시민의식을 높이 평가했다.

6월이 지나면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전원 복직한다. 국가폭력 희생자인 고 김주중 조합원의 1주기도 곧 돌아온다. 지난해 8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2009년 쌍용차 진압이 국가폭력임을 인정하고 국가가 노조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철회하라고 권고했다. 경찰청은 이를 수용하겠다고 발표했다. 10개월째 권고 이행 방안은 없고, 복직자 일부 가압류가 철회되었을 뿐, 국가 손배소와 가압류도 그대로다.

일본을 방문하는 동안 가장 많이 들은 찬사가 바로 촛불로 일군 정권교체였다. 짝꿍처럼 연이은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변화를 느끼시나요?” “손배 가압류를 받은 노동자들의 삶은 달라졌나요?” 나는 선뜻 “그렇다”라고 답변할 수 없었다.

기자명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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