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 있는 돌담은 허리께를 넘지 않았다. 나무 기둥 몇 개를 걸쳐놓은 제주 특유의 느슨한 대문이 많았다. 제주 조천읍 선흘리에서 14년째 사는 한 주민은 “평소 문도 잘 잠그지 않고 다니는 평화로운 동네”라고 말했다. “육지 사람들은 잘 모르는 외진 동네”라고도 덧붙였다. 집 열다섯 채 정도가 모여 있는 마을로 진입하는 도로는 일차선뿐이었다. 열다섯 채 중 두 곳이 펜션이었다. 두 곳 모두 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가족에게 독채를 대여해주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별도의 관리자가 없는 무인 펜션이었다. 펜션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는 하루 각각 5회, 3회씩 운행하는 버스 두 대가 다닐 뿐이다. 6월11일 기자가 방문한 펜션 두 곳 중 한 곳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ㄱ펜션 대문 너머 잔디가 깔린 넓은 마당이 보였다. 모조품으로 밝혀진 CCTV 역시 출입문 오른쪽 모퉁이에 그대로 달려 있었다.

지난 5월25일 ㄱ펜션에 입실한 사람은 모두 세 명이었다. 이틀 뒤인 5월27일 오전 11시 퇴실한 사람은 두 명뿐이었다. 경찰은 5월25일 저녁 8시~9시16분에 강 아무개씨(36)가 고유정씨(36)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추정했다. 두 사람은 이혼한 사이로,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6)이 있었다. 이날 강씨는 이혼 후 처음으로 아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고씨가 예약한 ㄱ펜션을 방문한 터였다.

피해자 강씨와 피의자 고씨는 대학교 학부 시절 봉사활동 동아리에서 만나 6년 동안 교제한 뒤 2013년 6월 결혼했다. 두 사람의 집안 모두 제주도 한 동네에 살았기 때문에 신혼집도 같은 동네에 차렸다. 이듬해인 2014년 11월 아들이 태어났다.

ⓒ시사IN 이명익6월12일 고유정씨(오른쪽)가 제주지검에 송치될 때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늘어뜨려 얼굴을 숨기자 피해자 유가족들(왼쪽)이 항의하고 있다.

강씨가 법원에 제출한 이혼소송 서류에 따르면 아내는 갓난 아들 앞에서도 남편에게 심한 욕을 하고 남편을 때렸다. 고씨가 던진 휴대전화에 눈을 맞은 강씨는 병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한번은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온 고씨가 남편을 때리다 분에 못 이겨 식칼을 들고 자해하겠다고 위협했다. 엄마를 찾는 아들을 달래던 남편이 고씨에게 ‘빨리 와야 할 것 같다’고 전화했다는 이유였다.

집안일은 남편 강씨의 몫이었다. 강씨는 연구실에서 논문을 쓰다 집에 돌아와 아내가 먹고 그대로 놔둔 음식물을 치우고 설거지를 했다. 고씨는 자신의 방도 청소하지 않았다. 전기요금이나 가스요금 등 각종 공과금도 강씨가 냈다. 대학원 과정 중에 들어온 일자리 제안을 두고 고민하던 강씨에게 오히려 계속 공부하라고 권했던 사람은 장인과 장모였다. 나중에 이혼 과정에서 고씨는 ‘강씨가 대학원생이기 때문에 경제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2017년 두 사람이 합의이혼을 할 당시 법원은 강씨가 매달 두 번 아이를 만날 수 있는 면접교섭권을 인정해주었다. 고씨는 강씨에게 아들을 보여주지 않았다. 강씨가 아들을 보게 해달라고 요구할 때마다 고씨는 ‘연락드릴 테니 기다려주십시오’라는 문자만 보냈다. 고씨는 본인이 직접 키우겠다는 조건으로 양육권을 가져갔지만, 아들을 친정에 맡겼다. 그 사실을 안 강씨가 고씨의 친정에 찾아갔지만, 그곳에서도 어떤 대꾸도 없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강씨는 고씨에게 매달 꼬박꼬박 양육비 40만원을 보냈다. 강씨의 동생이 “고씨가 아이를 직접 키우지도 않고 보여주지도 않는데 양육비를 왜 보내느냐”라고 물으면 강씨는 “아이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든다. 마음 같아서는 더 보내주고 싶은데 지금은 이게 최선이다”라며 오히려 아쉬워했다. 강씨는 양육비를 보내기 위해 일이 들어오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지인이 일하는 이벤트 회사에서 짐을 나르기도 하고, 과외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매년 어린이날과 아들 생일에 맞춰 택배로 선물을 보냈다. 혹시라도 아들이 장난감을 마음에 안 들어 하면 교환하라며 영수증까지 꼼꼼히 첨부했다.

2년 넘게 아이를 보지 못한 강씨는 고씨를 상대로 면접교섭권을 이행하라는 가사조정 재판을 신청했다. 재판 과정에서 강씨는 고씨가 자신과 이혼한 직후 재혼해 충북 청주시에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혹시나 아이가 의붓아버지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을까 걱정한 강씨는 재판 속행을 신청했다. 고씨는 벌금 100만원을 내면서까지 세 차례 재판에 불출석했지만, 5월9일 법원은 ‘강씨와 고씨, 아이가 셋이서 함께 만나라’는 판결을 내리며 5월25일로 면접 날짜를 지정해주었다.

ⓒ시사IN 이명익고유정씨가 전남편 강 아무개씨를 살해한 제주시 조천읍의 무인 펜션.

재판 결과가 나온 다음 날인 5월10일부터 고씨는 인터넷으로 ‘졸피뎀(수면제)’ ‘니코틴 치사량’ 등을 검색했다. 일주일 뒤인 5월17일 고씨는 병원에서 실제로 졸피뎀을 처방받아 이튿날 자신의 차를 배에 싣고 제주도에 들어왔다. 나흘 뒤인 5월22일에는 마트에서 흉기와 표백제 등을 샀다.

유가족보다 못했던 경찰의 수사력

강씨는 2년 만에 만나는 아들 생각으로 들떠 있었다. 5월25일 오후 3~4시경 강씨는 작은아버지와 통화하면서 “테마파크에서 놀다가 밥 먹으러 가고 있다. 몇 번만 셋이서 만나면 곧 (아들과) 단둘이 볼 수 있다”라고 좋아했다. 이후 강씨는 전날 고씨가 예약해둔 ㄱ펜션으로 향했다. 강씨는 저녁 8시쯤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아들을 바꿔주며 “‘할아버지’ 해봐” 하고 즐거워했다. 아이가 “할아버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할아버지도 2년 만에 처음 듣는 손자의 목소리였다.

그게 마지막 통화였다. 저녁 9시25분 강씨의 동생은 강씨에게 “아직 안 끝났나?”라고 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한 시간 뒤 온 답장은 “다 끝났는데 작업할 게 있어서 (연구실에) 들렀다 가야 한다. (핸드폰) 충전해야 한다”였다. 형이 보낸 줄 알았던 이 메시지는 경찰에 따르면 고씨가 보낸 메시지였다. 이후 강씨의 핸드폰은 내내 꺼져 있었다. 강씨가 연구실에 있겠거니 생각했던 가족들은 5월27일 오후까지 연락이 닿지 않자 학교 등으로 강씨를 찾아다녔다. 결국 그날 저녁 파출소에 실종신고를 했다.

다음 날 경찰은 강씨의 핸드폰이 꺼진 장소를 중심으로 수색에 나섰다. 강씨가 마지막으로 만난 것으로 추정되는 고씨에게도 전화를 걸어 상황을 파악했다. 고씨는 “강씨가 나를 성폭력하려고 해서 내가 저항하자 도망쳤다”라고 진술했다. 경찰은 강씨의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형님과 고씨 사이의 사건을 아느냐”라고 물었다. 동생이 모른다고 하자 “이 친구는 모르네”라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게 다였다.

그 틈에 고씨는 강씨의 시신을 유기했다. 5월28일 밤 8시30분 고씨는 시신이 든 캐리어를 차 트렁크에 싣고 완도행 배를 탔다. 승선한 지 꼭 1시간이 지난 시점에 고씨는 차 트렁크에서 시신 일부를 꺼내 바다로 던졌다. 이를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해양수산부 부산지방해양수산청 제주해양수산관리단 관계자는 “배가 크고 밤이었기 때문에 선주도 확인하기 힘들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5월29일 경찰에 진술을 하러 간 강씨의 동생은 경찰이 펜션에서 CCTV조차 확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CCTV가 모조품이었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진술을 마치고 경찰서를 나온 강씨의 동생은 곧장 펜션을 찾아가 주변에 다른 CCTV는 없는지 찾아다녔다. 80여m 떨어진 주택에 CCTV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강씨의 동생은 경찰을 불러 화면을 함께 확인했다. 화면 속에 형의 모습은 없었다. 그사이 고씨는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아버지 명의의 아파트에서 남은 시신을 유기했다.

ⓒ시사IN 이명익고유정씨에게 살해된 강 아무개씨의 방(위)에는 고인의 유품과 함께 아들이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이 놓여 있었다.

현장검증도 없었다. 사건이 발생한 지 거의 1주일이 지난 5월31일에야 경찰은 혈흔을 찾는 루미놀 검사를 통해 강씨의 사망을 추정하고, 이튿날인 6월1일 청주에서 고씨를 긴급체포했다. 경찰은 고씨가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는 정신감정 결과를 내놓으면서도 정확한 범행 동기를 찾지 못한 채 6월12일 검찰로 사건을 넘겼다.

이번 사건으로 3개월 전 고씨의 의붓아들이 사망한 사건도 재조명됐다. 청주 상당경찰서는 고씨가 재혼한 현재 남편의 친아들(4)이 지난 3월2일 돌연 질식해 숨진 사건을 재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6월13일 고씨의 남편은 친아들 살해 혐의로 고씨를 고소했다.

“고씨 가족, 사과 한마디 없었다”

강씨의 동생은 “한동네에 살고 있는 가해자 고씨 가족으로부터 만약 사과를 한마디라도 들었다면 신상 공개까지 요구하지 않았을 거다. (가해자가) 돈 많은 집안이니까 능력 좋은 변호사를 써서 가석방으로 풀려나면 어떡하나”라며 걱정했다. 고씨는 제주도에서 렌터카 사업으로 유명했던 재력가 집안의 장녀다. 고씨의 변호인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지금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사망한 강씨는 졸업을 한 학기 앞둔 대학원생이었다. 그는 쓰고 있던 박사과정 논문 한 편을 마무리 짓고 졸업해서 직장을 구하고 싶어 했다. 연구실 동료들은 ‘바로 취업하지 말고 해외에서 포스트 닥터(박사 후 과정)라도 하라’고 권했다. 강씨는 “그러고 싶지만 외국에 나가면 아들을 더 못 볼 것 같다”라며 고개를 젓곤 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들을 강씨는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6월13일 현재 시신을 찾지 못해 장례를 치르지 못한 유가족은 강씨가 지내던 방 한쪽에 영정을 두었다. 강씨의 방에 들어서자 단정하게 갠 이부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방에는 책장에 꽂힌 책과 행거에 걸린 옷 몇 벌, 상자 대여섯 개가 전부였다. 상자마다 강씨의 아들이 가지고 놀던 알록달록한 장난감과 큼직한 글씨가 쓰인 동화책이 가득 들어 있었다. “형이 아이를 다시 만나면 읽어주겠다고, 놀아주겠다고 하나도 못 버리게 했다.” 상자를 바라보던 동생이 무릎을 꿇고 향을 피웠다. 강씨의 영정은 그가 평소 쓰던 독서대에 받쳐져 있었다.

기자명 제주·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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