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들의 ‘부모 되기’
  •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 호수 613
  • 승인 2019.06.21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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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퍼레이드(퀴퍼)가 20돌을 맞았다. 혐오 세력의 확성기 공격을 뚫고 경찰 벽을 넘어 서울시청 앞 광장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무지개 깃발들을 보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내 책상 위에는 세 아이가 자라고 있다. 조카, 후원하는 에티오피아 소녀, 그리고 김민호씨(가명) 부부의 아이다. 민호씨는 FTM(Female to Male) 트랜스젠더로 호르몬 치료와 성기 절제 수술, 주민등록상 성별 정정까지 완료했다. 오래 사귄 여자친구와 혼인신고까지 해 법적으로도 당당한 부부가 되었다. 두 사람은 2세를 고민하던 중 나를 찾아왔다. 민호씨는 생식세포를 보존하지 않고 적출을 했고, 아내는 검진상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정켈

현대 기술 및 법의 테두리 안에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정자 기증으로 아내가 임신을 하거나 입양하는 방법이 있다. 전자를 선택하고 보니, 그다음 장벽은 ‘난임 지원사업’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일단 ‘난임’의 정의인 ‘부부가 1년간 피임 없는 성관계를 하였지만 임신이 안 된 상태’는 따질 필요도 없이 당연히 부합한다. 다음, 남성 측 원인인 ‘무정자증’이 진단되면 정자은행을 통해 정자를 기증받을 수 있다. 민호씨에게 정소 자체가 없으므로 이것도 당연하지만, 비뇨기과 의사가 정액 검사를 한 후 무정자증 진단서를 써주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다. 편견을 갖지 않고 진단서를 써줄 비뇨기과 의사와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해줄 난임 전문의를 수소문하고 난임 지원사업을 연결해주는 과정을 거쳐, 다행히 이들 부부는 한 번에 임신에 성공했다. 후에 난임 시술을 해준 의사에게 연락을 받았다. ‘특별한 케이스’라고 생각했던 민호씨 부부가 너무도 평범한, 아기를 원하고 서로 사랑하는 커플이라서 자신이 갖고 있던 편견을 돌아보고 반성했다는 내용이었다.

성소수자의 보조생식술에 대해 의료계와 사회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국내에서는 사실상 논의 자체가 전무하다. 외국에서는 논의도 활발하고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다. 재생산권은 언제 누구와 아이를 낳을지, 아이를 낳을지 말지, 어떻게 가족을 만들지까지 포괄하는 큰 개념이며, 이는 성정체성·장애·연령에 상관없이 모든 개인이 주체적인 삶을 구성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비혼 여성이 결혼과 출산의 압력을 받지 않을 자유와 성소수자가 아이를 양육할 욕구는 모두 존중되어야 한다.

결국 성소수자들이 ‘부모 되기 (parenting)’에 적합한지에 대한 논의로 넘어가는데, 지금까지 연구에서 성소수자의 자녀에게 정신사회적인 병리 상태가 밝혀진 바는 없다. 부모가 될 자격은 ‘어떤 돌봄과 애정을 줄 수 있느냐’ 하는 약속과 수행에 달려 있다. 성소수자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는 것이 미국 생식의학회와 미국 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의 결론이다.

가장 어려운 ‘커밍아웃’이 기다리겠지만…


아기의 첫 태동 순간, 탄생, 백일, 돌은 물론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폐지가 결정된 날에도 민호씨는 나에게 아이의 사진이 첨부된 메일을 보내왔다. 민호씨는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뿐만 아니라 첨단기술과 성인지 감수성이 있는 의료인도 필요하다고 농담하곤 했다. 그동안 커밍아웃했던 그 어느 경우보다도 어려운 커밍아웃을 언젠가 아이에게 하게 되는 순간이 오겠지만, 여러 어려움을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이겨나가고 있는 이 과정 자체가 힘이 된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아이에게 ‘엄마와 아빠가 얼마나 간절하게 노력했고 용감하게 너를 얻었는지’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다양한 소수자들의 목소리와 관계들이, 사랑이 이기는 경험들이 광장을 넘어 사회 곳곳에서 들리고 보이길 바란다. 나는 이제 민호씨 가족과 함께 ‘퀴퍼’로 소풍가는 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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