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잘 가 76년 뒤 또 만나
  • 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 호수 613
  • 승인 2019.06.21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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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 먼 우주에 작은 별이 살고 있었어요. 작은 별은 외로웠어요. 그 별 주위에 다른 별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리뷰를 쓰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을 했다. 글 텍스트를 모두 옮겨 적어본 것이다. 왜 그러고 싶어졌는지는 모르겠다. 어쩐지 이 이야기는 들춰보고 뜯어볼 일이 아니라 그저 흘러가는 대로 폭 잠겨야 할 것 같았다. 수많은 노래로 친숙한 작가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조곤조곤 흐르고 있는데, 그걸 멈춰 세우면 안 될 것 같았다.

“어느 날 저 멀리 어디에선가 불처럼 빛나는 꼬리를 지닌 혜성이 나타났어요. 작은 별은 반가운 마음에 물었어요. ‘혜성아, 안녕! 내 친구가… 되어줄래?’” 혜성은 들은 체 만 체 쏜살같이 날아가버리고, 섭섭한 작은 별은 으앙 울음을 터뜨린다. 그로부터 76년 뒤, 다시 혜성이 나타난다. 저 멀리서 소리를 지르며. “지난번엔 미안했어. 너무 빨리 지나가느라… 그래, 우리 친구가 되자!” 그러고는 또 엄청난 속도로 멀어진다. 하지만 작은 별은 이제 외롭지 않다! 76년 뒤에 다시 만날 친구가 생겼으니.
<기다릴게 기다려 줘> 이적 글, 이진희 그림, 웅진주니어 펴냄

내용을 소개하자고 단어와 문장을 잘라내고 뭉쳐놓으니 작은 별과 혜성에게 너무 미안해진다. 그들의 외로움, 반가움, 섭섭함, 미안함, 기쁨과 설렘을 이렇게 훼손하면 안 되는 건데.

76년은 인간에게 거의 인생 전체인 기간이라 그런 오랜 기다림은 상상하기 힘들다. 게다가 단 세 문장도 제대로 말할 수 없는 허망한 만남, 그리고 다시 똑같은 기다림이라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야기의 무대가 우주라는 점을 다시 떠올린다. 인간은 우주가 137억 광년 전에 탄생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130억 광년 전의 우주에서 온 빛을 잡아 사진을 찍어낼 수 있는 존재다. 그렇다면 76년이 얼마나 찰나 중의 찰나에 불과한 순간인지도 헤아릴 수 있다. 먹먹하던 가슴이 그득해진다. 작은 별이 눈 두어 번 깜빡이고 나면, 혜성이 빛나는 꼬리를 서너 번 흔들고 나면, 둘은 다시 만날 것이다. 세 문장씩 나누는 대화가 모여 은하수처럼 흐르는 사연이 오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림책 한 권에 담긴 시간의 감각

작은 그림책 한 권이 시간에 대한 생각과 감각을 이렇게 퍼져나가게 한다. 1초가 1년 같은 고난의 시간도 있겠지만, 10년을 1분처럼 흘려보낼 수 있는 보상의 순간도 있다. 남이 정한 시간의 노예로 끌려다니지 않고 내가 만들어낸 시간 속에서 나를 지켜나갈 수 있다. 쏜살같이 지나간 누군가가 영원히 되돌아오고 또 되돌아올 친구임을 믿을 수 있다. 혼자 남겨졌으면서도 ‘아주 가끔씩이기는 하지만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생겼으니’ 외롭지 않은 작은 별처럼 나를 위로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이성과 감성과 상상을 합해 시간을 탐구하고 끌어안아야 한다. 그러면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우리의 빛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서로를 다시 만날 생각에 언제나 두근두근 설레며 넓은 우주에서 눈부시게 빛날 수 있었”던 작은 별과 혜성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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