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서정민갑씨는 스스로를 대중음악 의견가라고 부른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이 직함을 훔쳐 쓰고 싶은 심정이 없지 않다. 이유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나는 객관적인 평론이란 ‘환상 속의 그대’ 정도에 불과하다고 확신한다. 아니, 평론가 각자가 쌓아온 음악 듣기의 역사가 다를진대 객관적인 평가가 어찌 가능하겠나. 차라리 평론은, 자신의 주관을 ‘잘 설득하는 과정’에 가깝다. 뭐, 내가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은 별로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쪽을 향해 아주 조금씩은 다가서고 있다고 믿는다.
바로 이 믿음, 음악평론가들 중 나보다 더 간절한 이들이 꽤 있다. 서정민갑씨가 그중 하나다. 글쎄, 그와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눠보지는 않았지만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그 간절함에 고개를 숙인다. 그러곤 반성한다. 그의 글에서 느낄 수 있는 그 간절함이 과연 나의 결과물에는 있는가 되짚어보면 대개 부정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겸손한 척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글쓰기의 경우, 꾸준한 노력이 천부적 재능을 이긴다고 믿는 쪽이다. 재능마저 부실한 나에게 남은 방법이라곤 꾸준한 노력밖에 없는데, 이것마저 부족하구나 절감하게 만드는 동료들 중 하나가 바로 서정민갑씨라는 의미다. 갑작스럽긴 하지만 이쯤에서 최근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이 남긴 말을 다시 들어본다. 대략 다음과 같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에게 ‘궁극의 공포’란 ‘과연 내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의심이 드는 때’일 겁니다. 어떤 핑계도 댈 수 없는 잔혹한 순간과 맞닥뜨리는 것이죠. 하지만 궁극의 공포란 영원히 해소되지 않는 것이므로 그냥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고, 자신에게 최면을 걸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아지는 그의 글
글 쓰는 일이라고 다를 게 있을까. 소처럼 우직하게 쓰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 그 와중에 제법 괜찮은 문장 하나쯤은 길어 올릴 수 있겠지, 희망하면서 쓰고, 또 쓰는 거다. 책 〈음악편애〉에서 서정민갑씨는 인디만이 아니라 태연이나 원더걸스 같은 메이저까지 아우르면서 자신의 최선에 가닿으려 노력한다. 그 노력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어서 참 울림 있게 읽은 책이기도 하다.
내가 그의 글에 대해 가타부타할 자격이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감히 확언할 수 있는 게 딱 하나 있다. 그의 글이 시간이 흐를수록 나아지고 있다(고 내가 느끼고 있다)는 거다. 지긋한 관찰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관찰은 삐죽한 에너지를 억제하는 힘을 지녔다. 관찰은 오류를 0으로 만들 수는 없어도, 그걸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다. 그의 글처럼 “세상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는데 어떤 음악은 왜 여전히 아름다운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고 음악을 찾아 들어보시라.
-
스트리밍 사이트 최고 가수, 빌리 아일리시 [음란서생]
스트리밍 사이트 최고 가수, 빌리 아일리시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대중음악과 관련해 챙겨야 하는 음악 전문지가 몇 개 있다. 영국의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NME)〉가 그중 하나다. NME의 글쓰기 지향은 통상 ‘곤조 저널리즘(Gonzo Jour...
-
30대에 대가의 반열에 오른 뮤지션 앤더슨 팩 [음란서생]
30대에 대가의 반열에 오른 뮤지션 앤더슨 팩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영어로는 ‘Anderson .Paak’이라 적는다. 자료를 찾아보니, 앤더슨 팩 혹은 앤더슨 팍이라 부르면 된다고 한다. 그렇다. 앤더슨 팩은 한국계 흑인 뮤지션이다. 정확하게는 ...
-
듣다가 ‘툭’ 하고 눈물이 흐른다 [음란서생]
듣다가 ‘툭’ 하고 눈물이 흐른다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열정을 투사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그의 보컬이 좋았다. 목소리를 툭툭 내뱉는데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겼다. 무기력하다는 인상은 들지 않았다. 그보다는 무심함에 가까웠다. 무심함은 곧...
-
신박한 휘파람 매력적 멜로디 [음란서생]
신박한 휘파람 매력적 멜로디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즐겨 듣는 신곡 중 몇 개를 오랜만에 소개한다. 전반적인 평가가 높은 곡들이니 꼭 찾아서 감상해보시길. 앤드루 버드 ‘시시포스(Sisyphus)’ 휘파람을 잘 불지 못한다. 괜히 ...
-
듣고 또 듣고 미친 듯이 또 듣다 [음란서생]
듣고 또 듣고 미친 듯이 또 듣다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이 밴드의 이름을 언제 처음 들었더라. 대략 2010년대 초반 즈음이었을 것이다. 맨체스터 오케스트라(Manchester Orchestra)라고 해서 당연히 맨체스터 출신 밴드인 ...
-
삐딱한 음악가의 날카로운 유머 [음란서생]
삐딱한 음악가의 날카로운 유머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토이 스토리 4〉를 봤다. 랜디 뉴먼의 ‘유브 갓 어 프렌드 인 미(You’ve Got a Friend in Me·넌 나의 친구야)’를 또 들었다. 아, 어쩜 이리 사랑스러운 노...
-
우리 시대의 젊은 스티비 원더
우리 시대의 젊은 스티비 원더
배순탁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작가)
아무리 평등을 지향하는 밴드라고 해도 ‘주도권을 가진 멤버’는 있기 마련이다. 이른바 밴드의 구심으로 작동하는 인물인 셈이다. 즉, 멤버들 중 누군가가 자신의 음악적인 욕망에 충실...
-
극과 극의 음악 섞고 ‘밈에서 밈’ 창조 [음란서생]
극과 극의 음악 섞고 ‘밈에서 밈’ 창조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17주다. 그렇다. ‘원 스위트 데이(One Sweet Day)’(1995)와 ‘데스파시토 (Despacito)’(2017)가 보유하던 16주 연속 1위 기록이 얼마 전 경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