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술집 접대부와 같은 일을 하고 수없이 술접대와 잠자리를 강요받아야 했습니다.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2009. 2. 28 장자연.” 스물아홉 살의 신인 배우 장자연씨는 이 문건을 남기고 얼마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자연씨가 숨진 지 10년 만에 진실을 밝힐 기회가 왔다. 검찰의 과거사를 반성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이하 검찰 과거사위)’가 이 사건을 재조사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나온 검찰 과거사위의 발표는 주요 관계자들에게 면죄부만 주었다고 비판받는다. 이 사건은 왜 다시 미궁에 빠졌을까. 5월27일 〈시사IN〉 팟캐스트 ‘시사인싸’에서 ‘장자연 사건’ 조사에 참여한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이하 대검 진상조사단) 총괄팀장 김영희 변호사를 만났다. 사회자 최광기씨, 김은지·김연희 기자와 김영희 변호사가 한 시간 동안 나눈 대화 내용을 정리했다.


ⓒ연합뉴스김영희 대검 진상조사단 총괄팀장이 5월13일 검찰 과거사위 회의에서 장자연 사건 조사 결과를 최종 보고한 뒤 회의실을 나서고 있다.


먼저 ‘검찰 과거사위’와 ‘대검 진상조사단’을 구별하고 시작하자.

법무부 산하에 검찰 과거사위가 있다. 그것과 별개로 대검찰청 산하에 진상조사단이 있다. 검찰 과거사위와 대검 진상조사단은 별개의 조직이고, 독립되어 있다. 기자들도 검찰 과거사위 산하에 대검 진상조사단이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데 그렇지 않다.

어떻게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에 합류하게 되었나?

검찰 과거사위나 대검 진상조사단에 대해서는 2017년 말부터 의논이 있었던 것 같다. 저는 2018년 1월에 연락을 받았다. 검찰 과거사위는 위원 9명으로 구성되고, 조사단은 (지금은 늘어났지만) 6개 팀이 있었다. 팀마다 교수 2명, 변호사 2명, 검사 2명, 검찰 수사관 1명이 있다. 교수들은 판·검사 경력이 있거나 형사법에 밝은 분들이 오는 것으로 안다. 변호사들은 공익 활동을 선발 기준으로 삼았다고 했다. 저는 핵발전소 반대 운동을 열심히 했고, 과거 2008년 삼성 특검 때 김용철 변호사의 변호인을 하면서 특검을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한 적이 있다. 대검 진상조사단이라는 게 역사상 처음이고, 굉장한 중요한 일이라고 판단해 합류했다.

검찰 과거사위와 대검 진상조사단은 어떤 일을 하나?

문제가 된 과거 검찰 수사·소송기록 검토와 관계자 대면조사는 대검 진상조사단만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검 진상조사단이 내린 판단이 더 사건의 실체와 가까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검찰 과거사위는 대검 진상조사단에서 쓴 보고서를 보고 독립적 판단을 하지만, 이런 이유로 대검 진상조사단의 판단을 존중해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형제복지원 사건이나 MBC 〈PD수첩〉 사건 등과 달리 ‘장자연 사건’은 검찰 과거사위가 대검 진상조사단의 다수 의견과 다른 판단을 했다.

팀(대검 진상조사단) 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기존의 검찰 수사를) 어느 정도 강도로 비판할 것인지, (해당 검찰 수사를) 불법으로 판단할지 혹은 단순한 수사 미진으로 볼 것인지…(진상조사단 내에서도 의견이 다를 수 있다). 또한 이전의 검찰 수사에 대해 ‘그냥 문제가 있었다’라고 판단할지 혹은 (재)수사를 권고할지에 대해서도 진상조사단 내 의견이 다양할 수 있다. 민간인 사찰 등 검찰 과거사위가 이미 다룬 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럴 때는 대검 진상조사단 팀에서 다수 의견을 결론으로 채택한다.

ⓒ연합뉴스장자연씨 사건에 관한 검찰 과거사위 발표는 관계자들에게 면죄부만 줬다는 비판을 받는다.

장자연 사건에는 12가지 쟁점이 있었다. 쟁점마다 다수 의견과 소수 의견이 있다. 그러면 쟁점별로 다수 의견이 결론으로 나가지만, 소수 의견도 각주나 별개 의견으로 표시한다. 검찰 과거사위는 대체로 (대검 진상조사단의) 다수 의견을 결론으로 반영해서 발표했다. 그런데 장자연 사건에서는, 검찰 과거사위가 이례적으로 소수 의견을 결론으로 받아들였다. 대검 진상조사단의 다수 의견이 무시됐다는 게 문제다. 검찰 과거사위의 발표를 보면서 놀랍고 실망스럽고 화가 났다.

대검 진상조사단의 다수 의견(4명)은,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가 실제로 존재했고 성폭행도 가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었나?

장자연씨가 2009년 2월28일에 작성한 문건이 있다. 이를 당시 KBS가 입수해 보도했다. “배우 장자연의 피해 사례입니다”라고 시작되는 문건 4장이 남아 있다. 장자연씨가 소속사에서 겪었던 여러 문제점이라든가 본인이 강요당했던 술자리 같은 부분에 대해 실명으로 피해 사례를 남겼다. 대다수가 7장으로 알고 있는 그 문건이 현재 4장밖에 없다. ‘나머지 3장 혹은 2장(의 내용)은 뭘까’ 하고 시민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이다.

2009년 장자연씨 사망 직후에 조사받았던 이들 가운데서는 ‘장자연씨가 작성한 문건을 보았다’고 진술한 사람들이 있다. 복수의 사람이 ‘이름만 적어놓은 문건이 있었다(장자연 리스트)’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분들은 2009년 3월 장자연씨 사망 직후에 수사를 받았는데 (당시는) 아주 기억이 좋을 때다. 그런데 그때 했던 진술이 지금에 와서 달라진 부분이 있다(진술자 중 일부가 진술 내용을 바꿨다). (이에 따라) 검찰 과거사위는 ‘리스트의 실체가 없다’고 발표해버렸다. 가장 황당한 대목이다.

검찰 과거사위로서 정확하게 하려면 ‘명단으로 모아놓은 것은 확인을 못했지만, 내용에서 확인된 이름은 몇 명이다’라고 했어야 하지 않나. 나도 (리스트 관련) 이름까지 밝히는 건 명예훼손 소지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장자연 리스트’ 자체를 없었던 것으로 만드는 것도 실체와 맞지 않는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성폭행 피해 의혹에 대해서는?

성폭행 의혹 부분은 2009년 당시라든지 장자연 사건이 다시 크게 거론되었던 2011년에도 안 나왔던 이야기다. 대검 진상조사단이 2018년 4월부터 조사를 했는데, 2019년 들어서 그것도 정말 막바지에 진술이 나왔다. 장자연씨로 하여금 문건을 쓰게 한 유 아무개 매니저가 있다. 유 매니저가 대검 진상조사단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장자연씨가 쓴 문건이 처음에는 굉장히 내용이 셌다. 심하게 성폭행 당했다는 내용도 썼다. (그래서 매니저로서) ‘이건 좀 너무 세다. 심하니까 여배우로서 생활하려면 이런 것은 빼는 게 좋겠다’라고 했다. 이래서 (장자연씨가) 다시 썼다.”

유 매니저 조사 다음 날 윤지오씨를 조사했다. 윤지오씨가 조사단에게 “장자연씨가 술자리에서 약에 취한 것 같았다. 술에 약을 탄 것 같았다. 한 잔도 안 되는 맥주를 마시고 눈이 풀리고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라는 말을 했다. 자기가 보기에는 성폭행 가능성도 있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유 매니저와 윤지오씨는 서로 연락할 리가 없는 관계이다. 또 2010년 무렵에, 장자연씨 문건을 본 어떤 사람은 정 감독이라는 인사에게 전화를 해 “문건에 ‘술에 약을 탔다’는 내용이 있다”라고 진술한 게 있었다. 이 세 가지가 삼각형으로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성폭행 의혹 부분은 어떻게 진행되었나?

뭔가 진실을 캐봐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그런데 대검 진상조사단은 강제수사권이 없다. 압수수색도 할 수 없고 통화 내역도 볼 수 없다. 실제로 그런 내용을 알고 조사에 응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성폭행 관련 부분이 사실이라면 공소시효가 남아 있을 수 있다. 만약 약을 탄 사람은 A인데 성폭행을 한 사람은 B라고 하면, 특수강간이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15년이다. 범행이 2008년 정도에 있었다고 치면 2023년, 또는 2024년까지는 수사가 될 수 있다. 대검 진상조사단의 다수 의견은 이랬다. ‘당장에 수사 권고를 할 정도로 어떤 술자리나 가해자가 특정되는 건 아니지만, 복수의 진술이 있고 더군다나 장자연씨 본인이 문건에 그런 내용을 썼다고 하니 수사 여부를 검찰이 판단해서 검토해달라.’ 이런 다수 의견을 냈다. 하지만 검찰 과거사위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수 의견은 검사들의 의견이었다. ‘이건 기록을 보존하자, 그리고 나중에 혹시 누가 증거를 들고 오면 그때 가서 수사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지금 검찰 과거사위에서도 수사 권고를 못하는 걸 누가 나중에 증거를 들고 올까? 그건 기대할 수 없고 하나 마나 한 소리라서 나는 반대했다.

ⓒ연합뉴스5월20일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장자연 사건 최종 심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장자연 사건 당시 2009년 검경의 수사를 보면 〈조선일보〉와 관련해서도 미진했다.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의 통화 기록을 이틀치만 조사했다거나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은 아예 부르지도 않았다.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한 건 아니다. 헌법에는 그렇게 되어 있으나 실제로 재판이나 수사 과정에서 보면 절대로 같게 취급하지 않는 듯하다. 어떤 사람은 아예 소환 자체를 못하고. 통화 내역 조회하는 것만 해도 1년치 전체를 뽑는 게 관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와 관련된 이들의 통화 내역 조회가 너무 협소했다. 아니면 아예 조사를 안 하거나.

대검 진상조사단 활동을 하면서 아쉬웠던 점은?

‘2009년 수사 당시 〈조선일보〉의 외압’은 검찰 과거사위가 만장일치였기 때문에 발표를 했다. 조현오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장 등이 진실을 말해 도움이 됐다. 장자연씨 소속사 사장에 대해 위증 수사 권고를 이끌어낸 것은 그나마 작은 성과다. ‘장자연 리스트’에 대해 검찰 과거사위가 실체와 맞지 않게 발표한 것은 속상하지만.

검찰의 수사 라인에서 외압 등이 없었는지 좀 더 적극적으로 밝혔으면 좋았을 텐데 싶다. 당사자인 검사들이 입을 열지 않으면 밝히기가 참 어렵다. 2009년 당시 장자연 사건 수사 라인에 있던 검사들은 지금 다 변호사인데도 말을 안 했다. 경찰은 책임 라인에 있던 조현오 전 경기청장이 직접 외압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았나. 과연 경찰만 외압을 받았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꼭 〈조선일보〉를 말하는 게 아니다. 관련자들이 많고 권력층이 많았기 때문에 검사 쪽에도 외압이 있지 않았을까 의심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검사 중에는 누구 하나 외압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 말을 믿을 수 있나.

그동안 검찰 과거사 관련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은?

검찰 과거사위의 역할은 검찰의 잘못을 밝히는 거다. 검사의 과거 수사에 위법이나 미진한 점이 있는지 돌아봐야 하는데, 검찰 과거사위 전체 사건에서 기소된 검사가 한 명도 없다. (문제가 된 사건을 맡았던) 수사 검사 중에 누군가 징계를 받거나 처벌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그러면 검찰 과거사위를 왜 했지?’ 하는 의문으로 이어질 것 같다. 누군가 책임지고 처벌받지 않는다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

어떤 사건이든 그 당시 검사들이 사실상 처벌받을 정도의 불법행위를 했다고 판단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수사 권고를 하고 싶어도 공소시효가 지났다. 또 공무원 관련 범죄들이 시효가 짧다. 7년인 경우가 많다. 왜 그 당시에 이런 불법이 구조적으로 묵인되었을까. 다른 사람의 죄를 찾아내서 처벌하는 기관이 검찰인데, 오히려 검사 자신이 불법을 저질렀을 때 이걸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는 정말 심각한 문제다. 검찰 권력에 대한 통제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유튜브, 팟빵·팟티·아이튠스 팟캐스트에서 ‘시사인싸’를 검색하면 들을 수 있습니다(15회).

기자명 정리·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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