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 너머 예술이 된 공예
  • 고재열 기자
  • 호수 611
  • 승인 2019.06.05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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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공예가 어떻게 현대미술의 한 자리를 차지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전시들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공예품을 소장하는 외국의 유명한 박물관과 미술관도 늘어났다.
‘좀비와 정말 멋진 모자들에 대한 드라마.’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드라마 <킹덤>에 대한 외국인들의 한 줄 요약이다. 외국인들이 단 댓글은 우리 전통 쓰개에 대한 감탄과 다양한 질문으로 채워졌다. 특히 양반들이 쓰는 챙 넓은 갓이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전통 쓰개에 대한 외국인들의 이런 반응은 낯설지 않다. 이미 한 세기 전에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도 가장 인상적인 조선의 풍물로 갓을 꼽았다.

전통 쓰개는 실용적인 목적도 있었지만 예를 표하기도 하고 신분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통 쓰개 중 챙이 있는 것을 ‘입’ 또는 ‘갓’이라 부른다. 양반들은 말총으로 만든 ‘흑립’을 주로 썼다. 흑립 중에서 챙이 넓은 것은 말총이 아니라 대나무를 다듬어서 만든 것이다. 가는 대오리(죽사)를 인두로 지져서 완만한 곡선을 만들고 먹칠과 옻칠을 해 만든 것인데 <킹덤>에서 주목받았다.

갓이 현대에 재발견될 수 있었던 비결은 미니멀리즘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곡선과 직선의 조화를 도모하고 검은색 단색으로 화려한 치장을 지양하는 갓은 현대인의 미감에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전통 갓의 미학을 더 깊이 알 수 있는 전시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갤러리 (KCDF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공예주간(5월17~26일)’ 행사로 열리는 <공예실천, the praxis>전(6월8일까지) 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4호 갓일장 박창영 명인의 갓이 전시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갓일장 박창영 명인의 갓이 KCDF 갤러리에서 전시 중이다(위). 스크린의 화면은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의 한 장면.

KCDF 갤러리 2층 전시장에는 스크린에 투사된 <킹덤>의 장면을 배경으로 갓 수십 개가 매달려 있다. 갓끈의 형태도 다양한데 풀어놓기도 하고 매듭을 지어놓기도 했다. 치자로 물들인 노란 갓도 있고 챙이 넓은 갓도 있고 심지어 싸구려 모조품도 있다. 박창영 명인은 전통 방식으로 만든 갓 사이로 공장에서 만든 모조품 갓을 놓았다. 전통이 손쉽게 대체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전시장에는 한국 나전칠기계에서 한 획을 그었던 김봉룡 명인으로부터 주름질과 끊음질 기법을 전수받은 이형만 명인과 아들 이광웅씨의 나전칠기 작품 그리고 청자 공예가 고 유근형 명장과 아들 유광열 명장의 청자 등 대를 이은 공예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 전시에서 유심히 볼 부분이 있다. 박창영 명인의 갓이나 이형만· 이광웅 부자의 나전칠기 작품에는 변주가 별로 없다. 전통을 재현하는 데 집중한다. 반면 유근형·유광열 부자의 청자는 다양한 변주를 보여준다.

ⓒ시사IN 조남진유근형·유광열 부자의 청자는 자유롭게 변주되었다.
이런 차이는 무형문화재 제도와 연관이 깊다. 지금까지 공예품에 대한 절대적 기준은 무형문화재 제도였다. <공예실천>전을 기획한 오세원 큐레이터는 “무형문화재 장인들도 원래는 실생활 용품을 만들던 장인이었다. 그런데 실생활에 쓰이지 않으면서 이런 기술을 보존하기 위해 국가가 무형문화재 제도를 만들어 가치를 부여하고 매스미디어는 이들을 집중 조명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이 싹트고 공예 작품에도 아우라가 생겼다”라고 설명했다.

무형문화재 제도는 전통을 보존할 수 있도록 돕고 권위를 부여해주지만 그것의 확산에 장벽이 되기도 했다. 무형문화재 기술의 대를 잇는 공예가들은 전통 바깥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 성향이 있다. 그들의 가치는 전통을 지키는 것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반면 무형문화재의 계보 바깥에 있는 공예 작가는 확장성이 크다. 디자이너나 예술가와의 협업도 과감히 시도한다.

공예를 예술의 언어로 사용하는 작가들

<공예실천>전의 작품 중에서도 유근형·유광열 부자의 청자는 자유분방했다. 고 유근형 명장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세운 한양고려소에서 청자 제작 기술을 익히고 전국의 고려 시대 가마터를 찾아다니며 흙과 유약을 연구해 고려청자를 재현했다. 유근형 명장이 재현에 집중했다면 아들 유광열 명장은 청자를 예술적 표현의 도구로 확대했다. 유광열 명장은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알렉산드로 멘디니와 청자 의자 108개를 만들어 ‘108번뇌’라는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그 일부도 전시했다.

최근 들어 공예품에 권위를 부여하는 방식이 다원화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외국 유명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소장 여부다. <공예실천>전에 옻칠 작품을 전시한 정해조 배재대 명예교수가 대표적이다. 전통 방식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을 개발했는데, 그의 작품이 영국 빅토리아앤드앨버트 왕립박물관이나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손혜원 의원이 기획하고 황삼용 나전칠기 장인이 제작한 ‘조약돌’ 시리즈도 현대미술 작가인 데이미언 허스트에게 팔리면서 유명해졌다.

ⓒ시사IN 조남진이형만·이광웅 부자의 나전칠기 작품은 전통에 충실하다.
아름다움이 심심해질 무렵 공예는 아름다움 너머의 가치를 추구하기 시작한다. 바로 예술이다. 젊은 공예가들은 공예의 예술성이 단순히 아름다움에만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이들은 절대 미감을 추구하기보다는 자신을 표현하는 예술의 언어로 공예를 사용한다. <공예실천>전에 참여한 젊은 작가들도 그랬다. 강준영 작가는 공예의 ‘고급진 표현’ 중 하나인 백자와 금칠을 활용해 똥장군을 만들어 전시한다. 고급과 저급을 뒤섞는 장난이다. 최원진 작가는 공장에서 나온 ‘불량 도자기’ 3.75t을 수집해 ‘공존’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만들었다. 신미라 작가는 그리스 조각상을 비누로 만들어 사람들이 어느 정도 사용하게 한 후 마모된 부분을 그대로 전시하는 ‘화장실 프로젝트’의 작품들을 전시했다. 이들에게 공예는 미의 결정체가 아니라 놀이에 가깝다.

아름다움을 넘어 예술로 가려는 양상이 가장 두드러진 공예 분야가 도자다. 1999년 시작해 올해 20년이 된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덕분에 도자 분야는 투자가 많이 이뤄졌고 국제 교류도 활발하다. 그만큼 시장도 커졌고 이에 비례해서 도예가들의 예술적 표현 욕구도 증가했다.

ⓒ시사IN 고재열박동춘 명장(오른쪽)이 고려 시대 단차를 마셨던 고려 다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재해석되는 ‘공예의 쓸모’


공예주간에 맞춰 열리는 한국도자재단의 <생각하는 손>전 (6월30일까지)은 아름다움을 넘어선 공예가 어떻게 현대미술의 한 자리를 꿰어 차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전시다. 경기도자비엔날레에서 수상한 작품이 주로 전시됐다. 세계 현대 도예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작품들이다. 그런데 대부분 고전적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이 작품이 어떻게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는지 맥락을 파악하는 것은 흥미로운 과정이다.

전시회의 제목은 우리의 지성이 손끝으로 표현된다는 의미이다. 전시회를 기획한 오유경 큐레이터는 “전시회 제목을 ‘생각하는 손’이라고 한 것은 공예 작가들이 어떤 의도로 작품을 만들었냐는 질문을 받을 때 ‘손이 알아서 만들었다’고 답하곤 하는 것에서 착안했다. 작품을 보면서 작가가 어떤 의도로 작품을 만들었을지 작가의 손길을 상상하며 보는 전시다”라고 말했다.

공예의 사전적 의미는 ‘실용적 물건의 본래 기능과 미적 장식의 양면을 조화시켜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제작하는 것’이다. 예술성과 함께 공예의 다른 한 축인 ‘쓸모’에 대한 해석도 변하고 있다. 공예주간에 열리는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의 <공예 살롱>과 <호랑이의 도약>전은 쓸모에 대해 재해석한 행사다. ‘호랑이의 도약(Tigersprung)’이라는 표현은 문예이론가 발터 베냐민이 했던 말로 과거를 소환해냄으로써 현재를 다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보안여관 제공‘보안여관 잔술집’에서는 김윤진, 강소청, 최이재, 양유완, 전유민, 유남권 공예가의 작품이 맥주 샘플러 잔으로 쓰였다.
5월18일 진행된 <공예 살롱>의 프로그램 ‘고려 다관 복원에 숨겨진 이야기’에서는 박물관에 전시된 고려 시대 다관을 재현한 과정을 설명했다. 박동춘 명장은 전통 방식을 연구해 고려 시대 단차를, 이명균 명인은 이를 담아낼 고려 다관을 복원했다. 둘은 협업하며 고려 시대 차 문화를 복원한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박동춘 명장은 “고려 다관을 재현하는 것은 단순히 형태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심성을 담아내는 방식을 살핀 것이다. 따뜻하고 향기롭고 기운찬 차를 마시는 우리의 방식을 재현했다”라고 말했다.

전통 복원은 현대의 빈칸을 채울 수 있어서 의미 있다. 고려 시대와 지금은 차를 내리고 우리는 방식이 달라서 다관도 다를 수밖에 없지만 당시 가장 융성했던 청자 문화와 차 문화를 현대의 차 문화에 얼마든지 대입할 수 있다. 이명균 명인은 “과학적으로 유약이 맑고 투명하면서 균열이 가지 않는 것은 모순이다. 청자는 보통 미세한 금이 많이 가는데 고려 시대 방식을 연구해 그런 균열을 잡았다”라고 말했다. 고려 다관 복원의 결과물로 남은 청자 찻잔은 요즘 사용하기에도 좋았다.

공예주간 동안 보안여관에서 잔술집을 연 오세린 작가는 매우 유쾌한 방식으로 공예의 쓸모를 재해석했다. 오 작가의 잔술집에서는 공예가들이 정성 들여 만든 잔을 크래프트 비어의 샘플러 잔으로 활용한다. 공예가 생활용품에서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금속공예를 전공한 오세린 작가는 고급과 저급 그리고 예술품과 상품의 경계를 파괴하는 작업을 주로 한다. 오 작가는 “무언가를 위한 사물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그 ‘무언가’가 함께해야 효과적이라고 생각해 잔술집을 기획했다.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면서 잔에 대해 더 풍부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공예의 쓸모가 재해석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은 바로 수집가들이다. 공예가 빚어낼 삶의 변화는 수집가들의 삶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전통 공예품이 현대사회에 어떻게 재해석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전시가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렸다. 공예품 애호가 26인의 소장품을 전시한 <공예×컬렉션:아름답거나+쓸모 있거나>전은 공예품을 일상생활에서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방송인 마크 테토 씨의 우리 공예품 수집 과정은 흥미로웠다. 한옥의 매력에 빠진 그는 한옥에서 살기로 결심했다. 한옥에 맞는 가구를 찾던 그는 고가구와 공예품에 눈을 돌리게 된다. 전통 공예에 대해 하나하나 공부해가면서 마련했는데, 가장 자주 사용하는 좌탁은 황민혁 목수와 함께 만들었다. 그가 대략의 모양을 스케치한 것을 황 목수가 고택에서 나온 대들보를 활용해 만들어주었다. 그는 “사람과 물건 사이가 멀어진 시대에 공예는 사람과 물건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준다. 공예품을 볼 때마다 작가의 마음을 짐작하게 되고 그 공예품을 처음 들인 날도 생각나서 따뜻한 에너지를 받는다”라고 말했다.

전통 공예에 담긴 담백한 매력

소문난 수집가였던 <뿌리 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 발행인 한창기씨의 조카 한다래씨는 고가구 위에 장독대에 있어야 할 옹기를 놓았다. 그 검은 옹기들이 하얀 백자와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한씨는 “완벽한 구색을 갖추는 것보다 어울림이 더 중요하고, 자신만의 안목과 취향으로 사용할 때 공예품에 인간미와 이야기가 담긴다”라고 말했다.

공예품은 미감의 결집체이기 때문에 공예품 수집은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중국 국경 도시 단둥까지 가서 북한에서 넘어온 조선 시대 가구를 수집했다는 최시영 전 한국 실내디자인협회장은 “공예품을 구하는 과정은 망설임, 용기, 흐뭇함이라는 마음의 여정이다. 전통 공예에는 담백한 매력이 있다. 조선 시대 제사상을 서재의 탁자로 쓰는데 그 단순 질박함이 설계할 때 많은 영감을 준다”라고 말했다.

공예품 수집가는 대부분 공동 창작자로 발전한다. 공예의 매력은 소통이다. 다른 예술품은 오직 예술가 자신의 정신을 표현할 뿐이지만 공예는 수집가의 의도를 구현해준다. 공예가 스스로도 이를 즐긴다. 새롭게 의미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마크 테토 씨처럼 수집가가 자신의 의도를 말하면 마치 건축가가 의뢰인의 기호에 맞춰 집을 설계해주듯 공예가도 수집가의 의도에 맞게 공예품을 만들어준다. 임인영 한국도자재단 대리는 “요즘 도자 갤러리들은 수집가와 장인을 연결해서 수집가의 의도에 맞게 장인이 작업할 수 있도록 코디네이팅하는 일이 주 업무다. 소통이 가장 큰 키워드다”라고 말했다.

다시 <킹덤>의 갓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박창영 명인은 생계가 어려워 돈이 안 되는 갓일장 일을 그만두려 했고, 아들 박형박씨도 갓 만드는 일이 너무 힘들어 도망가려 했다. 그런 그들에게 어렵게 기회가 왔다. 이제 우리가 전통 공예의 진정한 매력을 깊이 들여다봐야 할 때다. 임미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공예사업본부장은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는 전통 공예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공예주간 행사도 지난해에는 수도권 중심으로 진행했는데 올해는 참가 단체가 늘면서 전국 규모로 확장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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