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출신 추리소설 작가, 판결을 평하다
  • 임지영 기자
  • 호수 611
  • 승인 2019.06.05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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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판사로 지냈고, 추리소설을 펴낸 지 10년째인 도진기 작가(사진). 그가 ‘판결의 논리에 대해 할 말이 있는 사건만 골라’ 쓴 판결문 비평서 <판결의 재구성>을 펴냈다.
창밖은 공사 중이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바로 앞이라 집회 시위가 매일같이 열리는 장소다. 서울 서초동 대로변에 자리한 도진기 작가의 사무실엔 판사복을 입은 그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2017년 2월 찍은 퇴임식 사진 옆, 조영남의 ‘화투 그림’이 눈길을 끌었다. 20년간 판사로 지내다 변호사가 된 지 2년이 지났다. 추리소설을 쓴 지는 10년째다. 마침 그의 생일날이었다. 셜록 홈스를 만든 영국의 추리작가 아서 코난 도일의 생일과 같은 5월22일이다. 의사였다가 전업 작가가 된 코난 도일의 이력이 도진기 작가의 행보와 겹쳐 보였다.

게을러서 판사복을 벗는 게 늦어졌다. 결심은 더 일렀다. 좋은 자리를 왜 그만두느냐는 반응이 대부분이라 헷갈리기도 했다. 정말 그런가? 자문했지만 그로선 아니었다. 법률가 자질과 소설가 자질은 대척점에 있었다. 하나는 판에 박힌 일이었고, 하나는 없던 걸 창조하는 과정이었다. 두 가지 극단적인 기질 모두 그의 안에 있었다. 판사로서 전반부를 살아봤으니 다른 쪽 기질을 좇아 나머지 인생을 살고 싶었다.

ⓒ시사IN 조남진
도진기 작가는 공직에 있을 때보다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때는 일이 많아도 규칙적인 일과라 주말에 시간을 내어 글을 썼는데 요즘은 짬이 거의 없다. 일주일에 한 번, 로스쿨 출신 8명의 로펌 입사 과정을 다룬 예능 프로그램 <굿피플> 녹화에도 참여한다. 조직에서 튀고 싶지 않다는 욕망과 작가로서 알려지고 싶다는 내적 충돌이 사라진 건 좋은 점이다. 법원은 옳고 그름을 떠나 튀는 행동을 싫어했다. 2007년 재직 시절 간통죄 위헌 제청을 했을 때도 그런 시선을 느꼈다. 소설을 쓴 게 결정적이었다. 투사형 기질을 가진 건 아니라 대놓고 엇나가지는 않았다. 눈에 덜 뜨이려고 했다. 책을 내도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았고 판사들 사이에서 책 이야기가 나와도 피했다. 2010년 소설가로 데뷔한 뒤 퇴임하기까지 매년 한 권씩 장편소설을 냈다. 지금은 자유롭다. 사석에서 남의 험담을 들어줄 때조차 무의식적으로 중립을 지켰던 ‘중립 집착’에서도 벗어났다.

최근에는 그간 써두었던 판결문 비평을 책으로 묶었다. <판결의 재구성>. 판사였다면 내기 어려웠을 논픽션이다. 그동안 법원을 비판할 때 주로 유전무죄나 정치적 관점이 동원됐다. 판사들은 그런 비판에 동요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시각 때문에 오히려 중요한 비판에서 비켜나 있었다고 도 작가는 생각했다. 판결의 내부, 즉 판결문 자체의 논리다. 사회 시스템상 사법부는 최종 판단자다. 판사들이 ‘무풍지대인 판결의 안쪽에 안주하며 내적 연마를 게을리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판결 비판은 판사들 사이에선 금기 중의 금기다. 2014년, 김동진 당시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부장판사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1심 무죄판결을 두고 지록위마(指鹿爲馬)라며 비판하는 글을 내부 게시판에 올렸다가 징계를 받은 사실도 있었다. 판결 비판은 암묵적·명시적으로 금기인 셈이다. 그래서 이번 책은 판결의 결론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판결이 펼친 논리에 이의를 제기하는 작업이었다고 그는 강조했다. 예전엔 다르게 생각했다. 기록도 안 본 사람들이 무턱대고 유전무죄라 손가락질한다고 ‘자체 방어’를 했다. 어느 날 판결문을 읽는데 불완전하고 거친 논리가 눈에 들어왔다. 결론을 떠나 판결문 안에서조차 논리가 충돌하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만큼 판결문이 완전무결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1995년 듀스 김성재 살인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당시 그의 여자친구 김 아무개씨가 졸레틸이라는 약물을 구입했는데 치사량에 못 미치는 한 병만 샀다는 사실 때문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판사는 법을 다루는 베테랑이지만 그 때문에 ‘논리 협곡’의 맹점에 빠지기도 한다. 개별 증거에 집착하다가 전체적인 그림을 보는 시야가 좁아지는 것이다. 대중과 법원 사이의 괴리를 보여준 사건으로 기억한다.

ⓒ연합뉴스도진기 작가는 조영남(가운데)의 ‘그림 대작’ 사건에 대한 1심 유죄판결을 비판했다.
판사가 ‘대충 유죄식’ 판결을 내리는 경우


판사였을 때는 판결문에 자유롭게 접근했지만 변호사가 된 뒤에는 쉽지 않았다. 책을 쓸 때 그게 일의 절반이었다. 사건 번호를 알면 요청할 수 있지만 공개 여부는 법원의 재량이다. 수백 장에 이르는 1심, 2심, 3심 판결문을 구해 읽었다. 쉽게, 재밌게 읽혀야 한다는 점을 의식해 핵심을 추렸다. 사건 자체가 엽기적이거나 대중의 관심을 많이 받은 판결은 제외했다. 판결의 논리에 대해 할 말이 있는 사건만 골랐다. 아내 보험 살인 의혹 사건, 공릉동 살인 사건, KTX 여승무원 사건, 훈민정음 해례본 사건 등 30건의 판결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무죄추정의 원칙, 정당방위, 상급심의 의미,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의 충돌 등 법의 한계와 특성을 설명한다. 변호사라고 해서 판결 비평이 더 수월할 리 없다. 법정에 섰을 때 책에서 다룬 사건의 재판장을 마주할 수도 있는 일이다. 감수하기로 했다.

이번 책에서 다룬 2010년 낙지 살인 사건은 전작 소설 <합리적 의심>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다. 여자가 갑자기 질식사했고 함께 있던 남자친구는 낙지를 먹다 목에 걸렸다고 주장했다. 그가 여자친구의 사망 직전에 수익자를 자기 이름으로 한 보험에 든 사실이 알려졌고 구속되어 법정에 섰다. 1심은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2심 무죄, 대법원(3심)에서도 무죄가 확정했다. 당시 작가는 당혹감을 느꼈다. 판결문의 논리 자체는 맞지만 결론이 이렇게 갈 수밖에 없나 의문이 있었다. 털끝만큼의 의문도 없어야 하는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의 원칙 때문이었다. 재판장에 따라 어떤 사건은 그 기준이 너무 높고 어떤 건은 너무 느슨했다. 대법원 판결도 마찬가지였다. 1992년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 사건이나 2016년 조영남의 화투 그림 사건 1심 등 예술을 법의 잣대로 해석한 판결에 대해서는 결론까지 선명하게 비판한다. 글을 본 조영남씨가 그에게 작품을 보내왔다. 화투 그림이 사무실에 걸린 사연이다.

기소된 사건은 대부분 유죄판결을 받는다. 판사들도 중대한 사건일수록 법의 원칙에 충실하고 그게 아닌 경우 ‘대충 유죄식’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도진기 작가는 말한다. 그는 형사소송법 절차에 따라 엄격하게 유무죄를 가리되, 유죄일 겨우 엄벌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형사소송법은 악인을 처벌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기 위한 법이지만, 형벌의 본질은 보복이고 불합리를 바로잡는 데 있기 때문이다. 가끔 검사의 시선으로 재판에 임하는 판사들을 목격할 때 씁쓸해진다. 개인의 문제라고만 볼 수는 없다. 한국은 판사 1인당 연간 600건에 이르는 사건을 담당한다. 독일의 3배, 일본의 약 2배다. 해결이 아니라 처리에 가까워진다. 티는 안 나지만 해악이 크다. 판결의 밀도가 낮아지면서 논리가 불충분한 결론이 나올 때도 있다.

판사는 자기가 지킬 수 없는 기준을 남에게 강요하는 직업이다. 그 괴리를 의식할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도진기 작가는 법정에 선 이들보다 자신이 도덕적으로 낫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 때문에 훈계를 삼갔다. 법정에서 피고인들이 억울하다고 항변할 때 그 목소리를 제대로 들었는지, 사법 농단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고위직 법관들에게 묻고 싶었다. 법의 잣대를 들이대니 법관도 별수 없었다. 스스로는 억울하다고 하지만 똑같은 수준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국내 추리문학계의 독보적인 존재


작가의 재임 시절 판결문이 궁금해졌다. “판결문은 국민이 보라고 쓴 게 아니다. 당사자가 보라고 쓴 것도 아니고 항소심 또는 상고심에서 보라고 쓴 거다. 그렇지만 사건 당사자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걸 염두에 두고 썼다. 법률 용어를 덜 쓰고 일상용어를 쓰는 식이었다.”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 법원 직원 중에는 그의 판결문을 좋아하는 팬도 있었다. 법관 초임 시절엔 정의 구현에 관심이 있었다. 형사 단독판사가 되었을 때 형을 세게 선고한다고 소문이 나기도 했다. 교도소 담벼락에 그에 대한 욕설이 쓰여 있기도 했다. 아동학대나 성폭력 사건의 형량이 지금보다 약할 때였다. 법원도 대중의 감수성을 뒤늦게 따라가는 중이다.

1994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25년이 지났다. 어릴 때 무협지, 만화, 추리소설을 많이 읽었다. 공상하고 상상하기를 즐기는 기질이었다. 수학을 좋아했는데 엉뚱하게 법대에 진학했다. 법학은 재미가 없었다. 군대에 다녀온 뒤에는 먹고살려면 이 길뿐이라는 생각에 공부를 시작했다. 창작을 시도한 적도 없었다. 판사 생활을 한 지 10년이 넘어가며 추리소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당시 추리문학은 대개 일본 작품이었다. 함량 미달의 책도 시중에 나와 있었고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 2010년 단편소설 <선택>으로 한국추리작가협회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했다. 마흔세 살이었다. “젊은 줄 알았다. 머릿속은 20대 같았고 40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생각을 조금도 안 했다. 판사나 조직의 시선, 나이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하는 데 집중했다. 사회화가 잘된 사람이면 안 썼을 거다.” 쓰겠다는 마음이 모든 걸 압도했다. 판사 생활을 하는 동안 억눌렸던 한쪽의 기질이 틈새를 찾아 꿈틀댔는지도 모른다. 소설가를 제2의 자아로 생각했는데 쓰다 보니 서로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 책을 많이 읽게 되면서 사건을 다각도에서 보는 시선이 훈련되었고 작가로 비판받아본 경험도 판사 업무에 영향을 미쳤다. 작품 안에서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냉소적인 편이다. 분쟁이나 범죄를 주로 다루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부엌에 노트북을 두고 가족들이 자는 새벽에 글을 썼다. 데뷔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딸아이는 아빠가 밤새 채팅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 딸이 지금은 고등학생이다. 아빠 덕분에 <캔디> <바벨2세> <은하철도999> <데스노트> 같은 ‘옛날 만화’를 읽었다. 국내 추리문학계에서 그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한국추리문학대상을 받은 <유다의 별>과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는 약 1만 부가 팔렸다. 작가로서 자기 세계를 고집하기보다 철저히 독자의 시각에서 썼다. 혹시 개연성이 떨어지는 건 아닌지, 현장을 직접 둘러보는 건 기본이었다.

그의 작품은 사회파 소설보다 본격 미스터리에 가깝다. 살인 사건에 얽힌 트릭을 제시하는 등 기발한 상상력이 바탕에 있다. 구상하는 재미가 크다. 아직도 쓸 거리가 무궁무진하다. 그의 소설 속 대표적인 인물로 고진 변호사와 탐정 진구가 있다. 영국의 셜록 홈스, 일본의 김전일처럼 한국에도 대표적인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고진과 진구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외연을 확장하는 요즘의 행보가 아쉬울 법도 하다. 희소식이라면 다음 작품은 진구 시리즈라는 것. 방송과 글, 변론 세 가지 모두 재미있게 한다.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큰돈을 벌기 위해 판사직을 그만둔 게 아니다. 변호사이자 작가 ‘도진기’로서 정체성을 다지고 싶었다. 판사직을 내려놓은 뒤 좀 더 현실을 반영하는 글을 쓰게 된 게 변화라면 변화다. 새로 시작한 인생 후반부, 만족스러운 출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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