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왕을 바라보는 일본의 두 시선
  • 도쿄∙이령경 편집위원
  • 호수 611
  • 승인 2019.06.0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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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일왕이 즉위하자 왕실에 대한 친근감이 높아지고 헌법 개정을 노리는 아베 정권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 그러나 일왕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터져나온다.
‘새로운 시대 레이와,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라는 인사를 지인들로부터 받았다. 레이와 시대가 열리면 마치 새 세상이 열릴 것처럼 일본 열도가 들떴다. 4월1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새 연호 ‘레이와(令和)’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 이례적으로 아베 신조 총리가 직접 나서 ‘레이와’의 뜻을 풀어 설명까지 했다. 새 연호가 적용되는 5월1일 전날인 4월30일에는 마치 송구영신 행사처럼 자정을 앞두고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30년 전에도 연호가 바뀌었다. 1989년 1월7일 쇼와 일왕(일본에서는 천황)이 사망하고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즉위하면서 새 연호 ‘헤이세이’가 발표되었다. 당시 일본 텔레비전에서는 전쟁 책임을 지지 않고 사망한 쇼와 일왕에 대한 비판 의견이 개진되었고, ‘일왕제(천황제)’와 민주주의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도 있었다. 2016년 8월 아키히토 일왕이 고령을 이유로 퇴위 의사를 밝힌 이후 처음으로 이뤄지는 생전 양위는 여러 면에서 주목되었다. 그러나 30년 전과 달리 2019년에는 일왕제와 헌법, 민주주의를 논하는 텔레비전 방송을 찾을 수 없었다. 온통 ‘경축 모드’ 일색이었다. 이제 일왕제와 헌법, 민주주의에 대해 논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일본 체제의 부조리가 해소되어서였을까.

ⓒEPA나루히토 일왕이 즉위한 5월1일 도쿄에서 열린 일왕제 반대 시위 모습.
4월1일부터 텔레비전에서는 연일 ‘열린 왕실’을 키워드로 한 회고 방송을 내보냈다. 1959년 아키히토 왕세자의 결혼 축하 마차 퍼레이드와 부엌에서 직접 아이들의 도시락을 만드는 서민적 현모양처 미치코 왕세자빈의 모습에서 시작해, 1989년 왕위 계승 후 재해 지역을 방문해 무릎을 꿇고 앉아 이재민들과 일일이 눈을 맞춰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일왕 부부의 모습이 거의 모든 채널에서 무한 반복되었다.

생전 양위가 골든위크(4월27일~5월6일 황금연휴) 중에 잡혀 ‘경축 모드’는 한층 더 고조되었다. 일왕 일가와 인연이 깊은 관광지에 사람들이 몰렸다. 기업과 백화점들은 이 기회를 놓칠세라 ‘쇼와, 헤이세이 추억팔이’와 ‘헤이세이 마지막 세일’에 열을 올렸다. ‘레이와’라는 글자가 찍힌 과자, 청량음료, 사탕, 술 같은 식료품부터 티셔츠 같은 의류가 불티나게 팔렸다.

4월 한 달 동안 ‘레이와’ 관련 상품의 인터넷 판매 수가 39만7000점에 달했고, 국내 여행은 전년 대비 3323억 엔 증가했으며 백화점 등의 수익도 급증해서 대형 연휴의 경제효과는 2조1396억 엔에 달했다(〈일간 겐다이〉 5월2일자). 5월1일 자정에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를 하는 커플도 많았다고 한다.

양위라는 ‘빅 이벤트’에서 누구보다 제대로 한몫 챙긴 이들은 정부 여당이다. 경제효과로 지지율이 상승했다. 4월7일과 4월21일에 치러진 통일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뒀다. 예정대로라면 10월 즉위를 국내외에 선언하는 의식 후 개최할 예정이었던 일반인의 ‘황궁’ 참배가 아베 총리에 의해 앞당겨졌다. 5월4일 14만명이 넘는 인파가 새 일왕 나루히토(德仁) 부부를 ‘알현’하겠다고 몰려들었다.

일왕의 신성함과 권위 더 강화돼


지난해 10월 제4차 아베 내각 발족 직후 42%였던 내각 지지율이 4월 47%, 5월 48%로 상승세를 타고 있고, 아베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한 응답자는 40%에서 32%로 줄었다(5월10~13일 NHK 전화여론조사).
ⓒEPA5월4일 나루히토 일왕 가족이 왕궁에서 열린 국민 초대 행사에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정권 지지율 상승만이 아니다. NHK 여론조사에서 ‘지금 왕실에 친근감을 느낀다’는 응답자가 82%나 되었다. 이 또한 아베 정권이 바라는 바다. 이미 많은 일본 국민은 국기와 국가에 익숙해졌다. 내각 결의에 따라 5월1일부터 황금연휴 기간 중 텅 빈 학교에 일장기가 게양되었다. 2012년 자민당이 공개한 ‘일본국 헌법 개정 초안’은 현행 헌법 제1조의 ‘일본국의 상징이자 국민 통합의 상징’에 지나지 않는 일왕에게 ‘국가원수’의 지위를 부여해 실질적이고 실무적인 행위가 가능케 하려 한다. 더불어 제3조에서는 ‘일본의 국기는 일장기, 국가는 기미가요다. 일본 국민은 국기와 국가를 존중해야 한다’며 애국심을 강조한다. 더 큰 문제는 ‘제3장 국민의 권리 및 의무’에서 ‘공익’과 ‘공공의 질서’를 강조한 부분이다. 행간을 읽어보면, 국익(공익)을 위해 공권력에 의한 질서(공공의 질서)에 충실히 따르는 것이 자민당이 정한 국민의 의무다. 자민당과 그 지지자들이 자신의 이상과 이익을 위해 내세운 새로운 일본은 신성하고 권위 있는 일왕을 중심으로 한 절대주의적 국가인 셈이다.

이번 즉위 관련 행사를 통해 일왕의 권위는 더 높아지고 신성해졌다. 이 분위기를 이어가 아베 정권은 7월 참의원 선거에서 3분의 2 이상의 의원 수를 확보해 개헌 발의를 하고 싶어 한다.

물론 개헌이 쉽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개헌 발의가 된다 해도 여전히 개헌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많다(5월3일 〈아사히 신문〉 조사). 정권의 우경화가 두드러질수록 국내외 전쟁 유적지를 찾아다니면서 전몰자를 위령했던 아키히토 전 일왕은 국민들 속에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일왕도 아버지에 이어 아베 정권 견제자로서의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하지만 ‘평화의 상징’이 된 일왕은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가 된다. 일왕은 과거 일본제국이 저지른 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 추궁은 물론 일왕제에 대한 근본 물음을 어렵게 만드는 장치가 되고 있다. 퇴위한 아키히토 일왕 부부는 11회나 오키나와를 방문했지만, 한 번도 쇼와 일왕의 전쟁 책임이나 1947년 9월 ‘오키나와에 미국의 점령이 지속되기를 원한다’고 연합국군총사령부(GHQ)에 전한 일왕 메시지에 관해 언급한 적이 없다. 대신 ‘쇼와 일왕은 평화를 사랑했다’는 메시지만 되풀이했다.

일왕에 대한 감사가 넘쳐나는 이 시기 ‘천황은 없는 게 낫다’라는 제목을 단 기사가 나왔다. 5월1일 〈오키나와 타임스〉는 1944년 사이판 전장에서 부모를 버리고 도망쳐야 했던 남성이 ‘전쟁이 끝난 날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천황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한다’는 인터뷰를 실었다. 오키나와 시각에서 일왕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하는 연재 기사도 실었다. 또한 4월30일 ‘여성들을 위한 전쟁과 평화 자료관 WAM’은 일왕제 폐지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4월27일부터 5월1일까지 각지에서 일왕제 반대 행사가 열렸다. 4월28일 도쿄에서 열린 ‘오키나와 데이’ 행사에서는 아키히토 일왕의 오키나와 위령 방문이 일왕과 오키나와, 일왕과 군대, 일왕과 기지 문제를 분리시켜 사고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4월30일 저녁 도쿄 신주쿠역 근처 광장에 모인 시민 150여 명은 일왕의 존재는 ‘법 아래 평등’에 반하는 것이라며 일왕제 폐지를 주장했다. 5월1일 도쿄 긴자 주변에서 열린 일왕제 반대 집회 참가자들은 연호를 강요하지 말라며, 아들이 왕위를 계승해도 일왕의 전쟁 책임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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