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 내역이 없다. 디지털포렌식 자료도 사라졌다. 수첩 복사본도 누락되었다. 여러 사건에서 발생한 부실 수사 사례를 열거한 게 아니다. 한 사건 수사에서 모두 발생했다. 바로 ‘장자연 리스트 사건’ 수사다.

5월20일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발표한 ‘장자연 리스트 사건 조사 및 심의 결과’를 읽어보았다. 한 영화 제목이 떠올랐다. ‘이상한 놈(경찰)’과 ‘나쁜 놈(검찰)’의 경쟁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경찰은 2009년 3월14일 장자연씨 주거지와 차량 등을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에 걸린 시간은 57분. ‘〈조선일보〉 방 사장’이 적힌 다이어리는 압수조차 하지 않았다는 장씨 지인의 증언이 이번에 나왔다. 장자연씨가 들고 다닌 가방은 열어보지도 않았다. 수사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검사는 압수한 압수물(수첩 등)을 유족에게 돌려주라고 경찰에 지휘하면서 사본을 만들어 기록에 첨부하라고 하지 않았다. 장자연씨와 장씨의 소속사 대표였던 김종승씨의 1년치 통화 내역을 경찰이 조회했는데, 수사 기록에 통화 내역 원본이 빠져 있다. 장씨의 컴퓨터 디지털포렌식 결과물인 CD도 남아 있지 않다. 장씨의 오빠는 장자연 문건 원본을 소각하며 “당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녹음을 했다. 이 녹음 파일을 경찰에 넘겼는데, 수사 기록에는 녹음 파일도 녹취록도 남아 있지 않다. 장자연씨가 검찰과 경찰의 먼 친척이라도 이런 우연이 한꺼번에 발생했을까? 장자연씨 문건에 〈조선일보〉 ‘사주’가 언급되지 않았어도 이런 우연이 한 번에 일어났을까?

조현오 전 경찰청장 등 경찰은 〈조선일보〉로부터 외압을 받았다고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그럼 검찰은 외압의 무풍지대였을까? 검사는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의 이틀치 통화 내역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조선일보〉는 2014년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 보도로 낙마시킬 만큼 막강하다. 이 ‘특종 보도’의 장본인이 이번에도 거론되었다. 〈스포츠조선〉 하 아무개 전 사장은 “〈조선일보〉 법조팀장이 ‘방정오가 장자연에게 맨날 전화해가지고 그 통화 기록 빼낸다고 고생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라고 이번에 진술했다. 〈조선일보〉는 5월21일자 1면, 10면, 11면에 걸쳐 ‘〈조선일보〉 수사 외압 과거사위 발표는 명백한 허위’라며 200자 원고지 42장 분량의 장문의 기사를 실었다.

당시 수사 경찰이나 검사는 통화 내역, 디지털포렌식 자료 등이 모두 사라진 데 대해 이제 와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최근 경찰과 검찰은 수사권 조정을 두고 다투고 있다. 경찰과 검찰 수장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입에 담는다. 과연 장자연 리스트 사건 수사에 이 발언이 적용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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