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즐긴 이들이 선생님이 된다면
  • 양정민 (자유기고가)
  • 호수 610
  • 승인 2019.05.30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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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서울교대 국어교육과 ‘남자 대면식’ 행사에서 성희롱이 벌어졌다는 폭로가 있었다. 남학생만 모여 진행된 이 행사는, 재학생이 새내기 여학생들의 동의 없이 사진과 신상 정보를 모아 졸업생에게 건네고 외모 등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악습은 수년간 이어졌다. 사회 전반에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문화가 만연해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폭로 직후 서울교대 김경성 총장은 “조사 결과에 따라 엄중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라고 약속했다. 두 달여가 지난 5월10일, 가해 학생에 대한 징계 결과가 발표됐다. 국어교육과 16학번 남학생 6명은 정학 3주, 17학번 남학생 5명은 정학 2주 처분을 받았다. 이들은 올해 교생실습을 할 수 없어 졸업이 1년 늦춰질 뿐, 초등교사가 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성희롱 가해자와 피해자를 같은 학교 교생으로 보내

ⓒ정켈

솜방망이 처벌 아니냐는 비판이 일자 서울교대 측은 5월13일 총장 담화문을 통해 졸업 요건에 성폭력 예방 교육 이수를 포함하고, ‘학생인권센터’를 개설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피해 여학생들이 요구한 재발방지책 마련에 학교가 응답했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이지만, 과연 이 정도 조치로 학내 성폭력이 근절될 수 있을지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우선 담화문에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서울교대라는 우리의 공동체가 지녔던 과거의 잘못된 관습과 그 문제점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표현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KBS 보도에 따르면 징계 조치가 내려지기 전, 서울교대 측은 가해 남학생 4명과 피해 여학생 1명이 같은 초등학교에 교생실습을 가도록 배치하는 등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에 안일한 태도를 보였다. 이런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은 자칫 가해자의 책임을 희석하는 면죄부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새롭게 개설될 학생인권센터 운영 방식도 과제다. 그동안 담당 기관이 없어서 이런 문제가 벌어진 것은 아니다. 서울교대에는 이미 심리 검사와 상담 등을 진행하는 ‘대학생활문화원’이 있다. 이 기구에서 성희롱·성폭력 상담과 대책위원회 조직 등을 함께 맡고 있음에도 성희롱이 벌어졌고, 이후 조사 과정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라는 기본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았다.

새로 설치하는 기구는 자칫 옥상옥으로 전락할 우려마저 있다. 독립성과 전문성을 두루 갖춘 성 관련 사안 전담기구가 필요한 이유다. 김성애 전교조 전 여성위원장은 한국여성단체연합 주최 토론회(2018년 11월)에서 “남성 중심적인 성 가치관, 성별 이분법에 기반한 성 관념 등을 문제로 인식하고 피해자 중심주의 등의 전문성이 있어야 성희롱·성폭력을 올바르게 해결할 수 있다. 성희롱·성폭력 사안은 인권센터 외부에 별도의 전담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서울교대 사건과 비슷한 시기 대구교대와 청주교대에서도 ‘빼빼로 게임’을 강요하거나 여학생 외모에 등수를 매겼다는 학내 폭로가 나왔다. 경인교대 체육교육과 15학번 남학생들은 단체 채팅방에서 여학생을 성희롱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광주교대에서는 한 남학생이 화장실에서 동기 여학생을 불법 촬영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만약 이 사건의 가해자들이 그대로 졸업해 교단에 선다면 이들에게 초등학생의 생활지도를 맡길 수 있을까? 이들과 함께 일해야 하는 동료 교사에게 학교는 안전한 일터가 될 수 있을까? 예비교원 양성기관인 교대와 책임 부처인 교육부는 이런 물음에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답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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