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란 뭘까. 도대체 뭐길래 그토록 많은 이들이 평생 두 눈이 먼 것처럼 좇아대는 걸까. 세상의 모든 불확실이 철없는 무모함으로 수렴하는 작금에도 신기루 같은 그 이름, 꿈만은 끝내 살아남았다. 그것이 진실한 희망의 신호인지 흔하디흔한 희망고문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우리 각자의 몸 어딘가에 아직 이루지 못한 ‘내 어릴 적 꿈’이 살아 숨 쉰다는 것뿐이다.

뜬금없이 꿈에 대한 장광설을 늘어놓은 건 그룹 오마이걸의 승희를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2015년 WM엔터테인먼트의 새 걸그룹 멤버로 데뷔하기까지 승희가 보낸 9년의 시간은 꿈이 이끄는 삶 그 자체였다. 강원도에 자리한 작은 초등학교에서 노래와 춤으로 반 친구들을 즐겁게 해주는 걸 좋아하던 소녀는 2006년 KBS 〈전국 노래자랑〉과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연이어 출연한다. 트로트 가수 박상철의 ‘자옥아’를 구수하게 소화하고 춤과 노래에 모두 능숙한 이 ‘11세 보아’에게 적지 않은 이들이 관심을 보였다. 작게나마 인터넷 팬 카페도 생기고, 길에서 알아보는 이도 늘어났다.

ⓒ시사IN 양한모

2010년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엠넷(Mnet)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2〉 출연이었다. 그사이 훌쩍 자라 어느새 중학교 3학년이 된 승희는 어린 나이에 유명해지면서 악플에 시달렸던 힘든 과거를 눈물로 고백하기도 했다. 물론 흔한 사연 팔이가 그의 주요 출연 목적일 리 없었다. 승희는 비욘세의 ‘스위트 드림(Sweet Dreams)’에 맞춰 나이답지 않은 성숙한 춤을 선보이는가 하면, 애국가를 불러보라는 심사위원의 즉흥 요구에 능숙한 가창과 함께 “같이 불러요!”라고 호응까지 유도하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며 끼를 인정받았다. 승희의 최종 순위는 12위. 최연소 참가자로서 충분히 훌륭한 성적이었지만 부모에게 탈락을 이야기하는 얼굴에 담긴 건 그저 아쉬움뿐이었다.

타고난 실력에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얼굴과 이름도 알렸으니 승승장구하겠구나 싶었지만 그 예상은 슬프게도 틀렸다. 승희가 품었던 꿈의 무게는 2015년, 데뷔 3개월을 앞둔 그룹에 극적으로 합류하고 나서야 비로소 가벼워질 수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오디션을 거친 그였지만 ‘이미 멤버가 채워졌다’ ‘우리 그룹과 색깔이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상처로 남았다. 그렇게 수없이 앉은 딱지에도 승희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건 아마도 오랫동안 간직해온 단 하나의 꿈 때문이었을 것이다. 노래와 춤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는 바로 그 꿈.

어렵게 그룹으로 데뷔했지만 활동이 쉽지만은 않았다. 보이그룹 B1A4의 성공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던 소속사 덕에 적지 않은 주목을 받으며 데뷔했지만, 오마이걸에게는 늘 ‘음악은 좋지만 대중을 사로잡기엔 어딘지 어렵고 아쉽다’는 평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2018년 발표한 다섯 번째 미니앨범 〈비밀정원〉으로 데뷔 1009일 만에 1위를 차지하기까지 승희의 마음에 얼마나 많은 꿈의 그림자들이 스쳐 지나갔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2019년 5월, 데뷔 4년 만에 발표한 첫 정규 앨범 〈다섯 번째 계절〉에서 오마이걸은 자신들의 다섯 번째 계절을 ‘사랑이란 꿈’이라고 노래한다. 적어도 승희에게 그 꿈은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만 열넷의 나이,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제 목소리가 담긴 음반을 듣고 싶었어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그 꼬마라면 분명히 말이다.

기자명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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