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보수 따로 없는 가짜 사진의 덫
  • 이상엽 (사진가)
  • 호수 610
  • 승인 2019.05.30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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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 있는 곳에 ‘가짜 사진’이 있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터뷰를 진행한 KBS 송현정 기자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 부실한 인터뷰 자체야 얼마든지 비판받을 수 있다. 그런데 기자에 대한 온갖 신상 정보가 알려질 때부터 심상치 않더니, 그가 ‘박근혜 추종자’라며 그 증거로 박근혜 대통령 시절 청와대 취재 사진까지 동원됐다. 사진 속 인물은 송 기자가 아니었다. 다른 취재기자가 송 기자라고 지목되어 SNS에 퍼졌다. KBS는 가짜 뉴스에 대한 법적 조치까지 예고했다.

사실 요즘 인터넷에 떠도는 확신에 찬 주장 또는 그럴듯한 가짜 뉴스는 글뿐 아니라 사진을 첨부한다. 사진이 동원되는 것은 분명한 증거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거짓 주장이 담긴 글은 검색해보면 금세 팩트(사실)를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사진은 아직 그런 검색 기능이 없어서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문제는 확인되지 않는 사진을 학계나 언론계에서도 확산시킨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하시마섬 (군함도)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광부라고 알려진 사진이다. 이 사진은 일본 사진가 사이토 씨가 1961년 지쿠호 탄전 (후쿠오카현)에서 일본인 광부를 찍어 사진 주간지 <신 주간>(1961년 10월19일)에 게재한 것이다.

지금도 유통되는 군함도 조선인 광부 사진

1958년 프랑스 사진가 로베르 두아노가 찍은 카페 사진은
황색언론에 의해 ‘샹젤리제의 매춘’이라고 보도됐다.

그런데 국내 일부 시민단체뿐 아니라 부산의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까지 이 사진을 확인 없이 강제동원 조선인으로 확증해 유포했다. 2017년 7월에는 미국 타임스퀘어에 군함도에 강제징용된 조선인을 알리는 광고가 상영되었는데, 이 광고에도 문제의 사진이 사용되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서경덕 교수는 “철저하게 검증하지 못한 실수”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이지 이 사진은 여전히 보수 언론뿐 아니라 진보 언론도 강제징용 조선인 사진으로 유통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가짜 사진이라면 1958년 프랑스 사진가 로베르 두아노가 찍어 잡지 <르푸앵>에 실은 카페 사진일 것이다. 이 사진에는 매력적인 여성이 와인 잔을 돌리며 앉아 있고 그 옆에 중년 남성이 미소를 짓고 있다. 이 사진은 파리의 술집 특집으로 발표됐다. 그런데 ‘반알코올주의연맹’에서 발행하는 신문에 ‘술주정뱅이의 실태’라는 이름으로 실렸고 저급 스캔들지인 황색언론이 ‘샹젤리제의 매춘’이라는 설명을 달아 보도했다. 진짜 사진과는 맥락이 전혀 다른 가짜 사진으로 둔갑한 것이다. 사진 속 인물들은 이런 가짜 사진을 게재한 언론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법원은 해당 언론사를 단죄했다.

과거처럼 사진 설명을 엉뚱하게 바꾼 ‘악마의 편집’을 통해서만 사진이 가짜로 둔갑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은 정교한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해 가짜 사진이 만들어진다. 문제는 픽셀 단위로 조작하면 전문가도 알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많은 나라들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공지능(AI)을 이용한 필터링을 시도한다. 또한 대규모 모니터 집단을 꾸려 가짜 사진을 비교 탐색하고 피사체에 대한 직접 확인을 하려 한다.

늘 그렇듯 잡으려는 사람보다 속이려는 사람이 많다. 사진 한 장으로 세상을 바꾸긴 어렵지만 충분히 농락할 수는 있다. 농락당한 개인은 한번 속은 셈 칠 수 있지만 사회적 손실은 크다. 정치가 왜곡되고 정책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보다 더 큰 손해는 사람들이 스스로 사진을 조작하면서 이제 사진은 믿을 수 없다고 단정 짓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현상은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는지 모른다. 다만 요즘 들어 두드러지게 나타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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