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

입대한 지 2개월밖에 되지 않은 나는 군기가 바짝 든 채로 내무반에 앉아 있었다. 주말이었기에 내무반에는 하루 종일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고, 이등병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각 잡고 앉아서 곁눈질로 텔레비전을 보는 것뿐이었다. 여느 때처럼 평온한 토요일 아침이었다. 텔레비전에서 속보를 전해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었다.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부모님은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마땅치 않게 여겼다. 중학생이던 나는 자연스레 부모님 영향을 받게 되었고 이회창 후보를 응원했다. 우리 가족은 노무현 후보의 낙선을 바랐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기에 임기 내내 부모님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모진 소리만 내뱉었다. 전세를 살고 있던 우리 가족에게 집값이 오르는 것도 ‘노무현 탓’이었으며 비정규직이었던 아버지가 정규직이 되지 못하는 것도 ‘노무현 탓’이었다. 그런 대통령이 갑작스레 세상을 등진 것이다. ‘그냥 한 사람이 갔구나. 참 딱하다’ 정도의 생각만으로 비보 소식을 접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 이후 텔레비전에서는 연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적, 죽음의 이유, 유서의 내용 등을 전했다. 임시로 차려진 분향소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애도를 표했고 그중 몇몇은 울다가 지쳐 실신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곤 했다. 내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가족, 친구가 죽은 것도 아니고 그저 한 국가의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것뿐인데, 무엇이 저들을 그토록 통곡하고 오열하게 만드는 것인지 의아하고 궁금했다. 임기 내내 온갖 비난과 멸시를 당했으며 심지어 탄핵 위기까지 몰렸던 그런 대통령이었다. 이제 와서 그의 죽음에 왜 이토록 슬퍼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또한 사람들에게서 점차 잊혀졌으며 나는 군 생활을 마치고 복학했다. 당시 누구와도 어울리기 힘들었던 복학생 신분으로 마음 편히 드나들 수 있던 곳은 도서관뿐이었다. 어느 날 찾아간 도서관에서 운명처럼 만난 책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였다. 반대편에 서 있던 인물의 자서전을 읽게 된 원동력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건 아마도 분향소에서 오열하던 어느 시민의 눈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가족도 친구도 아닌 누군가를 위해 진심으로 흘리는 눈물, 그 누군가는 도대체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내가 그 책을 펼치게 만들어주었다.

운명처럼 만난 책은 그저 그런 책 한 권이 아니었다. 노무현이라는 한 사람을 내 삶에 스며들게 해 나를 바꾸었다. 가난한 학생 시절부터 잘나가는 변호사, 5·18 광주민주화운동 청문회 당시 패기 넘쳤던 신인 정치인, 선거마다 패배하던 실패한 정치인, 바보 노무현의 재탄생, 그리고 국민의 힘으로 당선된 대통령, 그런 국민들을 위해 펼쳤던 정책, 탄핵 위기, 임기 후 봉하마을에서의 삶, 마지막으로 그의 유서까지 어느 하나 빠짐없이 나를 웃고 울게 했으며, 세차게 요동치다가도 맥없이 쓰러지게 했다. 물론 의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와 반대편에 서 있던 내가 책 한 권으로 흔들릴 수는 없었다. 한 권의 책으로부터 시작된 그에 대한 탐구는 관련된 다른 서적, 영상물 등 모든 매체로 이어졌다. 몇 달간 정말 노무현 대통령을 가족만큼이나 가깝게 여겼다. 그렇게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받아들이고 나서 한참을 울었다. 미안해서 울었고 후회되어서 울었다. 진즉 그를 몰라보고 지켜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후회스러웠으며 아무 잘못 없던 그를 비난하고 헐뜯은 것이 무척이나 죄송스러웠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그에 대한 적대는 믿음으로 변해갔다. 그 뒤 나는 봉하마을을 찾았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고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렇게 내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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