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아무리 멀어 보이는 목표라도 작은 실천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은 말입니다. 많은 사람이 원대한 계획이나 꿈을 가지고 있지만, 첫 한 걸음이 두려워 시작하지 못합니다. 고등학교 생활의 종착역을 바라보고 있는 저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에서 위안을 얻었습니다.

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21세기의 첫해에 태어난 저에게 대통령에 대한 첫 기억은 그를 떠나보내는 장면이었습니다. 2009년 5월23일 토요일 아침, 버스 안 라디오에서 뉴스 속보로 대통령을 처음 접했습니다. ‘바보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는 역사를 지켜봤던 부모 세대와 달리, 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이미 이 세상에 없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형언할 수 없는 비극이었지만 역으로 우리가 성찰하는 계기를 제공했습니다. 2009년, 초등학교 2학년에게 전직 대통령의 서거는 무겁게 다가오지 않았지만, 뉴스에서 목격한 광경은 뇌리에 남았습니다. 2009년, 2012년, 2014년으로 이어진 사건들은 저를 각성시켰습니다. 가족과 함께 노무현재단을 후원하기 시작했고, 봉하마을에도 다녀왔으며, 작년에는 노무현장학생으로 선발되었습니다. 서민을 위해 헌신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보를 접하면서 국제적인 공조를 통하여 사회의 사각지대에 있는 소수자들을 돕는 외교관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제가 대통령을 바라보며 외교를 진로로 잡았을 때, 주위의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았습니다. 허황된 꿈이라는 비난을 수없이 들었고,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할 뻔한 적도 많았습니다. 이때마다 〈여보, 나 좀 도와줘〉 〈성공과 좌절〉 등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저서를 읽으며 나아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렇게 ‘노무현의 길’에서 ‘이희찬의 길’을 찾았습니다.

ⓒ사진공동취재단2009년 5월27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분향소에서 조문객이 조문하고 있다.


누구도 걷지 않았던 길, 피할 수 있었던 험한 길을 굳이 선택한 노무현 대통령의 삶에서 저는 처음으로 ‘도전’을 배웠습니다. 그 도전들은 역설적으로 대통령의 서거 이후에 꽃을 피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편한 길을 선택했다면,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도 안락하게, 그러나 눈과 귀를 닫은 채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실과의 타협보다 불의와 맞서는 길을 골랐고, 역사의 진보를 이뤄냈습니다.

어느덧 10주기, 이제 단순히 분노하거나 슬퍼하지 않으려 합니다. 제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서 살아갈 희망을 봤듯이, 더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에게서 희망을 찾기를 소망합니다. 그와 동시에 이젠 대통령을 놓아드리고 싶습니다. 정치적 싸움에 노무현이란 이름이 너무 많이 사용됐고, 그 과정에서 가치가 퇴색된 면도 적잖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끝에 도달하지 못하리라 믿었던 천리 길도 절반은 넘게 온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좁은 길 옆에는 어느새 형형색색의 꽃이 봄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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