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아이가 일곱 살 때 재활원에 들어갔다. 어느 크리스마스에 돌아온 엄마 덕분에 무척 들떠 있었다, 라고 이제 어른이 된 그 아이가 고백한다. 다시 함께 살 수 있겠구나, 잔뜩 기대에 부풀어 밤잠을 설치다 한밤중에 엄마를 찾았다고 했다. 없었다. 이미 재활원으로 돌아간 뒤였기 때문이다. 아이가 열다섯 살이 되어서야 치료는 끝났다. 엄마 없는 그 8년의 성장기가 그에겐 재앙이자 축복이었다. 아들로는 상실감이 컸지만, 작가로는 영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소설 〈길버트 그레이프〉를 쓰면서 폭식에 중독된 섭식 장애 엄마를 그렸다. 영화 〈어바웃 어 보이〉의 시나리오를 쓸 땐, 우울증과 싸우는 마커스 엄마 피오나의 힘겨운 시간을 애써 감추려 하지 않았다. 직접 연출할 영화의 이야기는, 엄마와 함께였지만 결국 엄마와 함께하지 못한 일곱 살 크리스마스에서 시작해보기로 했다. 엄마와 함께 보낸 그 하룻밤

크리스마스이브. 아들 벤(루커스 헤지스)이 돌아온다. 남편과 딸은 경계를 늦추지 않는데, 엄마 홀리(줄리아 로버츠)만 그를 반긴다. 재활원 생활에서 모범을 보여 특별히 허락된 외출이라고 했다. 하지만 약물에서 용케 벗어난다 한들, 과거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약에 취해 저지른 악행의 업보가 그를 옥죄어온다. 엄마와 아들에게, 생애 가장 긴 하룻밤이 찾아오는 것이다.

〈길버트 그레이프〉의 작가 피터 헤지스가 경험으로 쓰고 가슴으로 연출한 영화 〈벤 이즈 백〉을 보고 제일 먼저 떠올린 건 정희진 교수의 칼럼, 그가 인용한 책의 이 대목이었다. “폭우 후 물살이 사납게 불어난 강물에 빠졌다. 다행히 통나무가 떠내려 와서 붙잡고 머리를 물 밖으로 내놓고 숨을 쉬며 목숨을 부지한다. …물살이 잔잔한 곳에 이르자 헤엄치려 하는데, 한쪽 팔을 뻗는 동안 다른 쪽 팔이 거대한 통나무를 붙잡고 있다. 한때 생명을 구한 그 통나무가 이제는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것을 방해한다. 강가의 사람들은 통나무를 놓으라고 소리치지만 그럴 수 없다. 거기까지 헤엄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한겨레〉 2013년 12월13일).”

작가는 중독을 통나무에 비유했다. 난 운 좋게 강물에 빠지는 걸 모면하거나, 다행히 얕은 물에 빠져 걸어 나온 사람일지 모른다. 폭우로 불어난 강물에서 통나무에 의지해 겨우 버텨낸 사람이 그걸 뿌리치는 건 얼마나 두려운 일일까. ‘지금’으로 돌아오는 건 너무 어렵고 ‘과거’로 돌아가는 건 너무 손쉬운 벤에게, 엄마와 함께 보낸 그 하룻밤은 얼마나 간절했을까. 감히 그 마음을 헤아려보는 시간이었다. 그들의 하룻밤이 내게도 잊지 못할 밤으로 남았다. 애타게 엄마가 돌아오기만 기다리던 일곱 살 아이가 커서 참 좋은 영화 한 편 만들었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