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녀가 수족관 진열대 앞에 서 있습니다. 수족관마다 알록달록 예쁜 물고기가 많습니다. 소녀가 고른 건, 작은 거북이입니다. 집에 돌아온 소녀는 거북이를 앞에 두고 거북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거북이에게 인형 친구들도 소개해줍니다. 여름이 찾아옵니다. 소녀가 반소매 옷을 입었습니다. 소녀는 거북이에게 꽃을 선물하기도 하고 춤도 춰주고 노래도 불러줍니다.

어느새 겨울이 되었습니다. 소녀는 털모자를 쓰고 패딩 점퍼를 입었습니다. 소녀는 가방도 내려놓지 않고 수족관 앞에 서 있습니다. 수족관 속 거북이에게 이야기보따리를 늘어놓고 있습니다. 거북이의 수족관에는 참 많은 것이 붙어 있습니다. 단풍잎도 붙어 있고 하트도 붙어 있고 축제 플래카드처럼 이름도 붙어 있습니다. 아! 거북이 이름이 알피였군요.


소녀는 알피가 참 좋은가 봅니다. 알피의 수족관 옆에 앉아 노트에 뭔가를 쓰고 있는데 몸은 여전히 알피를 향해 있거든요. 아마도 소녀는 알피에게 뭔가를 계속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알피가 소녀의 말을 알아듣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런데 어느 날, 소녀가 달라졌습니다. 이제 알피의 수족관 옆에는 소녀가 없습니다. 소녀는 부모와 함께 식탁에 앉아 있습니다. 손에 달력을 들고 뭔가 신나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음 장면에서, 알피의 수족관에 알피는 더 이상 없습니다. 수족관 주위에는 숫자 7이 적힌 풍선들만 뒹굴고 있습니다. 거북이 알피는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제가 〈내 친구 알피〉의 그림만 보면서 구성한 이야기입니다. 그림책 〈내 친구 알피〉가 글 없는 그림책이냐고요? 아닙니다. 〈내 친구 알피〉는 글이 제법 많습니다. 사실 제가 읽은 부분까지는 주인공 소녀 니아가 직접 이야기하는 부분입니다. 알피가 사라진 다음부터는 알피가 직접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림책 〈내 친구 알피〉는 이렇게 두 주인공이 번갈아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아직 그림책 〈내 친구 알피〉를 보지 않은 독자들은 제가 드린 정보가 없었다면 이 그림책이 두 주인공의 목소리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전혀 알 수 없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림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림을 읽는 단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제가 만약 그림책 〈내 친구 알피〉의 나머지 그림까지 모두 읽어드린다면 독자들은 모두 이 책이 한 명의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내 친구 알피〉가 그림책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주인공은 흑인 소녀, 작가는 백인

더 놀라운 것은 모든 독자들이 그림책에서 글이 아닌 그림을 읽게 된다면 그 책을 읽는 독자 수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은 민망하게도 어른들에게만 해당하는 일입니다. 어린이들은 이미 그림을 보고 있기 때문이지요.


〈내 친구 알피〉는 그림책을 볼 때 그림을 읽는다는 게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작품입니다. 이것은 그림책만의 고유한 특성입니다. 그림책 독자만의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내 친구 알피〉의 작가가 백인이라는 점을 밝히고 싶습니다. 흑인 소년이 주인공인 〈눈 오는 날〉의 작가 에즈라 잭 키츠가 백인인 것처럼, 흑인 소녀가 주인공인 〈내 친구 알피〉의 작가 티라 헤더 역시 백인입니다. 예술작품에서 다양한 주인공과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삶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그림책의 힘은 시각예술이라는 점에서 솟아납니다. 그림을 읽는 동안, 독자는 더 자유로워집니다. 그림책의 그림 속에 다양한 주인공과 다양한 삶을 표현하는 동안, 작가는 평화의 예술가가 됩니다.

기자명 이루리 (작가∙북극곰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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