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까지도 사람들은 식품을 차갑게 보관하기를 꺼렸다. 소비자들이 기피했기 때문에 일부 상점 주인들은 냉장고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알려야 했을 정도다. 프랑스에서는 채소 가게 냉장고가 거리에서 ‘공개처형’ 당하기도 했다. 동시에 한편에서는 군인들에게 안전한 식자재를 배송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때는 냉동 기술의 도움을 받아 보관된 고기가 안전할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사람들은 실험에 실험을 반복했다.

21세기에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냉동 기술은 완벽한 신뢰를 받고 있다. 큰 의미에서 냉동 기술의 일종인 냉장 기술 역시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의구심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냉장고가 인류와 함께하려면 더욱 발전되어야 한다. 냉장고가 품은 식·약품의 안정성을 불신하는 게 아니다. 냉장고를 품고 있는 지구에 관한 얘기다.

ⓒ연합뉴스기술자들은 냉장고 냉매로 인한 환경 파괴 문제에 직면해 있다. 위는 폐냉장고 수거 모습.


차가운 곳에서 열을 빼주는 냉매는 냉장고의 필수 요소다. 다소 황당하게도 100년에 걸친 냉매의 역사는 사실상 ‘실패의 역사’다. 기술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냉매가 1931년 뒤퐁 사와 GM 사의 협력을 통해 개발되긴 했다. 냉동 기술에 적합하고 화학적으로 안정할 뿐 아니라 인체에 무해하며 색과 냄새도 없고 폭발성·인화성도 없는 완벽한 냉매. ‘기적의 발명’ ‘완벽한 물질’ 등 찬사를 받았던 이 1세대 냉매가 바로 악명 높은 염화불화탄소(CFC), 상표명 ‘프레온’이다. 프레온은 오존층을 심각하게 파괴했다. 냉매가 냉장고 밖에서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퇴출만이 길이었다. 1989년 발효된 몬트리올 의정서를 통해 20년에 걸쳐 프레온 가스는 단계적으로 사용 및 제조가 완전히 금지되었다.

안타깝지만 뒤를 이은 냉매들도 성공하지 못했다. 2세대 냉매인 수소염화불화탄소(HCFC)는 프레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3세대인 수소불화탄소(HFC)는 오존층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온실효과를 엄청나게 일으켰다.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낸 지구온난화지수(GWP)가 같은 양의 이산화탄소에 비해 1000배가 넘었다. 모두 다 퇴출 계획이 잡혀 있다.

기술자들은 큰 도전에 직면했다. 4세대로 일컬어지는 차세대 냉매를 준비하며 수많은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 수소불화올레핀(HFO)이 강력한 후보인데 아직은 가격이 너무 비싸다. 아예 냉매로 합성물질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천연 물질을 냉매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당히 혁신적인 자세를 갖고 있는 기술자들도 있다. 그들은 아예 냉매로 가스를 사용하지 않는 방법을 연구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자기냉각 기술(Magnetic refrigeration)’이다. 자기냉각 기술을 이해하려면 자기열량 효과(Magnetocaloric Effect)를 알 필요가 있다. 자기열량 효과란 물질의 온도가 외부 자기장에 따라 변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처럼 직접적인 열작용 없이 물질의 온도가 바뀌면 이론적으로 냉매 구실을 할 수 있다.

자기냉각 기술의 놀라운 장점

사실 보통의 냉장고가 냉매에 요구하는 성질도 이와 같다. 단지 가스 냉매들은 자기장이 아니라 압력에 의해 온도가 바뀔 뿐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것이 냉동 기술의 핵심이다. 차가운 냉매가 냉장고 안의 온도를 낮춘다. 그러면 냉매는 상대적으로 따뜻해지는데, 이를 다시 차갑게 만들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온도를 매우 높여야 한다. 냉장고 외부, 그러니까 보통 냉장고 뒷면에서 냉매에 압력을 가해 온도를 높인다. 냉매가 주변 공기보다 뜨거워지면 곧 자기가 가진 열에너지를 주변에 방출한다. 냉장고 뒤편이 따뜻한 이유가 이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냉매가 충분히 열에너지를 방출한 뒤 이제 가했던 압력을 제거한다. 곧 냉매의 온도는 애초에 압력을 가하기 전보다 훨씬 더 떨어지게 된다. 자신이 지녔던 열에너지를 주변에 방출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2018년 7월22일 서울 시내 한 전광판에 오존주의보 발령 정보가 제공되고 있다.


자기냉각 기술도 똑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자기장을 가해서 자성체의 온도를 충분히 높인다. 자성체가 주변에 열을 발산하고 나면 이제 자기장을 제거한다. 자성체의 온도는 다른 물체를 냉각시킬 수 있을 만큼 낮아진다. 압력이 자기장으로 바뀌었을 뿐 이론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기존 냉장고와 큰 차이점은 없다. 하지만 실현된 기술 대부분이 그러하듯 작은 이론적 차이는 현실에서 큰 차이로 발전한다. 가스를 냉매로 사용하는 냉동 기술이 갖지 못한 장점을 갖추게 된다.

먼저 가스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장점이 된다. 온도가 오르고 내리는 것은 가스가 아니고 자성체다. 오존층이나 온실가스 걱정에서 해방된다. 둘째, 자기냉동 기술은 원론적으로 효율이 좋다. 자기장을 이용해 온도를 높이는 과정은 기본적으로 부가적인 외부 효과 없이 매우 빠른 속도로 강력하게 일어난다. 냉매를 기계적으로 압축하기 위해 압축기를 돌려야 하는 기존 냉장고보다 효율이 좋을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세 번째 장점도 뒤따라온다. 제품에 기계적 부분이 적다는 것은 소음이나 진동이 덜하다는 뜻이고 이는 온갖 장점을 이끌어낸다. 조용하고 고장이 적고 따라서 유지비도 덜 든다.

자기열량 효과는 1881년에 처음 발견되었다. 비록 저온에서지만 이를 이용한 냉각 기술도 1930년대에 이미 실현되었다. 상온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기술이 작동할 수 있다는 실험적인 증명이 1997년에 있었으니 벌써 20년이 지났다. 숱한 장점을 지닌 아이디어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양산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기술적으로 아직 큰 난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기술자들은 자성체의 온도를 필요한 만큼 변하게 하는 데에 오랜 시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강한 자기장을 얻는 것조차 쉽지 않다. 코일을 이용하면 자기장 자체야 만들 수 있다. 자기장을 만드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면 효율에 문제가 생긴다. 강한 자기장을 만들기 위해 영구 자석을 사용하면 효율은 좋아지지만 다른 생각할 거리가 생긴다. 예를 들어 네오디뮴(Nd)을 이용한 강한 영구 자석을 떠올려볼 수 있다. 그러나 네오디뮴 자체가 희토류다. 가격이 만만치 않다.

자성체를 구성하는 물질의 성질도 좋아야 한다. 기술자들은 꽤 이른 시간에 가돌리늄(Gd)을 이용한 합금이 외부 자기장에 의해 온도가 잘 변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가돌리늄 역시 희토류의 일종이다. 희토류 가운데 그나마 저렴한 물질이라지만 그래도 희토류는 희토류다. 매장량에 한계가 있고 가격도 절대적으로 비싸다. 전 세계 냉장고에 보급되기에는 적절치 않다. 이에 기술자들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철이나 망간 등을 이용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지만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의 발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러 회사에서 다양하고 실험적인 시제품을 선보였지만 아직 모자란다.

최초의 냉장고가 개발된 지 100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기술자들은 온도차를 만드는 물질을 궁리하고 있다. 어쩌면 자기냉동 기술에도 프레온과 같은 놀라운 신물질 발명이 필요한지 모른다. 모든 기술적 난관을 단번에 풀어줄 마법과 같은 존재. 바라건대 이번에는 인류가 깨닫지 못하던 곳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자명 이진오 (〈밥벌이의 미래〉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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