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오늘 하루 술 얻어먹으러 나왔구나.’ 임은비씨(33)를 처음 본 순간 송영민씨(39)는 생각했다. 이렇게 괜찮은 여자가 뭐가 아쉬워 나 같은 사람을 만나러 왔을까. 처음 같이 먹은 음식은 알탕이었다. 술도 곁들였지만 경계심은 풀리지 않았다. 임씨 역시 굳은 그의 표정이 불만이었다. ‘그전엔 김태희를 만났나? 자기는 뭐 얼마나….’  

ⓒ시사IN 신선영임은비씨(뒤)와 송영민씨가 반려견 꽁이와 함께 사진 촬영을 했다.


둘은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서 처음 만났다. 채팅을 했는데 잘 맞았다. 송씨가 FTM (Female to Male·여성에서 남성으로) 트랜스젠더라는 걸 먼저 알아챈 건 임씨였다. SNS 프로필 사진을 보고 추측했다. 그는 상대의 성 정체성에 구애받지 않았다. 송씨가 경계를 푼 건 임은비씨가 다소 ‘세 보이는’ 화장을 지우고 민낯을 보인 다음이었다.

서울 안암동과 경기도 시흥을 오가는 연애가 시작되었다. 전철로 두 시간 거리였다. 어머니와 시흥에서 해장국집을 운영했던 송씨는 일이 끝난 뒤 왕복 네 시간 거리를 다녀와 잠깐 눈을 붙이고 장사를 위해 다시 일찍 일어났다. 반복하니 몸살이 났다. 아예 부모와 함께 사는 집에 임씨를 불렀다. 한 번 올 때 반려견 꽁이까지 데려와 며칠 있다 가기도 했다. 차라리 방을 얻어 나오자는 생각에 동거를 시작했다. 사귄 지 두 달 만이었다.  

송씨는 어릴 때부터 잘못 태어났다는 생각을 했다. 정체성은 남성인데 몸은 여성이었다. 성전환 수술에 대해 알게 된 건 스물네 살 때였다. 그때부터 준비해 2016년 10월 수술을 했다. 이듬해 1월 임씨를 만났다. 미루고 있던 호적 정정을 독촉한 것도 임씨였다. 취업이나 결혼이 급했던 게 아니어서 그냥 놔둔 터였다.

송씨의 어머니는 식당에서 밥을 퍼 담다가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임씨는 남자친구 집을 처음 방문하던 날 막걸리 10병과 배 한 상자를 사갔다. 성격이 살갑고 애교가 많아 어머니와 금방 친해졌다. 송씨의 아버지가 마음을 여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성전환 수술을 하기 전까지 송씨에게 “너는 그래도 딸이다. 세상을 거스르면 안 된다”라고 말하던 분이었다. 첫 만남 당시 임씨를 위아래로 훑고 한마디도 안 했다. 지금은 그 누구보다 며느리를 아낀다.

“뭐가 어때서. 둘만 잘 살면 되지”

임은비씨 어머니는 딸이 결혼한 후에야 사위의 성 정체성을 알았다. 겪어본 뒤에 알려드리는 게 낫겠다고 두 사람은 판단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사위의 손이 예쁘다고 칭찬했다. 여자 손같이 곱다는 말에 딸은 사위가 여자였다는 사실을 밝혔다. 처음엔 장난으로 여겼지만 곧 아무렇지 않아 하셨다. “부모님이 힘드셨겠다”라고 말했을 뿐이다. 충격을 받아 순간 넋이 나간 게 아닌가 걱정되었다. “엄마 괜찮아?” “뭐가 어때서. 둘만 잘 살면 되지.” 어차피 여자였어도 송영민이라는 사람은 같았을 거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송씨는 그런 반응이 감사했다.

프러포즈는 임은비씨가 했다. 결혼식은 시흥시 포동 시민운동장 잔디밭에서 열렸다. 2017년 6월, 40여 명의 하객 앞이었다. 만난 지 5개월 만이다. 송영민씨는 그 전까지 결혼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여겼다. 남성으로 태어났다면 혼자 사는 삶을 선택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제도 안에서 가능한 건 다 누리고 싶다. 임씨는 “만일 남편이 가족들의 반대가 심해 수술을 못하고 호적 정정도 못했다면 동거 상태만 유지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좋았겠지만 남자끼리든 여자끼리든 결혼이 선택의 문제였으면 좋겠어요.” 두 사람의 신혼집은 신혼부부용 임대주택이다. 법적 부부라는 걸 실감했다. 임씨가 급하게 맹장수술을 받을 때 동의서를 쓴 이도 남편이었다. 서로의 보호자가 되었다.  

결혼 후 1년 동안 많이 싸웠다. 변한 태도에 한동안 실망하기도 했다. 그 시기를 넘기고 나서 믿음이 강해졌다. 두 사람은 2018년 11월부터 ‘콩팥부부’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음주가무를 즐기는 둘의 유쾌한 일상을 공개하고 있다. 가족과 지인 이외에 송씨가 트랜스젠더라는 걸 아는 사람은 없지만 굳이 밝힌 데에는 이유가 있다. 트랜스젠더도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임씨는 “저는 가족의 의미가 특별해요. 어릴 때 가족에게 사랑을 못 받고 자랐어요. 가정을 이루고서야 안착지가 생긴 느낌이에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는데 따뜻한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송씨는 성전환 과정을 겪으며 부모와 형의 지지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느꼈다. 가족이란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다. 내년 1월은 두 사람이 만난 지 3년째 되는 날이다. 그날 안암동 알탕집에 다시 가볼 계획이다. 맛은 별로였지만 추억이 있는 곳이다. 두 사람이 사진 촬영을 앞두고 후드티셔츠에 달린 끈을 서로 단정하게 묶어주었다. 리본 두 개가 나란했다. 그렇게 가족이 되었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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