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서도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배는 이미 선착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얼마나 마음에 두고 그리던 섬이었던가?’ 떠나는 배와 작별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넓은 물양장과 그 뒤쪽으로 우뚝한 마을 표지석이 눈에 들어온다. ‘신비의 섬 여서도.’

여서도의 돌담은 오래된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타고 오른 넝쿨이 돌담과 뒤엉켜 한 몸이 되었는가 하면 누렇게 덮인 이끼가 세월의 흔적으로 남았다. 돌담의 높이는 지붕과 거의 나란할 정도다.

비탈을 오를수록 비어 있는 집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산비탈을 일궈 농사지을 터를 만들다 보니 조막만 한 밭들이 층층이 자리 잡고 앉았다. 평생을 살아도 쌀 한 가마니를 못 먹는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올 만큼 섬은 척박했고, 이곳에서 이어온 삶은 힘들고 고단했다.

ⓒ김민수여서도선착장

여서도의 마을과 선착장은 북쪽을 향해 있다. 해가 중천에 오르니 물빛이 더욱 짙어졌다. 여서도의 물빛은 하도 파랗고 진해서 시집오던 색시가 혹시나 물이 들까 옷고름을 적셔보았다는 얘기가 전해질 정도다.

선착장 뒤편으로 민박을 겸한 슈퍼가 한 곳 있다. 시원한 맥주 한 캔이 간절해 문을 열었더니 주인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는데 저편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어르신이 보인다. “뭐요?” “주인이세요?” “필요한 거 있으면 알아서 가져가쇼.” “달걀은 없어요?” “파는 건 없고 부엌에 가서 찾아보면 있을 거유.”

“여서도에 가면 애 배야 나온다”

어르신의 부인은 여서도의 마지막 해녀이다. 과거 작은 제주도라 불렸던 이 섬에는 많은 제주 해녀들이 들어와서 작업을 했고, 파도와 바람이 거칠어지면 기약 없이 갇혀 있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여서도에 가면 애 배야 나온다”라는 말이 전해오듯이 결국 섬에서 평생을 살게 된 경우도 허다했다.

여서도에서는 텐트 한 동 펼칠 공간도 만만치 않았다. 물양장 주변은 야영을 금지해서 결국 해안가 도로 옆 거친 초지 위에 설영을 했다.

날이 저물어가자 평화롭던 바다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수평선 위로 청산도의 모습이 희미할 뿐 여서도는 바위섬 하나를 벗 삼지 못했다. 또 다른 먼바다 추자도가 외롭지 않았던 것은 크고 작은 섬들이 주위에 둘러 있기 때문이었음이라. 그에 비하니 여서도의 고독함이 더욱더 애달프게 느껴진다. 그사이 완도를 떠난 섬사랑 7호가 선착장으로 들어왔다. 

기자명 김민수 (섬 여행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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