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항을 떠난 섬사랑 6호가 도초도를 거쳐 우이1구 진리, 서소우이도, 동소우이도를 지나 우이2구 돈목마을에 도착하기까지는 무려 4시간이 걸렸다. 이미 오후 3시를 훌쩍 넘겨버린 시각, 열일 제쳐놓고 숙영지를 정해야 했다.

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우이도에서는 원칙적으로 야영과 취사가 금지되어 있다. 특히 돈목해변은 천연기념물 풍성사구가 있는 지역이라 더욱이 그러하다. 마을 안쪽에 있는 폐교는 성수기에는 민박으로 사용된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돈목해변으로 나가보았다. 해변과 어우러진 풍성사구는 여전히 아름답고 신비로운 풍광을 자랑한다. 한때 동양 최대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 높이가 많이 낮아졌다고 한다. 주변으로는 많은 잡초와 식물들이 자라나 사구로의 모래 유입을 막고 오히려 면적을 침식하는 현상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김민수조선 숙종 때 지은 ‘우이선창’

성촌해변은 풍성사구 너머에 펼쳐진 곳으로 돈목해변과는 또 다른 운치를 가지고 있다. 돈목해변이 만입된 해안을 따라 둥그스름하게 형성되어 여성적이라 한다면 더 큰 면적으로 바다를 향해 숨김없이 모습을 드러낸 일자형 해변이 성촌이다. 우이도에는 두 곳 말고도 ‘띠밭너머해변’을 포함해 크고 작은 모래 해변이 섬을 둘러 산재해 있다. “모래 서 말은 먹어야 시집을 간다”라는 신안군의 속담이 있는데, 이곳 우이도에서 비로소 그 원류를 찾은 느낌이다.

섬의 매력은 청명함과 한적함이다. 쏜살같은 바람이 구름을 걷어내면 눈부시게 파란 하늘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하늘빛이 바다에 투영되고 선명한 선과 색의 기막힌 조화를 보여주는데도 이 아침, 그것을 바라보고 감격해하는 이는 오로지 한 사람뿐이다.

우이1구 진리마을은 돈목해변 뒤편으로 산길을 따라 2㎞ 이상을 걸어야 닿을 수 있다. 면적이 10.7㎢인 우이도는 작은 섬이 아니지만 두 개의 마을을 잇는 도로가 없다. 왕래하기 위해선 좁은 산길을 넘어가든지 아니면 바닷길을 이용해야 한다. 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집터와 돌담 등 거주 흔적을 만나게 된다. 450년 전 우이도 최초로 형성되어 지금은 사라진 대초리의 마을 터이다. 불과 20여 년 전까지 사람이 살았다고 하지만 세월은 그들의 자취를 무상하게 지워가고 엷은 기억조차 돌과 돌 사이에 이끼가 되어 숨었다.

경이로운 우이도 하늘에 넋을 잃고

상산봉까지는 1.2㎞, 가파른 경사를 치고 올라가야 한다. 사람의 발길이 끊기면 자연은 그 모습을 금세 바꾸어버린다. 높이 361m, 상산봉. 시선을 한 바퀴 돌려 바라보면 들고 난 해안지형과 산세의 흐름조차 고스란히 펼쳐지고 섬의 모든 이치가 한데 모여 있는 듯,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하나하나 그 지명을 읊조려보면 돈목마을과 돈목, 성촌해변이 저편이고, 진리포구 우측으로는 동소우이도·서소우이도가, 저 멀리 비금도, 도초도 옆으로는 대야도·신도가 분명하다.

진리는 도초면사무소 우이도출장소와 치안센터가 있는 큰 마을이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면 돌담이 둘러진 밭과 밭 사이 ‘정약전 유배지’라는 팻말이 눈에 띄지만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그저 터뿐이다. 신유박해로 흑산도에 유배를 간 정약전은 우이도를 오가며 시절을 보내게 되는데 결국 이곳에서 1816년 숨을 거둔다.

우이도와 정약전의 인연은 문순득과의 만남으로 귀결된다. 1801년 영산포로 홍어를 팔기 위해 떠났던 홍어 장수 문순득의 표류기(풍랑을 만나 오키나와·필리핀·마카오·난징·베이징을 돌아 4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이야기)를 직접 들은 정약전이 〈표해시말〉이란 책으로 기록했다.

진리가 돈목이나 성촌에 비해 가구수가 훨씬 많은 까닭은 마을이 비교적 평탄하여 밭농사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우이도 사람들은 대형마트가 있는 도초도로 나가 식량과 생필품을 사온다. ‘우이선창’이란 이름을 가진 진리마을의 옛 선창은 지은 지 300년이 훌쩍 넘었다. 형태가 온전하게 남아 있는 국내 유일의 전통 포구 시설인 옛 선창은 근래 들어 배를 건조하고 수리하던 곳으로 쓰였고, 현재도 선박들의 피항 포구로 활용되고 있다.

우이도를 제대로 돌아보기 위해서는 1구 돈목에서 산길을 이용해 2구 진리로 넘어온 뒤 목포에서 들어오는 오후 배(진리 오후 2시40분께 도착)를 타고 다시 돈목으로 돌아가는 방법이 합리적이다. 중간에 상산봉을 경유하고 진리마을을 좀 더 탐방하기를 원한다면 최소한 오전 10시 이전에 서둘러 출발하는 것이 좋다.

뭍으로 돌아가는 우이도의 하늘은 경이로웠다. 잘게 조각난 솜덩이가 무수히 하늘을 덮고 오묘한 아침의 색과 어우러져 조화를 만들어간다. 객실에서 만난 노부부는 15년 전 우이도로 여행을 왔다가 섬의 아름답고 조용한 모습에 반했단다. 마침 대기업을 다니던 남편은 정년퇴직을 하게 되었고 아내의 바람과 고집으로 우이도 성촌마을에 작은 거처를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하는 일 없는 백수인데 하루가 너무도 바빠요. 하늘도 봐야 하고, 오늘은 바다가 어떨까 살피기도 하고, 해변에 나가 산책도 하고, 또 텃밭을 가꾸기도 하죠. 매일매일이 다르니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그리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우리 집은 민박을 해요. 성촌민박이라고. 맞아요. 〈섬총사〉에서 김희선이 묵었던 그 집, 내가 희선이 엄마라우. 나도 15년간 섬 여행을 하고 있는 셈이지요.” 

기자명 김민수 (섬 여행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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