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산이 멀어지고 있었다. 목포대교 밑을 통과한 배가 바다로 몸을 밀고 나아갔다. 목적지는 전남 신안군 하의면 신도. 하의도 서쪽에 흩어져 있는 부속섬(유인도 9개, 무인도 49개) 중 하나다. 목포에서 이미 2시간 넘게 왔지만 하의도 웅곡선착장에서 다시 배를 갈아타야 했다.

하의도는 한 시절, 김대중 대통령이 태어난 곳이어서 각광받았다. 그 관심은 곧 옅어졌다가, 2017년 여름 하의도와 상하태도 사이에 삼도대교가 연결되면서 다시 ‘유명’해졌다. 덕분에 여행자도 다시 늘었다. 상하태도는 원래 상태도와 하태도라는 두 섬이었지만, 해안선의 드나듦이 심해 일찍부터 간척과 매립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결국 하나의 섬이 되었다. 1983년에 상하태도와 주변의 유·무인도를 묶어 하의면에서 독립시킨 것이 신의면이고, 그때부터 신의도라 불리게 됐다. 염전으로 유명한 바로 그곳이다.

이렇게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이기 오래전부터 세 섬은 끈끈한 운명 공동체였다. 예부터 하의도·상태도·하태도를 일러 ‘하의 3도’라 했는데, 조선 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350년 동안 양반들의 수탈에 항거해 자신들이 개간한 땅에 대한 권리를 찾으려 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주민들에게는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만큼이나 ‘하의 3도 농민운동기념관’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천소현동소우이도가 보이는 신도해수욕장에 텐트를 쳤다.

그에 비하면 신도는 낙도 중의 낙도다. 섶나무(땔감나무)가 많아서 섶 신(薪)자를 쓰는 신도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과 기막히게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있다는 것이 구해지는 정보의 전부였다. 하의도에서 고작 3㎞쯤 떨어져 있지만 시간은 1시간10분이나 걸린다. 하의도 웅곡-상태-장병-옥도-문병-개도-능산-대야를 다 거쳐야 비로소 종착지인 신도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신도에는 가게도 없다. 식재료 구입은 하의도선착장 뒤 농협마트에서 해결해야 한다. 섬의 물가, 물자의 소중함 등은 장보기의 덤 같은 것이다. 유의할 점은 시간. 여기서 하의신도로 가는 낙도보조선을 놓치면 끝장이다. 조금 전 내린 선착장에서 보니 섬사랑 15호가 와 있었다.

선실 바닥에 두 다리를 쭉 펴고 누웠지만 자꾸 바깥으로 시선이 갔다. 여러 섬을 경유하는 코스라 볼거리가 꽤 많았다. 네모난 구조물이 있으면 전복 양식장이고 장대가 꽂혀 있으면 전복의 먹이로 키우는 미역과 다시마 양식장이다. 이 넓은 바다가 모두 밭이고 농장이다.

가게도 식당도 없으나 인심은 ‘넉넉’  

하선 후에는 신도해수욕장으로 직행했다. 국토해양부에서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해수욕장 15선에 든 곳이다. 여름 피서철에는 족히 100여 명이 찾아온다니 주민의 몇 배나 되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셈이다. 섬의 등허리를 따라 내려오는 일주도로를 2㎞만 걸으면 해수욕장에 도착하지만, 부식을 가득 담은 배낭이 발을 짓눌렀다. 축축 처져 일행에서 멀어지는 중인데 어디선가 경적 소리가 들렸다. “짐만 올려!” 이보다 더 반가운 소리가 또 있을까. 마을 이장님의 트럭은 앞서 걷고 있는 일행들의 배낭을 모조리 걷어서 신도해수욕장 입구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짐을 모두 내리자 한마디를 남기고 휑하니 가버리신다. “나갈 때도 전화해!” 도시에선 천연기념물이 된 ‘인정’이라는 것을 보았다.

ⓒ김민수북쪽 선착장 근처 큰모실 마을

초승달 같은 해수욕장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800m 길이의 프라이빗 비치라니. 이런 사치가 있나. 둥글게 만입한 신도해수욕장의 풍경은 밋밋하지 않다. 왼쪽 끝으로는 물이 빠지면 신도와 연결되는 작은 섬 항도가 있고, 오른쪽 끄트머리에는 손톱만 한 하얀 등대가 서 있다. 수평선에 걸려 있는 것은 동소우이도. 언젠가 가봐야 할 섬의 일부분이었다.

몇몇은 솔숲 데크에, 몇몇은 모래사장에 설영을 했다. 물이 밀려와도 안전하도록 완전히 마른 모래의 경계선 안쪽으로 사이트를 잡았다. 이장님이 알려주신 밸브를 여니 야외 개수대에서 물이 콸콸 쏟아졌다. 여름 성수기에는 야영장 사용료를 내야 한다. 청소와 관리에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품이 들므로. 그늘을 찾아 앉으니 더위가 가시긴 했지만 바다의 유혹이 출렁이고 있었다. 사실 수영이 뭐가 어려울까. 입고 벗고 씻고 말리기가 어려운 과정일 뿐. 샤워장도 있으니 시원하게 입수를 했다. 여름 한철 거뜬히 견뎌낼 만큼의 개운함이 채워졌다.

더위가 한풀 꺾인 시간, 마을 산책에 나섰다. 선착장 근처에 있는 큰모실과 남쪽의 신도해수욕장 후면으로 안태골이라는 두 자연부락이 형성되어 있다. 한때는 인구가 280여 명이 넘었지만 점점 줄어들어 하나 있던 초등학교도 2000년에 폐교했다. 지금은 30여 가구밖에 살지 않아 가게 하나, 식당 하나 없는 섬으로 남았다. 그래서 서로 나누는 마음이 남아 있다. 낯선 인기척을 듣고 바닷가 맨 앞줄 집에 사는 할머니가 나와 계셨다. 달리 대접할 것이 없다면서 믹스커피를 권하셨다. 육지에 정착한 아들딸 이야기 끝에 냉장고에서 꽝꽝 언 생선과 게를 꺼내 건네셨다. 이 바다에서 잡히는 꽃게는 전국에서도 손꼽힐 만큼 맛있기로 유명하다고 들었다. 극구 사양해도 할머니는 손을 거두지 않으셨다. 사람 귀한 섬이라 이리 귀한 대접을 다 받아본다.

저녁이 되니 모래구멍마다 게들이 나와서 활개를 친다. 혹여 밟을까 걱정인데, 녀석들이 걱정은 접어두라는 듯 잽싸다. 긴 하루를 누이는 밤. 옆 텐트의 코 고는 소리가 잠잠해지자 나지막한 파도 소리만 남았다. 덩달아 기상도 빨라졌다. 아직 아무도 깨지 않은 아침. 주섬주섬 의자와 코펠을 챙겨 바다에 바짝 자리를 잡았다. 커피 물이 끓는 동안 새벽의 섬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재빨리 원두를 갈아 드립커피 한 잔을 내렸다. 가져온 책이 한 권 있었지만 눈앞에 팝업북처럼 펼쳐진 바다가 훨씬 흥미진진했다. 보고, 듣고, 만질 거리들이 넘쳤다.

세월호가 보였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천소현박동일씨가 직접 담근 선인장 술
아침 배는 그냥 보내고 점심 배를 타고 나가기로 했다. 여유가 생긴 김에 신도해수욕장 끝자락에 있는 민박집 박동일 사장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잠시 들렀다. 정성을 들여 가꾼 마당 정원에서 노란 선인장 꽃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사장님이 ‘바로 그 꽃으로 담갔다’며 귀한 술을 한 잔 따라주셨다. 신도가 좋아 십수 년 전부터 틈날 때마다 직접 집을 지었다. 은퇴 후에는 아예 혼자 들어와 살면서 민박도 운영한다. 피서철에는 라면이나 시원한 맥주를 파는 작은 매점도 운영해볼 계획이란다. 돌아오는 길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노란 술을 마시니 기분도 노랗다.

지난밤의 흔적을 정리하고 텐트 곳곳에 스며든 모래를 정리했다. 쓰레기는 분류해서 태울 것들은 태우고 하의도까지 싣고 나가야 것들을 따로 챙겼다. 약속대로 이장님의 트럭이 도착했고, 이제 떠나는 일만 남았다. 다시 한번 섬의 모든 것에 인사하는 시간. 다시 해안 일주도로를 넘으며 신도해수욕장에 손을 흔들었다.

점심은 하의도에서 먹었다. 신도에는 없지만 하의도에는 있는 것! 선착장 뒤 정자로 치킨과 맥주를 배달시킬 수 있었다. 낚시꾼들은 그 시간마저 쪼개서 낚싯대를 드리웠지만, 끝끝내 빈손이었다. 머쓱한 손을 잡아끌었다. 이제 집으로 가자고. 목포항으로 돌아가는 길에 멀리 신항에 서 있는 세월호가 보였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 배가 보이지 않게 멀어지고 나서야 누군가 겨우 입을 떼어 말했다. 그만 가자고. 집으로.

섬에 들어가는 방법

목포항에서 하의도 웅곡항까지는 차도선(2시간18분)과 쾌속선(1시간12분)이 운항한다. 하의도에서 신도까지는 섬사랑 15호(하의도 웅곡-상태-장병-옥도-문병-개도-능산-대야-신도)가 하루 2회 운항한다. 타고 내리는 사람이 있어야 기항하고 없을 때는 지나쳐 간다(문의 이성훈 선장/ 010-5564-1363).

마을에 민박이라고 쓰인 집이 여럿 있지만 해수욕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박동일 사장님의 집이다. 숙박만 가능하고 식사는 각자 준비해야 한다(문의 061-261-4415, 010-4722-4415).

섬에서 할 수 있는 일

신도해수욕장에서 캠핑을 할 수 있다. 해변 솔숲 안에 넉넉한 크기의 데크가 설치되어 있고, 개수대·화장실·샤워장이 있다.

신도는 북쪽과 남쪽의 자연부락을 연결하는 포장도로 외에 따로 산책로가 정비되어 있지는 않다. 가장 높은 산은 안태산(해발 179m)인데, 등산로가 가꿔져 있지 않다. 마을 산책을 할 때는 주민들에게 피해가 없도록 조심할 것. 인사를 잘 하면 믹스커피를 타주시는 인심을 만날 수도 있다. 신도해수욕장 앞에 작은 무인도인 항도가 있는데, 물이 빠지면 걸어서 가볼 수 있다. 낚시는 섬 어디서든 가능하다.

기자명 천소현 (여행 매거진 〈트래비〉 팀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