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을 이야기 하는 ‘어벤져스:엔드게임’
  • 강혜경 (자유기고가)
  • 호수 608
  • 승인 2019.05.16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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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히어로들은 때로 응원하고 때로 욕하는 친근한 이들이다. 촘촘한 이야기는 내가 살아온 시간과 함께 흐른다. 그렇게 <어벤져스:엔드게임>은 소통을 이야기한다.
※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끝이 없는 이야기를 바랐다. 각기 다른 능력과 결함을 가진 <어벤져스> 히어로들은 손닿지 않는 먼 존재 혹은 절대적 숭배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애틋하게 응원하고픈, 때로는 왜 저러냐며 욕하기도 하는 친근한 이들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활동하는 무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인 것만 같다. 당초 원작 만화는 ‘평행우주’라는 설정이 있어, 동시에 존재하는 여러 시공간에서 많은 갈래의 이야기들이 펼쳐졌던 터라 어쩔 수 없는 판타지라는 느낌이 강했다. 반면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마블 스튜디오에서 제작하는 영화 및 드라마들이 속한 세계관)>는 하나의 시간 축만을 설정하고, 현실의 연도와 일치시켜 한줄기의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2012년 뉴욕’, ‘2013년 런던’ 등 지금의 시간과 익숙한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영화와 드라마에서 명시적으로 밝히기도 한다. 게다가 그 이야기가 2015년 서울, 2016년 부산을 경유하자 몰입감은 더욱 커졌다. 촘촘히 진행되는 이야기는 내가 살아온 시간과 함께 흐르는 듯했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이들 역시 함께 살아서 이야기가 이어지는 게 당연할 것만 같았다.

ⓒ연합뉴스4월15일 <어벤져스:엔드게임> 제작진과 출연진이 서울에서 열린 팬 이벤트에서 인사하고 있다.
그래서 아주 열심히 부정해봤다. 지난해 5월, <어벤져스> 원년 멤버를 연기한 배우 6명 중 5명이 어벤져스 마크와 숫자 6을 의미하는 타투를
팔에 새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저 기념으로 했겠거니 하며 웃어넘겼다. 주요 멤버들이 마블 스튜디오와 계약한 출연 회차가 곧 만료된다거나, 이번이 원년 멤버들의 마지막을 알리는 작품이 될 거라거나 하는 소식이며, 심지어 최종장을 뜻하는 <어벤져스:엔드게임>이라는 제목 앞에서도 애써 모른 척했다.

하지만 결국 모를 수 없었다. 이번이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인사가 되리라는 걸 말이다. 온 마음으로 보내주고 싶어서 영화 관람 전까지 철저하게 준비했다. 빠르게 영화 예매를 하고, 커뮤니티와 SNS에는 당분간 발을 끊고, 혹시나 스포일러 내용을 전송받는 ‘테러’를 당할까 봐 스마트폰의 무선 공유 기능(에어드롭)도 꺼두었다. 그랬으면서도 이번에는 속편 예고 영상이 없으니 엔딩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먼저 본 지인의 말에 괜스레 마음이 쿵 하고 떨어졌다. 그러고는 이 마지막이 어떤 형태의 의식이 될까 그려봤다. 졸업식, 은퇴식 혹은 장례식일까.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에 대한 고별


영화 시작과 함께 빨려 들어갔다. 지난 <어벤져스:인피티니 워>의 마지막에서 전 우주 생명체의 반이 먼지가 되어 사라질 때, 그 자리의 히어로들은 최소한 그게 타노스에 의한 것이라는 연유라도 알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른 채로 아무런 단계도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보통 사람들의 슬픔과 무력감은 아주 다른 무게로 그들의 삶을 짓누르고 있었음을, 영화는 사라진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수많은 기념비와 회색빛의 텅 빈 뉴욕 메츠 구장으로 전했다. 이 거대한 트라우마 속에서 히어로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고뇌하며, 또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누군가는 잊은 척하고, 누군가는 자신만은 기억하고자 하고, 누군가는 그래도 나아가야 한다 말하고, 누군가는 아직 남아 있겠다 한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폭발시키는 이가 있는가 하면, 조용히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이도 있으며, 부딪치는 자신의 내면을 화해시키고 한 단계 성장한 이도 있다. 모두가 너무나 그럴 만한 개연성을 지니고 있다. 이 차이들은 퍼즐처럼 맞춰져 마침내 하나의 큰 그림을 그려낸다. 필연적인 운명 혹은 이미 다 끝나버렸다고 여긴 현실에 도전하는 인간 군상의 의지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처럼 가슴을 울린다.

그렇게 한 시대가 끝났다. <어벤져스:엔드게임>은 10여 년을 지나오며 히어로 영화의 상징과도 같아진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를 보내주는 의식이다. 그러자면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했고, 그래서 영화는 2012년, 어벤져스가 처음으로 팀을 꾸렸던 뉴욕으로 돌아갔다. 시작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뿐 아니라 이미 풀린 뉴욕 배경 촬영장 사진을 통해서도 이번 영화에서 당시의 모습이 등장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막상 그 시공간을 눈앞에서 마주하니 벅찬 그리움이 밀려들었다. 오랜 시간 함께한 팬들에게 주는 선물 같은 장면이 가득했다.

ⓒ연합뉴스한 영화관에서 관객들이 마블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줄 선 모습.
그러나 영화는 추억팔이나 하려는 게 아니었다. 과거로 회귀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소통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숨겨져 있어서 몰랐던 노고들에 감사하고, 그때보다 성장한 히어로들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실은 이 팀이 꾸려진 2012년의 히어로들은 지금과 아주 많이 달랐고 각자의 아픔과 목표가 공유되지 않아 힘들었지만, 지금까지 함께 싸우며 동료이자 가족이 되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팬들 역시 같이 자랐고 어벤져스 멤버들과 서로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됐다. 이번 영화 개봉을 앞두고 내한한 아이언맨 역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시리즈와 같이 성장한 팬들에 대한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이번 영화가 원년 멤버 팬들이 모두 만족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전체 서사에서는 아이언맨이, 주요 장면에서는 캡틴 아메리카가 돋보였던 탓이다. 이후 시리즈 출연이 예상되는 멤버들의 비중을 줄여가면서라도,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에게 확실하고도 완벽한 마지막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없이도 히어로 세계를 이끌어나갈 수 있다는 마블 스튜디오의 자신감과 각오마저 느껴졌다.

새 시대가 시작된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끝은 아니다. 이 역시 진짜 삶의 한 부분임을 마주한다. 영원히 살아가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를 보내고 또 새로 만나왔다. 원년 멤버들이 물러나며 만들어준 다리를 건너 새로운 세대들을 맞아들일 준비를 한다. 능력과 성격뿐 아니라 성별, 인종, 연령, 성적 지향에서 이전보다 더욱 다채로운 면모를 지닌 히어로들에 기대하는 바도 남다르다. 두근두근한 마음과는 별개로 그래도 아직은 추억에 잠겨 있고 싶다. 오늘 저녁엔 치즈버거를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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