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3월을 보내던 무렵, 학급 ‘특공대원’(학급 1인1역으로 각종 이벤트 기획 및 진행 담당) 중 한 명이 “반티(학급 티셔츠)를 언제 정하느냐”라고 물어왔다. “체육대회가 5월인데 벌써 정하니?”라고 묻자 “2학년이 벌써부터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러다가 우리가 하고 싶은 걸 걔네들이 먼저 차지하면 어떡해요?”라고 대답한다. 특공대를 통해 반티에 관한 의견을 조사했다. 학생들마다 선호하는 디자인과 색상이 각기 달라서 쉽게 정할 수 없었다. 그러다 겨우 정한 반티 디자인을 다른 반이 선점했다는 소식에 결국 그 결정을 포기해야 했다.

이런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다가 4월이 되었다. 더 늦으면 선택지가 너무 적을 것 같아서 의견을 다시 수렴해 반티를 결정했다. 그런데 2학년 어느 학급이 동일한 반티로 정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번번이 다른 반과 겹쳐 포기하기를 반복하던 학생들은 기어코 ‘폭발’했다. 2학년 후배들이 이미 주문을 완료했다고 하자 “배송 예정인 상품을 실제로 주문했는지 주문 내역을 공개해라”고 나설 정도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학교폭력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2학년 담임과 수차례 전화 통화를 하며 아이들을 진정시킬 묘안을 모색했다.

ⓒ박해성


이 문제로 2학년 반과 3학년 우리 반에서 학급 회의도 열렸다. 우리 반 학생들 과반수는 그래도 ‘선배답게’ 2학년에게 그 반티를 양보하자는 데 손을 들었다. 2학년 후배들도 “3학년 선배들에게 양보하자”라며 중지를 모았다. 서로 양보하는 아름다운 결말로 맺어져서 다행이었지만, 반티로 말미암아 아이들과 교사들의 스트레스가 너무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비단 우리 반에서만 일어난 문제가 아니었다.

왜 자꾸 이런 ‘반티 갈등’이 생기는 걸까? 생각해보니 컨트롤타워의 부재가 그 원인 같았다. 반티를 맞추는 것은 학급 재량이다. 학교 특정 부서나 학생회가 이것을 조사하는 데 애매함이 있고 전체를 주관하는 곳이 없다 보니 발생한 문제다. 반티를 정하면 각 반 학생들이 SNS 상으로 공지를 하는 정도에 그쳐서 학년 간 SNS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확인하기도 어렵다. 우리 반이 문제가 생긴 것도 2학년이 올린 글을 미리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컨트롤타워를 자청하기로 했다. 인터넷 문서 도구를 활용해 실시간으로 담임교사들이 반티 진행 여부를 게시하고, 다른 반 교사들이 확인할 수 있게 했다. 특히 3학년은 다른 후배 학년들이 눈치를 보지 않도록 며칠 내로 빨리 정해달라고 부탁했다. 거의 모든 반이 내용을 채웠다. 뒤늦게 정하는 반들도 기존 반티와 비슷한 디자인을 제외시키면서 학급 간 자연스럽게 조율이 이루어졌다.

100% 모두 만족하는 단체복은 없다

학교 반티든 대학 과점퍼든 단체복을 정하는 데 참여해본 사람은 안다. 모두를 100% 충족시키는 단체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매번 조사를 진행하는 사람은 어려움을 겪고,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으로 결정하더라도 꼭 누군가로부터는 불평을 듣기 마련이다. 단합하자고 옷을 맞추는데 그 과정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반티 문제를 그냥 자율로 맡기기에는 위험 요소가 너무 많았다. 모든 학년이 선착순으로 정할 경우 지나치게 과열되는 양상도 있다. 차라리 학년별로 기간을 정해주고 고학년에게 우선권을 부여한 뒤, 반티 내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면 어떨까. 올해는 조사에 의의를 두고 내년에는 이런 다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미리 적극 건의해볼 생각이다.

기자명 차성준 (남양주다산중학교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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