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토착 비리 수사였다. 2017년 8월 울산지방경찰청에 부임한 황운하 청장은 ‘토착 비리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강조했다. 이 기조에 따라 경찰은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자유한국당 소속)의 측근들이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3가지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2018년 6·13 지방선거가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김기현 시장 측과 자유한국당은 ‘정치 수사’라며 반발했다. 여기에 검·경 수사권 갈등도 불거졌다. 경찰대 출신으로 대표적인 경찰 수사권 독립론자인 황 청장과 검찰의 기 싸움이 된 것 아니냐는 ‘검·경 대리전’ 논란까지 불거진 것이다. 실제로 경찰 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경찰이 요청한 영장을 번번이 기각하기도 했다. 또 검찰은 경찰이 수사한 3가지 사건 중 2가지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토착 비리 수사는 ‘정치’와 ‘검·경’이라는 단어로 대체됐다.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17년 12월 경찰청 본청은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 측근의 비리 의혹을 입수하고 울산지방경찰청에 수사 지시를 내렸다. 김 시장의 비서실장이 울산 북구의 한 아파트 단지 건설 현장에 부당한 권력을 행사했다는 혐의였다. 해당 건설 현장에 레미콘을 공급하던 ㄷ레미콘 대표가 경쟁 업체보다 유리한 조건을 얻기 위해 비서실장에게 청탁했고, 비서실장은 울산시청 고위 공무원과 공모해 건설 현장 소장을 압박했다는 내용이었다.

ⓒ연합뉴스4월10일 울산시의회 프레스센터에서 김기현 전 울산시장(가운데)이 아파트 사업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자신의 동생에 대해 검찰이 무혐의 처분한 것과 관련해 "(경찰 수사 책임자)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현 대전경찰청장)의 권력형 공작 수사 게이트 진상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수사에 들어간 울산지방경찰청은 2018년 3월16일 울산시청 관련 부서를 압수수색했다. 공교롭게도 자유한국당이 6·13 지방선거 후보로 김기현 시장을 공천한 날이었다. 경찰은 ‘법원에서 영장이 발부되는 시점을 경찰이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설명했지만, 자유한국당은 ‘잔칫날에 재를 뿌렸다’며 반발했다.

경찰은 2018년 12월 ㄷ레미콘 대표와 비서실장, 울산시청 고위 공무원 등 피의자 3명을 재판에 넘겨달라며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지난 3월15일 모든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리며 99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불기소 이유서’를 냈다. 검찰이 이렇게 방대한 불기소 이유서를 내는 것은 이례적이다. 불기소 이유서에서 검찰은 경찰이 세 차례에 걸친 보완수사 지휘를 무시했다며 경찰을 비판했다. 이어 비서실장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는 지역 업체의 참여를 권장하는 조례에 따라 면담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골프 비용을 대신 내주었다는 뇌물 공여 및 수수 혐의에 대해서는 비서실장이 결제한 골프 비용 카드 내역을 공개했으므로 혐의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ㄷ레미콘의 경쟁 업체 ㅇ레미콘도 울산에 기반을 두고 있는 지역 업체인데 왜 ㄷ레미콘만 면담했는지를 봐야 한다. ㄷ레미콘 대표는 김기현 시장이 당선된 2014년부터 지속적으로 쪼개기 후원을 한 인물이다. 골프비만 살펴볼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정치자금법상 연간 500만원을 초과한 정치자금 후원은 불법인데, ㄷ레미콘 대표는 지인들의 명의를 빌려 500만원 이상의 금액을 후원했다. 실제 ㄷ레미콘 대표와, 그 외 쪼개기 후원을 했던 2명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들 3명으로부터 쪼개기 후원금을 받은 김 전 시장의 회계 담당자 김 아무개씨도 함께 기소됐다. 지난 4월26일 검찰은 혐의를 인정한 후원자 3명에게 징역 6개월의 처벌을 내려줄 것을 법원에 요청했다. 혐의를 부인한 회계 담당자 김씨를 상대로는 법원에서 증거조사가 진행 중이다.

ⓒ시사IN 나경희·최예린 기자
김기현 전 시장 “무죄판결 예상”

김기현 전 시장 측근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는 하나 더 있다. 김 전 시장이 국회의원이던 2012년, 그의 회계 담당자 김씨가 울산 소재의 SK 공장에 전기 공급 문제를 해결해주는 대가로 쪼개기 후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당시 SK로부터 하청을 받던 ㅎ업체 대표 이 아무개씨는 김기현 시장 아내의 이종사촌에게 회사 직함을 주며 3000만원에 달하는 보수를 지급했다. 또 회계를 담당했던 김씨에게 2000만원 정도를 다른 사람 명의를 통해 쪼개어 건넸다고 주장했다. 전기 공급 관련 문제는 해결됐지만, 막상 SK로부터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한 이씨는 2017년 9월 서울 SK 본사와 울산시청 앞에서 자해를 시도하기도 했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2018년 12월 하청업체 대표와 김 전 시장 아내의 이종사촌, 회계 책임자 등 3명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4월26일 검찰은 혐의를 인정한 이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구형했다. 김기현 전 시장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나와 관계가 없는 일이지만, 무죄판결이 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김기현 전 시장 동생의 변호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였다. 변호사법은 변호사나 공무원이 아니면서 금품 등의 이익을 받을 것을 약속하고 해당 업무를 한 자를 처벌하는 규정이다. 김 전 시장의 동생 김씨는 2014년 3월 울산 북구의 한 아파트 시행권을 ㅅ건설업체가 딸 수 있도록 도와주면 30억원을 받기로 하는 내용의 용역계약서를 체결했다. 그러나 시행권이 다른 업체에 돌아가는 바람에 결국 계약은 성사되지 못했다. ㅅ건설업체 대표는 김기현 전 시장의 형이 시행권을 따낸 업체 측에 서서 압력을 넣었다고 주장하며 동생 김씨를 고발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아파트 공사 인허가 전후로 김 시장의 형·동생 계좌에 출처를 알 수 없는 거액의 돈이 입금된 것을 확인했다. 계좌 추적을 위해 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이 기각했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사건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지만, 검찰은 지난 4월9일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경찰 수사 당시 ‘김 전 시장의 동생 김씨가 아파트 사업에 개입하려 했다’고 진술했던 지인 2명이 검찰 수사에서 진술을 번복한 것이 주된 이유였다. 검찰은 사건을 무혐의 처리함과 동시에, 거꾸로 울산지방경찰청을 압수수색했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성 아무개 경위에 대한 고발 사건 때문이다. 112 상황실 소속이었다가 김 전 시장 수사에 참여한 성 경위는 김 전 시장 비서실장의 형을 협박하고, ㅅ건설업체 대표에게 수사 과정을 누설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수사 투입 6개월 만에 김 전 시장 비서실장의 형으로부터 고발당했다. 성 아무개 경위는 4월21일 구속됐다.

자유한국당과 김기현 전 시장 측은 황운하 청장을 권한남용, 공직선거법 위반, 피의사실 공표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자유한국당은 “황 청장이 권한을 남용해 공작 수사, 편파 수사를 자행해 지방선거 직전 울산시민의 민심을 왜곡했다”라고 주장했다.

기자명 울산·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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