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춤을 연구하는 게 아니라 직접 춘다고요?” 〈시사IN〉 팟캐스트 ‘시사인싸’ 진행자인 최광기씨(〈시사IN〉 독자 대표)가 놀라워하며 물었다. 그럴 만도 했다. 지난 4월21일 ‘시사인싸’ 녹음실에 초대된 이영미씨는 잘 알려진 대중예술 평론가다. 대중가요와 연극을 비평하고, 언젠가부터는 토종·제철 요리로 차린 우리 밥상에 대한 글도 써왔다.

누군가 “‘이영미론’을 쓴다면 ‘이영미는 원래 세 명이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겠다”라고 이씨는 스스로를 소개했다. 한 이영미가 대중가요를 연구한다면, 다른 이영미는 연극을 연구하고, 마지막 이영미는 음식을 연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춤추는 이영미’가 새로 더해졌다. 춤을 인생운동으로 찾게 되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인생운동을 찾았다!〉(시사IN북)를 최근 출간하면서다.

ⓒ시사IN 신선영이영미씨가 거울을 보며 벨리댄스를 추는 모습.

2013년, 이씨는 단행본 〈한국대중예술사, 신파성으로 읽다〉를 집필하며 두문불출했다. 책상머리에 붙어 앉아 오직 ‘엉덩이’로 문장을 써내려갔다. 600쪽이 넘는 책을 완성하는 동안 온몸에 남아 있던 진이 다 빠져버렸다. 뭐든 운동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절박감이 들었다. 그러나 타고나길 ‘저질 체력’인지라 수영이나 달리기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등산을 하자니 시간을 내기가 마땅치 않고, 이전에 잠깐 시도했던 요가나 단전호흡도 별로였다. 평소 눈여겨보았던 동네 ‘댄스학원’을 제 발로 찾아가게 된 배경이다.


춤으로 찾은 '네번째 이영미'

‘지루박’ ‘부루스’가 적힌 공간에 들어서는 데는 약간의 결단이 필요했다.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는 것과 달리 ‘춤을 춘다’고 하면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것”이라는 편견이 따른다. 잠시 망설였지만 “오십이 넘은 나이에 춤을 춘다 한들, 에잇” 하면서 댄스학원 문을 밀고 들어갔다. 일주일에 한 번 레슨을 받고 집에서 복습했다. 글을 쓰다가 몸이 찌뿌둥하다 싶거나, 소화를 시켜야 할 때면 5분간 스텝을 밟았다.

대중문화 연구에 골몰해온 그는 ‘예술의 즐거움’을 알고 있다.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인 연극이나 무용은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렵단다. 몸이 그 즐거움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춤은 ‘바람’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이니 그 재미가 오죽할까. “박자에 맞춰 사람과 음악에 교감하다 보면 운동의 고통을 잊게 된다. 지루하거나 힘든 운동을 견디기 힘든 사람에게 아주 적합하다.” 재미에 호기심을 더해 자이브, 룸바, 살사, 탭댄스, 탱고, 왈츠, 벨리댄스, 훌라, 플라멩코 등을 섭렵하는 데 이르렀다.

춤을 추니 몸이 변했다. 가장 먼저 바뀐 것은 무릎과 등허리였다. 툭하면 시큰거렸던 무릎관절염은 춤을 춘 이후 한 번도 재발하지 않았다. 등허리에는 힘이 생겼다. 왈츠를 배우면서 허리의 힘이 더 강해져 몸을 꼿꼿이 세우는 습관이 생겼다. 골반과 허리를 휘두르는 룸바나 차차차, 자이브 같은 라틴댄스는 몸을 푸는 데 효과적이다. 벨리댄스는 배와 골반, 심지어 내장을 이리 꼬고 저리 꼬아 노글노글하게 만든다. 굳어 있던 배를 요동치게 하니 변비가 해결되었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시사IN 신선영이영미 대중예술 평론가(오른쪽)가 벨리댄스 강사 이주연 안무가와 춤을 추고 있다.

이영미 평론가에게 운동의 목적은 몸매가 아니라 체력 도모와 생존이다. 책상머리에 붙어 있다 보니 어깨와 골반이 망가졌다. ‘죽지 않기 위해’ 운동을 시작한 셈이다. 그렇다고 남들에게 좋다는 운동이 나에게 맞지는 않았다. ‘해야 한다’는 강박만 있는 운동은 지속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춤은 음악을 느끼며 움직이느라 몸과 마음이 즐겁고, 순서를 외우다 보니 머리에까지 좋았다.


남편 간병 중에도 춤을 멈추지 않은 까닭

춤의 세계에 입문하고 보니 춤을 추는 인구는 생각보다 많았다. 남녀를 불문하고 콜라텍, 사교댄스홀에서 조용하게 지르박 스텝을 밟고 있었다. 지난해 9월12일 온라인 쇼핑몰 G마켓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그해 1~8월 벨리 및 재즈, 살사를 비롯한 댄스복 판매량은 이전 해 같은 기간에 비해 8배 늘었다(〈경향신문〉 2018년 9월13일). 춤을 추면 활력이 생겨 갱년기 우울증을 극복하는 데도 도움이 된단다.

ⓒ시사IN 신선영이영미씨가 펴낸 〈인생운동을 찾았다!〉
(시사IN북 펴냄).
그렇게 춤을 사랑하던 그가 운동을 잠시 멈춘 시간이 있었다. 문화운동가이자 연극연출가인 남편 박인배씨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다. 2017년 5월 타계한 그를 간병하는 8개월 동안 춤을 끊었다. 그러다 지인이 병문안을 오는 때에 맞춰 잠깐씩 춤을 추러 갔다. “그것마저 안 하면 죽을 것 같았다.” 일주일에 한 번 춤을 배우고 집으로 돌아와 복습하며 그 시간을 견뎠다.

이영미 평론가는 춤만이 운동으로써 효과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운동’이라 하면 으레 헬스·수영·달리기·요가 등을 떠올리는데 춤 역시 하나의 선택지라고 일러두고 싶다는 것이다. 게다가 춤에는 아주 다양한 종류가 있으니 잘 골라볼 것을 권했다. 그는 춤 덕분에 반강제로 몸을 성찰하게 되었다며 “내후년이면 환갑인데 내 몸이 어떤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춤을 추고서야 새삼 알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영미 평론가의 말처럼 “그러니까, 해봐야 안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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