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과정에서 앵커는 이 사건을 “묻지마 테러가 분명해 보인다”라며 확신했다. 사건이 새벽에 발생하여 다른 언론사에서 제대로 된 기사가 나오기 전이었고, 인터뷰에 응한 할머니도 사건을 목격한 게 아니어서 제공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되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묻지마 테러라기보다는 계획적인 거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계획한 것은 맞지만 칼을 아무에게나 휘둘렀다는 점에서 묻지마 테러”라며 재차 강조했다. 그럴 리 없겠지만 마치 ‘묻지마 테러’이길 바라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런 사건일수록 신중해야 하는데 왜 그렇게 서둘러 단정 지었을까? 비단 이 사건, 그 앵커만의 문제는 아니다. 많은 언론이 너무 쉽게 ‘묻지마’의 함정에 빠진다.선택적 증오 범죄가 묻지마 범죄로 둔갑
이번 사건도 그 연장선에 있다. 앵커의 확신과는 반대로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묻지마 범죄가 아니라는 정황이 밝혀졌다. 그의 범행 대상은 정확하게 어린이·여성·노인으로 특정되었다. 이쯤 되면 우리는 마땅히 질문해야 한다. 이런 일이 왜, 그리고 어떻게 일어났는가? 막을 수는 없었는가? 무엇이 문제인가?
‘묻지마 범죄’라는 말은 질문 자체를 멈추게 한다. 논문 〈‘묻지마 범죄’가 묻지 않은 것〉(2017)에서 저자 김민정은 묻지마라는 말의 효과를 “잠재적 피해자의 두려움을 극대화시키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약자를 선택적으로 증오하는 범죄가 왜 발생하는지, 이를 방지할 방법은 없었는지…. 가해자나 시스템을 향해 질문하게 하는 대신 피해자를 향한 단속으로 귀결된다는 의미다.
생산적인 질문을 막는 또 하나의 장벽이 있다. 강력범죄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조현병이다. 강남역 사건의 범인도 조현병이었고, 지난해 발생한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범인도 조현병 전력이 있었다. 이번에도 여러 언론이 범인이 과거 5년간 68차례나 조현병 치료를 받아왔다는 사실 등 그의 병력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만약 그가 조현병이 아니었다면 만취 상태나 심신미약 등 또 다른 이유를 찾아냈을 것이다. 이런 방식은 어떤 존재 혹은 질병에 관한 편견을 강화하도록 성급하게 프레임을 설정한다. 강력범죄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하고자 하는 질문을 막는 가장 강력한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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