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가 축성을 하면 밀떡은 성체가 된다. 밀가루로 빚어진 물성에는 변화가 없지만 예수의 몸으로 여겨진다. 가톨릭 신자들은 미사 중에 이를 나누어 먹음으로써 하나의 신앙 공동체를 이룬다.
ⓒ산림청 공중진화대 제공4월4일 강원 고성군 산불 발생 현장에서 산림청 공중진화대원들이 불을 끄고 있다.

지상파(Ground wave)는 밀떡과 같다. 공중파(Sky wave)와 같은 의미로 혼용되곤 한다(지상파와 공중파는 땅에서 전송하는 전파와 위성을 통해 하늘에서 보내는 전파를 기술적으로 구분하는 용어다. 일반적으로 ‘공중파’라는 말은 이러한 구분을 따른다기보다는 공공·대중의 전파를 뜻한다. 이 글의 공중파 용어 역시 그 관용적 의미를 따른다). 우리 사회가 이를 공동체 성원들에게 나눠진 것으로 ‘축성’하기 전까지는, 공중을 부유하는 수많은 전파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즉 사회제도가 지상에서 송신하는 방송신호를 공공재로 승인했기에, 그 신호는 공동체에 귀속된다. 가톨릭 신자들에게 성체가 그러하듯 누구든 함부로 다루면 안 되는 우리 모두의 것이 된다. 지상파의 공적인 의무와 책임, 규제의 근거는 그렇게 발생한다.

이 새삼스러운 얘기를 꺼내는 건, 방송법이 제정된 이래 지속한 그 공고한 믿음에 의심을 품을 만한 일이 잦아진 탓이다. 최근 강원도 산불에 대응한 지상파 재난방송이 시청자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기본적으로, 수어 통역과 화면 해설을 지원하지 않았다. 또 역대 화재 피해를 나열하며 경기 중계하듯이 상황을 전달해 공분을 샀다. 더 나아가 해당 지역 주민으로 자신을 대입해보았을 때 재난방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스스로를 구원할 정보가 일천했다. 이는 공영방송의 효용에 대한 의심으로까지 이어졌다. 왜 그랬을까. 왜 그 순간에 지상파는 공중파(Public wave)일 수 없었을까.

지상파 승인 요건 중 하나는 커버리지(coverage·도달 범위)다. 방송신호가 전국 가구에 얼마나 가닿는가. 공영방송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난시청 지역 해소인 건 이 때문이다. 이 포괄적 시스템은 지역에 기반하여 우리 사회의 비대칭 구조를 그대로 반영한다. 일례로 라디오 청취율 조사는 오로지 서울·수도권 시민만을 대상으로 삼고, 텔레비전 시청률 역시 수도권 가구 시청률을 따로 산정하며 이를 좀 더 유효한 지표로 활용한다. 혹시 지난 재난방송의 초점이, 강원 지역 피해 당사자들에게 상황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수도권 시청자들에게 그곳의 소식을 전달하는 데 맞춰져 있었던 건 아닐까. 재난방송이 ‘중계방송’ 같았던 건 그 때문일까. 가령 서울에 거주하는 청각장애인에게 현장 대피 정보를 전할 필요는 없었을 터이다. 이는 좀 더 엄밀한 재난방송 매뉴얼을 마련하고 이를 강제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리란 보장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상 그런 매뉴얼이 없지도 않다. 어쩌면 이제 무엇이 공중파여야 하는지, 지금 우리 사회가 어떤 신호를 ‘축성’해야 하는지 기술적인 검토를 시작해야 할 시점인지도 모르겠다.

그 답이 무엇이 될지 아직 알 수 없으나 한 가지 분명한 건, 다수를 대표하기보다는 분화된 사회를 보여주는 공중파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모든 공동체는 자신만의 매체를 가질 권리가 있다. 기술은 이를 실현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영국과 노르웨이 등의 디지털 라디오

ⓒAP Photo2017년 1월 노르웨이는 세계 최초로 FM 라디오 송출을 중단하고 디지털 라디오로 전환했다.

지난 10여 년간 도입 논의가 유야무야 증발한 디지털 라디오도 대안 중 하나다. 혹시 영미권 등지에서 이를 사용해본 사람들은 라디오 단말기에 음악뿐 아니라 곡명이나 앨범 이미지, 때때로 단순한 슬라이드 쇼가 액정 화면에 수신되는 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비상 상황에서도 라디오를 통해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자막이나 도면으로 받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기존 주파수 대역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배 이상 채널을 증설할 수 있다. 좀 더 다양하고 세분화된 공동체의 목소리를 담는 매체가 생길 수 있다. 전혀 새로운 기술은 아니다. 각국 사정에 따라 다르지만 그 도입 시기는 199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노르웨이의 경우 2017년에 FM 라디오를 폐지하고 유럽식 모델 중 하나인 DAB+ 방식의 디지털 라디오를 전면화했는데, 산간 지형이 많은 국토에 좀 더 높은 효율의 커버리지를 제공한다는 점이 그 전환의 주요 근거였다.

영국은 이미 1995년에 도입한 이후로 여전히 FM과 병용하고 있는데, 2011년까지도 약 28%에 불과하던 디지털 라디오의 청취율이 꾸준히 증가해 2018년 3분기에 처음으로 50%를 넘겼다. 현재 영국의 라디오 청취율은 90%에 달한다. 그중에는 장애인 라디오 방송국도 있고, 세계 최대 규모의 LGBT(성소수자) 채널도 있다.

디지털 라디오 도입 장벽이 없지는 않다. 일단 아날로그 수신기를 디지털 수신기로 교체하는 과정이 지난할 것이며, 그 연착륙을 위해 기존 방송과 동시 송출 기간을 조정하는 작업이 만만찮을 것이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라디오 청취 인구를 지닌 독일의 경우, 20여 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정착 과정을 수행 중이다. 그런 세심한 설계에도 당장 수신율에 악영향을 끼침으로써 의도한 바와 상반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개인화된 구독 매체가 많은 현재, 더 많은 채널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회적 승인’이라는 점차 희소해지는 공공재의 공급을, 디지털 라디오로 조금이나마 늘릴 수 있다. 지난 10년간 대안 언론이 발아해왔다는 사실은, 이러한 공인이 우리에게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는 방증 아닐까. 지난 재난 보도에 항의하며 장애인 단체들은 국가인권위원회를 찾기도 했다.

기자명 강태우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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