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의 낙태법 개정안 왜 논란인가?
  • 이상원 기자
  • 호수 606
  • 승인 2019.05.0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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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이 비판을 받고 있다. 정의당은 부족하더라도 최대한 빨리 발의해야 논의를 이어갈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번 위헌 결정이 논의의 시작이라는 시각도 있다.
“여자들이 생활을 열어가는 데 가장 큰 지장이 되는 일이다. 자기 앞길을 개척해가는 데 방해가 된다면 뱃속의 애뿐만 아니라 오른팔이라도 자르는 게 무슨 죄가 되나?” “여기 앉은 누구든 어머니 뱃속에서 안 나온 분 있나? 인간이 되려는 것을 근본부터 없애 인간 존엄성을 말살시키는 일이다.” 1953년 7월6일, 형법 제정을 준비하던 제2대 국회의원들이 주고받은 논박이다. 입법자들은 이날 형법전에 낙태죄를 포함할지를 두고 다양한 차원에서 격론을 벌였다. 낙태죄를 삭제하는 안은 표결에서 과반수 동의를 얻지 못했다. 형법에 남게 된 낙태죄 처벌 규정은 66년 만인 4월11일 헌법재판소(헌재)의 헌법 불합치 결정을 받았다. 내년 12월31일까지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조항은 효력을 잃는다. 이제 가장 큰 관심사는 ‘법이 어떻게 바뀔지’이다.

현행 낙태 관련법은 크게 형법과 모자보건법으로 나뉜다. 처벌 사유와 양형은 형법에 규정되어 있다. 부녀가 약물 등의 방법으로 낙태하면 징역 1년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며, 그 촉탁·승낙을 받아 낙태한 자도 같다. 의사와 한의사 등 의료인이 낙태하면 더 무겁게 처벌한다. 부녀의 촉탁·승낙이 있으면 3년 이하 징역, 없으면 5년 이하 징역이다. 모자보건법에는 낙태가 허용되는 예외적 경우가 열거되어 있다. 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을 때, 강간으로 임신했을 때, 친인척 간 임신일 때, 모체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때 등이다. 본인과 배우자 동의를 받아야 수술할 수 있다.
ⓒ연합뉴스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4월15일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4월15일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형법 개정안에서는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없애고 부녀의 승낙이 없는 수술만 처벌하도록 했다. 현행법의 ‘낙태’라는 용어도 ‘인공임신중절’로 바꿨다. 단, 동의 없는 인공임신중절치사·상죄는 형량을 올렸다. 이 의원이 대표 발의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에서는 임신 기간을 3분기로 나눴다. 임신 14주 이내의 인공임신중절은 임신부 요청에 따라 가능하도록 했다. 현행법의 낙태 허용 사유들은 임신 14주부터 22주 이내에 적용하되, ‘우생학적 정신장애’ 등을 삭제하고 ‘임신 유지나 양육이 어려운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넣었다. 임신 22주부터는 심각한 모체 건강상 이유를 제외하고는 인공임신중절을 금지했다. 배우자 동의를 받아야 수술할 수 있다는 조항은 뺐다.

임신 14주와 22주는 헌재 결정문에 언급된 시기다. 단순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 3명(이석태·이은애·김기영)은 ‘임신 제1삼분기(대략 마지막 생리기간의 첫날부터 14주 무렵까지)에는 어떤 사유를 요구함이 없이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숙고와 판단 아래 낙태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적었다. 헌법 불합치 의견을 낸 재판관 4명(유남석·서기석·이선애·이영진)은 임신 22주는 ‘세계보건기구(WHO)가 태아의 독자적 생존이 가능하다고 보는 시기’라고 밝혔다. 이정미 의원 역시 4월15일 기자회견에서 이 구절을 언급했다.

ⓒ사진공동취재단4월11일 낙태죄 위헌 여부 결정을 앞두고 헌법재판관들이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앉아 있다.
“헌재 결정문보다 후퇴한 법안”


이 법안은 발의되자마자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낙태죄 존속을 주장하던 측이 아니라 여성계 일각에서 비판이 나왔다. 4월16일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은 ‘여성의 기본권 훼손하고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과 규제를 존치시키는 정의당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법안이 “여전히 임신중지를 법의 틀에 따라 ‘제한’하고 ‘징벌’한다는 점에서 매우 문제적”이라는 내용이었다. ‘정의당 여성주의자 모임’도 ‘우리는 정의당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에 반대합니다’라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임신) 주수 제한을 포함한 법안은 헌재 결정문의 (…) 내용보다도 후퇴한 내용이다”라고 주장했다. 두 단체 모두 성명에서 ‘진보 정당’을 자임하는 정의당에서 이런 법안을 발의했다는 데에 실망감을 표했다.

정의당은 왜 여성계 요구에 못 미치는 법안을 내놓았을까? 당내 한 관계자가 내부의 고민을 들려줬다. “최대한 빨리 발의해야 논의를 이어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법안 성격상 시간이 갈수록 반발 여론은 뭉치고, 그렇기에 정치권은 더 소극적으로 임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의원이 6명이라서 단독으로 법안을 발의할 수 없다. 이른 시일 내에 다른 당 의원들의 동의를 받으려면 발의한 내용 이상은 나아가기 어렵다고 봤다.” 여성계 내부에는 ‘정의당이 10만큼 주창해야 이후 정치적 타협 과정을 거쳐도 5는 얻는다’는 시각이 있지만, 정의당은 ‘6만큼이라도 지금 이야기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3도 안 남는다’는 위기의식이 있었다.

이 고민은 기우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종교계의 비난을 감수하고 앞장서는 정치인은 많지 않다. 2017년 군형법의 추행죄 논란이 일례다. 군형법 개정안 역시 공동 발의할 의원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알려져 있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정의당 김종대 의원실은 쉴 새 없는 항의 전화에 시달렸다(<시사IN> 제531호 ‘빨갱이를 잡자에서 동성애를 막자로’ 기사 참조). 한 여당 관계자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 차원에서 낙태죄 개정을 추진하기는 부담된다. 아마 총선이 끝난 뒤에 개별 의원들을 중심으로 발의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법안 전망을 부정적으로 점쳤다. “입법을 하더라도 사안 특성을 감안하면 아마 헌재가 요구한 기준에 딱 맞춰서, 아슬아슬한 시일 내에 국회 문을 넘을 것이다.”

ⓒ연합뉴스4월12일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이 헌법 불합치에 대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입법 현실을 고려하더라도 헌재 결정 취지보다 후퇴한 법안이라면 정당성을 잃는다. ‘진보 정당’이 낸 ‘1호 법안’이 향후 이어질 입법에 끼치는 영향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주된 쟁점은 임신 주수에 따른 낙태 제한이다. 4월16일 성명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은 “헌법 불합치 결정을 한 4인의 재판관 역시 임신 22주 내에서는 ‘특정한 사유를 국가가 지정하거나 선별하지 않고’ 여성의 자기 결정과 요청에 기반하여 임신중지가 이루어지는 것이 헌법상 타당하다는 의견을 밝혔다”라고 적었다. 그런데 헌재 결정문에 적힌 재판관들의 논지는 사뭇 다르다. 헌법 불합치 결정을 한 재판관 4인은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를 ‘결정 가능 기간’으로 보고,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라고 판단했을 뿐이다. 즉, 임신 22주 이하의 태아 모두를, 형사처벌이라는 수단을 통해서만 보호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사유를 불문하고 여성 요청에 따라 낙태를 보장하는 게 옳다’는 말과는 다르다.

이 대목은 헌재가 문제 조항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유와 맞닿아 있다. 이번 결정에서 헌재가 문제 삼는 것은 ‘특정한 (인공임신중지) 사유를 국가가 지정하거나 선별’하는 것 자체가 아니다(이 구절은 결정문 본문에 등장하지 않는다). 헌법 불합치 결정을 한 재판관 4인에 따르면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낙태를 금지하고 형사처벌하는 것 자체가 모든 경우에 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는 없다”. 이들은 문제의 조항들이 위헌적인 이유를 다른 데서 찾는다. 현행법은 “(임신 여성이 처한 상황이) 모자보건법에서 정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결정 가능 기간 중에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인하여 낙태 갈등 상황을 겪고 있는 경우까지도 예외 없이 전면적·일률적으로 임신의 유지 및 출산을 강제하고,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한다. 바꿔 말해, 문제는 현행 모자보건법의 사유에 따라서만 낙태를 허용하는 것이다. 더 다양한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예외 조항으로 고려해야 한다.

“앞으로 ‘재생산권’을 철학으로 삼아야”

4명의 재판관이 단순 위헌 의견과 갈라진 지점이 여기다. 이들은 “단순 위헌 결정을 할 경우 임신 기간 전체에 걸쳐 행해진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됨”을 우려한다. 어떤 낙태도 처벌하지 않는 이 상태를 재판관 4인은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이라고 본다. 이들은 ‘자기낙태죄는 사실상 사문화되었기에 폐기해도 극심한 혼란은 없을 것이며, 설령 있더라도 국가가 감수해야 할 몫’이라는 단순 위헌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다. 단순 위헌 의견을 표한 재판관 3명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임신 14주 무렵까지는 사유 없이도 임신 여성의 판단하에 낙태하도록 하자고 제안하지만, 이들 역시 사유와 주수와 무관히 자유롭게 낙태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임신 14주 이후에는 여성 생명에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고, 태아 성별·기형아 여부를 알 수 있게 되어 선별적으로 낙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낙태할 수 있는 범위’를 늘리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면 헌재의 이번 결정은 보기만큼 파격적이지 않다. 66년간의 논쟁을 종결한다고 볼 수도 없다. 오히려 시작에 가깝다. 헌재는 결정 가능 기간을 어떻게 정할지, 사회적·경제적 사유 확인을 요구할지, 숙려 기간 등 절차 요건을 추가할지 등을 입법자가 정하라고 요구했다. 헌재 기준에 기속되고 정치적 타협을 거쳐야 할 법률 개정안이 일정한 한계를 가지는 것은 필연이다.

양현아 교수(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는 헌재 결정의 복합적 의미를 이렇게 짚었다. “여성의 임신, 출산, 낙태 결정이 깊은 고민의 결과라고 인정한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임신 22주를 절대 기준처럼 언급한 부분 등은 부적절하다. 임신 후기의 불가피한 중절 문제 등 입법 디테일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양 교수는 향후 입법 과제를 논할 때에 ‘재생산권(reproductive rights)’을 철학적 근거로 삼자고 제안했다. 재생산권은 평등한 성적 관계를 맺을 권리, 적절한 성교육을 받을 권리, 출산 여부를 결정할 권리, 자녀를 건강하게 양육할 권리 등 성과 재생산을 둘러싼 자유권과 사회권의 패키지다. 그는 “여성의 자기 결정을 계속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가 통제하던 시민의 재생산권을 되돌려 받는다는 차원의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최종적으로 개헌안에까지 포함된다면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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