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종이잡지를 콘셉트로 한 공간을 열겠다고 했을 때 지인들은 김민성씨(33)를 말렸다. “요즘은 유튜브나 넷플릭스가 대세지” “잡지를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

어느 ‘잡지광’의 허무맹랑해 보였던 꿈은 지난해 10월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건물 지하에서 현실화되었다. 국내외 종이잡지를 열람할 수 있는 ‘종이잡지 클럽’을 열었다. 서점 매니저로 일하며 만났던 단골 두 명과 뜻이 맞았다. 매달 종이잡지를 다섯 개씩 정기 구독하는 ‘잡지 덕후’들이었다.

ⓒ시사IN 조남진


〈필로(Filo)〉 〈모노클(Monocle)〉 〈보스토크(Vostok)〉 등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 더 많았다. 현재 취급하고 있는 잡지는 400여 종. 김민성씨가 어렸을 때부터 모은 〈라이프(Life)〉를 비롯해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취급하는 〈버팔로진(Buffalo Zine)〉(패션), 〈파울플레이(Foul Play)〉(범죄) 같은 해외 잡지도 있다.

일간·월간·연간 회원으로 등록하면 잡지를 무제한으로 읽을 수 있다. “이곳에서만은 활자를 읽는 데 몰입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카페도 도서관도 아닌 이곳을 찾은 손님들의 평균 체류 시간은 4~5시간이다. 다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잡지가 있는 줄 몰랐다”라며 잡지를 쌓아두고 읽는다. 현재 연간 회원은 44명, 월간 회원은 90명 정도다. 70% 이상이 재등록한다.

김씨는 ‘잡지의 시대는 정말 끝났을까’라는 질문을 자꾸만 곱씹게 된다. “잡지는 항상 반 발자국 뒤에서 계속 발행되고 있잖아요. 장르가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현재를 차분히 읽어내고 있더라고요.” 반 발자국 앞에서 벌어지는 정보의 속도전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세계를 다른 시선으로 보는 통찰이 잡지에 있었다. 이를테면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잡지인 〈모노클〉이 매년 기상예보 하듯 내놓는 콘텐츠 트렌드 기사라든지 〈노맨스랜드〉(페미니즘), 〈계간 돼지〉(음식) 등 독립잡지들이 주목한 이슈들이 그랬다. 기획자부터 마케터, 디자이너 등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들이 브레인스토밍 단계에서 종이잡지 클럽을 많이 찾는다.

그는 이곳에 오는 손님에게 일부러 직군과 관련이 없는 분야의 잡지를 건넨다. 사진 잡지를 읽으면서 트렌드를 읽고, 사회학 잡지를 보면서 미술적 영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종이잡지의 매력은 바로 이 허물어진 경계에 있다. “이곳에서만은 마음껏 방황하다가 자신이 전혀 모르는 어떤 잡지를 골랐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관점과 취향을 찾을 수도 있으니까요.”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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