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남에게 돈을 빌려주면 이자를 받는 법이다. 그런데 이자를 받기는커녕 웃돈까지 얹어주면서 돈을 맡기고 있다면? 예컨대 100만원을 빌려주면서 90만원만 상환받기로 하는 경우다. 이런 돈의 규모가 세계적으로 10조 달러에 이른다. 또한 길게 빌려줄 때 더 많은 이자를 받는 것이 금융시장의 법칙이다. 최근 10년 장기 대출의 이자가 불과 3개월 대출의 이자보다 낮게 형성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여러 나라의 국채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건들이다. 이런 사태의 원인과 의미는 무엇인가?

국채란, 국가가 민간으로부터 돈을 빌리면서 발행하는 증서다. ‘언제 얼마를 갚겠다’라고 기입되어 있다. 독일 정부가 ‘10만 유로를 빌려주면 1년(만기) 뒤에 12만 유로를 상환’하는 조건으로 국채를 발행했다고 치자. 투자자가 이 국채를 10만 유로(국채 가격)로 매입하면, 1년 뒤엔 원금에 2만 유로의 금융수익이 추가된 12만 유로(만기상환금)를 받을 수 있다. 이 국채의 수익률은 20%다(금융수익 2만 유로를 국채 가격 10만 유로로 나눈 백분율. 다만 설명의 편의를 위한 수치다. 실제 수익률은 이보다 훨씬 낮다). 



국채 가격은 수요-공급의 변동에 따라 위아래로 오르내린다. 그러나 만기상환금 액수는 변하지 않는다. 주가지수가 폭등할 것으로 예측되면, 투자자들은 국채보다는 주식을 선호할 것이다. 국채에 대한 수요가 줄면서 10만 유로였던 독일 국채의 가격이 9만 유로로 하락할 수 있다. 이 시기에 해당 국채를 사면, 9만 유로를 투자해서 만기에 12만 유로를 받을 수 있으므로 3만 유로의 수익이 기대된다. 국채수익률은 금융수익 3만 유로를 투자금 9만 유로로 나눈 백분율인 33.3%다. 국채 가격이 10만 유로에서 9만 유로로 떨어지니, 그 수익률은 20%에서 33.3%로 오히려 올랐다. 반대로 독일 국채 수요가 증가해서 그 가격이 11만 유로로 오르면 어떻게 될까? 해당 국채를 매입한 투자자는 11만 유로를 투자해서 만기에 12만 유로를 받게 되므로 수익은 1만 유로이다. 수익률은 9.1%(1만 유로를 11만 유로로 나눈 백분율)로 떨어진다. 이처럼 국채의 가격과 수익률은 반비례한다. 국채의 인기(수요)가 치솟으면 수익률이 떨어지고, 국채의 인기가 하락하면 수익률은 상승한다.


현재 EU 국가들에서는 국채 가격이 거침없이 상승하면서 심지어 만기상환금을 뛰어넘어버렸다. 투자자들이 만기에 12만 유로를 받게 되는 국채를 예컨대 14만 유로에 매입하고 있는 것이다. 국채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14만 유로를 투자했는데 12만 유로밖에 못 받으면 2만 유로나 손해다. 수익률은 마이너스 14.3%(손실금 2만 유로를 투자금 14만 유로로 나눈 백분율. 이 수치 역시 설명의 편의를 위한 것)다. 바보 같은 투자로 보일지도 모른다.

국채 가격 인상 예측한 ‘합리적 투자’

문제는, 이런 투자의 주인공들이 평소에 손해 볼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 글로벌 투자기관들이라는 점이다. 지난 3월26일자 〈파이낸셜타임스〉는 10년 만기 독일 국채의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전환되었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차원에서 보면, 수익률이 0% 이하로 내려간 ‘마이너스 수익률 국채(국채 가격이 만기상환금보다 높은)’의 규모가 이미 10조 달러를 돌파했다. 지난해 초 5조7000억 달러였던 마이너스 수익률 국채의 규모가 1년여 만에 두 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Xinhua3월20일 뉴욕 증권거래소(NYSE) 직원들이 거래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투자기관들이 미친 듯이 EU 국가들의 국채를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미래의 EU 경기를 매우 부정적으로 관측하기 때문이다. 경기가 악화되는 경우 국채 가격은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호경기에는 국채의 가격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물가와 시중금리가 오르기 때문이다. 현재 스마트폰 가격이 120만원인데, 1년 뒤에 120만원을 만기상환금으로 받는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고 치자. 비현실적 가정이지만, 물가 인상으로 스마트폰 가격이 1년 뒤에 240만원으로 뛰어버린다면, 국채 보유자는 가만히 앉아서 손해를 보게 된다. 물가가 아무리 올라도 채권의 만기상환금은 120만원으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한 대를 매입할 수 있었던 돈이 그 절반으로 줄어버렸다. 한편 시중금리가 오른다면, 투자자들은 채권을 보유하기보다 차라리 은행에 예금하려 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불황기에는 물가와 금리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심지어 떨어질 수도 있다(디플레이션). 주식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국채 수요와 가격은 상승할 것이다.

사실 투자기관들은 앞으로 인상될 금융상품인 국채를 사들이는, 매우 합리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불황을 예측하기 때문이다. 다만 너무 심하게 사들여서 국채 가격을 만기상환금 이상으로 올리고 말았다. 이에 따라 국채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4월3일자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EU 지역의 회사채(민간 기업이 발행하는 채권)까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국채는 채무자가 국가이므로 약속한 만기상환금을 돌려주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러나 회사채는 발행 기업이 망하면 휴지조각이 된다. 그런데도 투자자들이 국채를 넘어 회사채까지 집어삼키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EU의 미래 경기를 부정적으로 관측한다는 의미다. 이 신문에 따르면, EU 지역 회사채 시장의 16%에 이르는 2300억 유로 상당의 채권이 이미 마이너스 수익률 상태다. 추가로 1400억 유로 규모의 회사채는 0~0.1% 정도의 수익률로 거래 중이다. 머지않아 마이너스 수익률로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파이낸셜타임스〉는 “(EU에서) 5개 정부 가운데 2개 정부꼴로 국채수익률이 마이너스”인 상황이라며 “유럽이 일본 스타일의 장기 불황에 빠지는 것 아닌가”라고 우려한다.

비슷한 시기,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는 단기국채와 장기국채의 수익률이 역전(inversion)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지난 3월22일, 3개월 만기인 단기국채가 10년 만기의 장기국채 수익률을 뛰어넘어버렸다. 세계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미국 국채는 만기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가장 짧게는 하루부터 길게는 30년이다. 그렇다면 단기와 장기국채 가운데 어느 쪽의 수익률이 높아야 할까? 당연히 장기국채의 수익률이 높기 마련이다.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투자자 처지에서 볼 때 만기가 길수록 리스크가 크다. 돈을 돌려받는 만기일 이전에 어떤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 만기에서부터 30년 만기 국채까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차례대로 늘어놓고 그 위에 각각의 국채수익률을 표시한 뒤 선으로 연결하면, 그 선은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형태를 띤다(아래 〈표 1〉 참조). 정상적 상황에서는 한 달 만기보단 1년 만기, 1년 만기보다는 10년 만기, 10년 만기보다는 30년 만기의 국채수익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 선을 ‘국채수익률 곡선’이라고 부른다.

투자자들이 앞으로의 경기를 긍정적으로 본다면, 국채수익률 곡선은 오른쪽으로 가파르게 치솟게 된다. 호경기에서는 물가가 오르는 것이 보통이다. 중앙은행은 경기과열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린다. 앞에서 봤듯이 물가와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은 떨어진다. 즉 투자자들이 미래의 호경기를 예측한다면, 10년 뒤의 장기채권을 매입할 이유가 없다. 이에 따라 장기채권에 대한 수요가 줄면서 그 가격이 하락하고 수익률은 오른다. 만기가 길수록 국채수익률이 오르는(수익률 곡선이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이유다.

예외적으로 국채수익률 곡선이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수익률 역전’ 현상이다(위 〈표 2〉 참조). 투자자들이 향후 경기 전망을 극도로 부정적으로 본다는 의미다. 경기가 악화되면, 호경기 때와는 반대로 물가와 금리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심지어 떨어질지도 모른다. 이에 따라 장기국채의 가격은 오른다. 그래서 현 시점의 투자자들이 장기국채를 앞다퉈 매입하면서 가격이 오르고 수익률은 떨어진다. 수익률 곡선이 오른쪽으로 가면서 밑으로 떨어지게 된다(‘수익률 역전’).

미국 금융당국과 금융계는 전통적으로 수익률 역전이 나타나면 일정한 시차를 두고 경기침체가 발생할 것으로 보아왔다. 상당히 신뢰도 높은, 경기침체의 선행지표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경제에서는 수익률 커브가 역전된 뒤 경기침체에 빠지는 현상이 되풀이되었다. 예외는 1960년대 중반뿐이었다고 한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수익률 역전과 경기침체 간의 기간은 2차 세계대전 이후를 통틀어 평균 15개월, 1980년대 이후에는 평균 21개월이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상당수 분석가들은 그동안 경제 시스템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수익률 역전이 곧바로 경기침체의 임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파이낸셜타임스〉 기사(4월3일)는 이런 낙관론에 적지 않은 지면을 배분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다.

수익률 역전 자체가 ‘경기침체의 원인’

우선, 지난 3월의 수익률 역전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시행된 양적완화의 일시적 결과에 불과할 수 있다. 당시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금융기관들이 보유한 미국 장기국채를 대량 매입해 지금도 가지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지금도 2조 달러가량의 미국 국채를 안고 있다. 각국 시중은행도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 미국 국채의 보유를 크게 늘렸다. 결과적으로 시장에 나와 있는 미국 장기국채의 물량이 절대적으로 적다. 장기국채의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는(장기국채의 수익률이 낮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와 함께 미국 단기국채의 수익률이 최근 올라간 것에 대해서도 합리적 설명이 가능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단기국채 발행을 통해 빌린 돈으로 예산 적자를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로로 미국 단기국채가 시장에 많이 공급되면서 그 가격은 내려가고 수익률은 올라갔다고 한다.

이런 복합적 요인들로 인해 단기국채 수익률은 올라가고 장기국채 수익률은 내려가니 국채수익률 곡선이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현상도 그리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더욱이 수익률 역전 상태가 적어도 석 달가량 지속되어야 ‘침체 조짐’으로 믿을 만한데, 지난 3월 말의 역전은 닷새 정도 지속된 것에 불과하다.

좀 더 결정적으로는, 국채수익률 곡선이 경기침체의 조짐이라기보다 원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수익률 역전은 일종의 ‘자기실현적 예언’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은행들은 수익률 역전이라는 지표를 보면서 ‘경기침체가 예상되므로 장기로 대출했다간 큰일 나겠군’ 하고 생각해버린다. 그래서 대출을 하지 않게 되면, 경기침체가 현실에서 실현된다.

그렇다면 안심해도 될까? 지난 2005년 여름에도 미국인들은 경기침체의 예감으로 초조해하고 있었다. 각종 경제지표가 불량한 데다 10년 만기 국채의 수익률이 3개월 만기 국채보다 겨우 0.9%포인트 높은 상태였다. 급기야 그해 7월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준 의장이 상원에 나가 수익률 곡선을 “믿을 수 없는 지표”라며 민심을 다독거린다. “국채수익률 곡선은 이미 폐물이 되었다. 여러 증거에 따르면, 그동안의 경제 시스템 변화로 인해 수익률 커브가 경기침체 예측 수단으로 쓸모없게 되었다는 것이 입증됐다.”

그린스펀의 이 발언 뒤 1년 뒤에 미국 국채의 수익률 곡선이 역전되었다. 그로부터 18개월 뒤(2008년 세계 금융위기)엔 미국 경제가 최악의 경기침체에 빠져들게 된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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