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학기 개강 직전이면 대학가는 ‘수강신청 대란’에 휩쓸린다. 강좌마다 인원수가 고정되어 있기에, 원하는 강의를 듣기 위해 수강신청 프로그램 서버가 열리는 시간에 맞춰 ‘클릭 대기’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어떤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빠른 접속을 위해 고성능 PC와 초고속 인터넷 회선을 갖춘 PC방에서 수강신청을 한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이 수강신청 대란은 이미 연례행사가 되어버렸다.

교육은 서비스이고, 대학은 기업이며, 학생은 소비자라는데 수강신청 대란이라니 이 무슨 배급경제 시대의 풍경이란 말인가. 심지어 인기 강좌의 수강권을 사고파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하니, 암시장이 따로 없는 셈이다. 이걸 ‘대한민국 특유의 높은 향학열’이라고 해석한다면 그 사람은 대단한 긍정주의자일 것이다.

모니터 앞에서 수강신청 프로그램 서버가 열리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학생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대란이 있다. 바로 강의라는 일거리를 수주하기 위한 강사들 사이의 대란이다. 수강신청 대란에서는 최소한 인터넷 회선의 속도나 개개인의 클릭 속도라는 객관적 지표가 작동하지만, 이 ‘강의 수주 대란’에는 그런 것도 없다. 극단적으로 말해 강의를 맡고 못 맡고는 강사의 실력에 달린 문제가 아니다. 옛말에도 만석꾼과 9학점 강사는 하늘과 교수가 내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박해성


“에이, 망했네.” 자취방의 인터넷이 느려서 수강신청에 실패한 학생이나, 알 수 없는 기준으로 강의를 받지 못하게 된 강사가 무심코 내뱉었을 법한 이 한마디에 모든 진실이 담겨 있다. 솔직히 인정하자. 대학은 이미 망했다. 이 ‘망했음’은 회계장부에도, 대학 평가에도, 취업률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현 단계에서 그 망했음의 증상은 주로 다른 구성원에 대한 불만으로 나타난다. 교수는 과거에 비해 낮아진 학생들의 지적 능력을 한탄하고, 학생은 대부분의 강의를 ‘핵노잼’이라 느낀다. 이를 단지 세대 차이나 소통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건 너무 단순한 결론이 될 것이다.

대학은 교수와 강사들에게 지급되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전체 강좌 수를 축소하고 수백명씩 수강하는 대형 강좌를 늘리고 있다. 신기하게도, 지난 10여 년간 대학에 몸담은 연구 노동자, 강의 노동자들의 삶의 질과 대학 교육의 질이 동반 하락해왔음에도 대학의 객관적 지표들은 꾸준히 상승했다. 그 과정에서 열악해진 교육 환경으로 인해 발생하는 스트레스는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으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조별 발표는 현재로서 가장 현실적인 평가 방법

가수 설현이 조별 과제에 무임승차하려는 선배에게 결과물에서 이름을 빼겠다고 말하며 사이다를 들이켜는 광고가 있다. 나는 이 광고가 (야근 중인 직장인이 피로회복제 마시고 힘낸다는 광고와 함께) ‘을’ 사이의 갈등을 부각함으로써 구조적 모순을 은폐하는 대표 사례라고 생각한다. 강사 한 명이 많게는 100여 명에 달하는 수강생을 담당해야만 하는 현행 대학 교육의 구조상 조별 발표는 가장 효율적으로 수강생들의 학업성취를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다. 만약 강좌당 수강생 수가 20~30명 수준만 되더라도 개인 발표나 인터뷰 등 수강생 개개인에게 더 많은 시간을 소요하는 방식의 평가가 가능해질 것이다.

이번 학기 수강신청도 망했다고 생각하는 대학생들이여. 진짜 망한 것은 여러분의 시간표도, 취업 준비도, 미래 계획도 아닌 바로 한국의 고등교육 시스템이다. 당신이 수강신청에 실패한 것은 인터넷이 느려서가 아니다. 대학 교육이 스스로를 갱신하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망했음을 직시하는 것으로부터 새롭게 출발하도록 하자. 수강신청 단계에서부터 경쟁을 유발하는 이 기괴한 시스템에 침을 뱉은 뒤 한 잔의 사이다로 축배를 들자.

기자명 홍덕구 (인문학협동조합 조합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