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번이 반려되는 수사 지휘서의 도장은 ‘가(可)’ ‘부(不)’ 칸 사이에 찍혀 있었다. 검찰은 경찰이 신청한 ‘김학의 성폭행 의혹 사건’ 관련 영장을 돌려보내며 보강 지시를 내렸다. 그렇게 2013년 경찰이 신청한 체포영장 2회, 통신사실 조회 4회, 압수수색 영장 2회, 출국금지 2회가 기각됐다. 검찰은 영장을 반려하면서도 ‘가’ ‘부’ 사이에 애매하게 도장을 찍어놓았다.

당시 경찰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도장의 뜻을 이렇게 설명했다. “원래라면 ‘가’에다 도장을 찍고 영장을 내줘야 하는데, 어디서 압력이 들어오니 ‘가’를 해줄 수는 없고 반려시켰다. 그런데도 ‘부’에다 안 찍고 ‘가’ ‘부’ 가운데 도장을 찍었다. 지휘하는 일선 검사로서는 ‘부’를 찍었다고 기록에 남기기 싫으니깐. 자기들도 이 영장을 반려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걸 아는 거다. 이런 식으로 당시 검찰이 장난을 쳤다.”

첫 압수수색부터 쉽지 않았다. 주요 범죄 장소로 지목된 건설업자 윤중천씨의 강원 원주 별장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도 한 번에 나오지 않았다. 원주 별장은 문제의 성 동영상이 촬영된 곳이다. 여성들이 피해를 당한 장소로 지목했다. 초기 빠른 수사로 압수물 분석이 중요한 때였지만, 검찰은 피해 여성들의 말을 믿을 수 없으니 건설업자 윤중천씨부터 조사하라고 지시하며 압수수색 영장을 반려했다. 수사의 기본을 무시하는 지시였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경찰 관계자의 말이다. “수사에서 핵심 피의자를 제일 먼저 불러서 조사하는 경우는 없다. 참고인 조사와 압수수색을 통한 압수물 분석 등으로 기초를 탄탄히 다진 다음에 핵심 피의자를 부르는 게 수사의 기본이다.”

 

ⓒ연합뉴스‘김학의 성폭행 의혹 사건’이 일어난 건설업자 윤중천씨의 별장 내부.


보강 후 발부된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경찰은 2013년 3월31일 강원 원주 별장 압수수색에 나섰다. 이곳에서 윤중천씨의 전방위적 로비·접대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증거물이 나왔다. 경찰은 가면 22개 등을 압수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DNA 및 마약 분석을 맡겼다. 별장을 드나들었던 이들의 신분과 마약 혐의 등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피해 여성들은 마약으로 추정되는 약을 먹고 몸을 가누지 못한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국과수의 조사 결과 남자 23명, 여자 24명의 DNA가 나왔다. 마약 분석 결과는 음성이었고, 수사 과정에서 발견된 알약 7정은 비아그라정의 성분으로 발기부전에 사용된다고 밝혀졌다. 성폭행 의혹 사건은 2006년부터 2008년에 집중적으로 일어났고 마약 검사는 2013년에 이뤄졌다. 최대 1년 내 마약 사용을 밝혀줄 모발 검사로는 마약 흔적을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대신 마약 수사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다. 경찰은 윤중천씨에게 마약을 공급하고 알선한 이들의 자백을 받았다. 전직 검찰 수사관이 2012년 8월 필로폰 공급을 알선했다. 경찰은 이들의 진술뿐만 아니라 윤중천씨의 통화내역과 위치 정보를 담은 기지국 자료를 확보했다. 윤씨가 원주 별장을 나와 인근 휴게소에서 마약을 주고받은 시간·동선이 일치했다. 2013년 7월 마약 혐의 등으로 윤씨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됐다.

하지만 검찰은 2013년 8월 기소를 하며 이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시사IN〉 제603호 ‘김학의는 박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사람’ 기사 참조). 윤씨가 부인했고, 공급·알선책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말을 바꿨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찰의 회유·협박으로 경찰 수사 단계에서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2013년 경찰이 윤중천씨의 원주 별장을 압수 수색하던 중 발견한 가면들.

검찰, 혼신을 다해 ‘김학의 보호’ 의혹

당시 경찰 수사팀 관계자는 반박한다. “검찰 수사관까지 지낸 사람이 경찰이 회유·협박했다고 마약 혐의를 자백하나. 마약 건은, 김 전 차관이 관련될 수 있는 윤씨의 혐의를 풀어버린 대표 사례다. 윤중천이 이들에게서 마약을 가져가면서 ‘너희가 생각할 수도 없는 지체 높은 분한테 드릴 거다’라고 말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수사가 더 윗선으로 올라갈까 봐 검찰이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검찰이 김학의 전 차관을 봐주려고 윤중천씨에게 마약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2013년 수사 당시 윤중천씨는 김학의 전 차관을 알지도 못한다고 계속해서 주장했다. 윤씨의 휴대전화기에 ‘학의형’이라는 이름으로 김 전 차관의 대포폰(차명 휴대전화) 번호가 저장돼 있었고, 윤씨와 김 전 차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피해 여성들의 진술이 있었다. 하지만 윤씨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뇌물 공여자로 지목된 핵심 피의자가 입을 열지 않아, 계좌 추적 영장은 꿈도 못 꿨다고 당시 경찰 수사팀 관계자들은 말했다.

다만 2019년 현재 윤중천씨가 말을 바꿨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에서는 김 전 차관을 알고 돈도 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윤씨는 언론 접촉을 피하고 있다. 사용하던 휴대전화는 착신 금지를 해놓은 상태다.

2013년 경찰의 김학의 전 차관 동영상 원본 확보에도 여러 번 브레이크가 걸렸다. 검찰의 영장 반려가 계속됐다. 2013년 3월 경찰이 확보한 것은 사본 영상이었다. 원본 영상 확보가 필요했다.

경찰은 원본 소유자 박 아무개씨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반려당했다. 이어 박씨의 휴대전화 등 통신 영장을 신청했지만 또 반려됐다. 그사이 박씨가 잠적했고 경찰은 실시간 위치 추적 영장과 체포영장을 신청했지만 이마저도 반려됐다. 경찰은 다섯 번째 신청 끝에 검찰의 승인을 받아 원본 영상을 확보했다.

검사장 출신 김학의 전 차관은 경찰의 출석 요구에도 세 차례나 응하지 않았다. 보통 소환에 세 번 연속 응하지 않으면 경찰은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강제 수사에 나선다. 경찰은 김 전 차관의 체포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 단계로 가기도 전인 검찰에서 꺾였다. 당시 검찰은 ‘김 전 차관이 병원 입원 및 수술·각혈·혼절 등으로 각종 검사가 예정돼 수사기관에 출석할 상태가 아닌 것으로 보이니, 고의적인 출석 지연인지를 좀 더 소명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경찰에 내렸다.

수사 초기인 2013년 3월27일 김 전 차관에 대한 출국금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경찰의 신청을 검찰이 반려했다. 당시 경찰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지난 3월22일 김 전 차관이 출국 시도를 하자마자 실시간으로 출국금지 조치가 됐다. 그렇게 쉬운 게, 2013년에는 안 되더라. 김학의 전 차관 쪽 수사는 접근조차 못하게 했다.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노골적으로 수사를 방해했다”라고 말했다.

2013년과 2014년 검찰 수사 과정에서 김 전 차관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윤중천씨는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요란하게 시작한 수사에 비하면 초라한 결과였다. 2019년 같은 혐의로 세 번째 수사가 시작됨으로써 ‘김학의 성폭행 의혹 사건’은 영장청구권·수사권·수사지휘권·기소권을 모두 가진 검찰 권력의 문제점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기자명 김은지·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